병원에서 자연 분만이 사라진다…사법 리스크가 만든 기현상
제왕절개 분만율 10년 새 38.7→67.5%로 증가 OECD 1위…"앞으로 병원은 제왕절개만 할 수도"
“자연 분만은 집에서 하고 병원에서는 제왕절개 분만만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의료 현장의 경고다. 사법 리스크가 불러온 기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자연 분만 도중 제왕절개 시기를 놓쳐 신생아 뇌성마비 등이 발생했다는 판결이 잇따르면서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자연 분만을 기피하게 됐다는 것이다.
분만 현장의 ‘제왕절개 선호’ 현상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지난 10년간 전체 분만 건수는 절반 가량 감소했는데 제왕절개 건수는 비슷하게 유지되면서 그 비율이 크게 올라갔다.
‘건강보험통계’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평균 38.7%이던 제왕절개 분만율은 2024년 67.4%로 28.7%p나 증가했다. 산모 10명 중 7명이 제왕절개로 분만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기간 전체 분만 건수는 42만3,517건에서 23만5,234건으로 44.5% 줄었다.
산모의 고령화로 제왕절개 분만율이 높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모든 연령대에서 제왕절개 분만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19세 이하 산모의 제왕절개 분만율은 2014년 23.5%였지만 2023년 44.0%로 증가했다. 20대 산모도 마찬가지로 제왕절개 분만율이 32.7%에서 59.0%로 늘었다. 30대 산모의 제왕절개 분만율은 40.3%에서 64.0%로, 40대는 61.1%에서 75.3%로 증가했다.
제왕절개 분만율 상승은 종별을 가리지도 않았다. 고위험 산모들이 많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2014년에는 50.6%만 제왕절개로 분만했지만 2023년에는 그 비율이 72.0%로 상승했다. 제왕절개보다 자연 분만이 많았던 병원과 의원도 10년 새 역전됐다. 병원의 제왕절개 분만율은 2014년 36.9%에서 2023년 61.6%로, 의원은 37.5%에서 63.4%로 증가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제왕절개 분만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발표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5’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제왕절개 건수는 출생아 1,000명당 610.6건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았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292.5건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한국에서 제왕절개 분만율이 높은 이유를 두고 의료 현장에서는 사법 리스크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최근에도 자연 분만으로 태어난 신생아가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일로 담당 산부인과 교수와 전공의가 불구속 기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분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도 사법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제왕절개가 만병통치약처럼 됐다”고 개탄했다. 앞으로는 자연 분만을 하는 병원을 찾기 힘들 거라는 말도 나온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김동석 명예회장은 지난 14일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제왕절개 분만율이 높은 것은 법원 판결들 때문이다. (사법 리스크로 인해) 산부인과 의사들이 소신 진료를 하지 못하고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제왕절개 분만을 하게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앞으로 자연 분만을 하는 병원을 찾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오상윤 부회장(예진산부인과)은 “1998년부터 분만을 했는데 당시 자연 분만이 70% 이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가 됐다”며 “제왕절개 분만이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해서 신생아 뇌성마비 발생이 절반으로 줄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오 부회장은 산부인과 자체가 기피과가 됐지만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 의사 구하기는 더 힘들다며 폐업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사법 리스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제왕절개 분만을 할 의사조차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