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 뇌성마비에 형사재판? 분만장 떠나라는 경고장”
의학회 “결과 나쁘다고 범죄 행위와 동일시” 비판
자연분만 신생아 뇌성마비로 담당 산부인과 교수가 불구속 기소된 사건에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의사들에게 필수의료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했다.
대한의학회는 11일 성명서를 내고 “의사들에게 산모를 보지 말고 분만장을 떠나라는 경고장에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의대 A교수는 7년 전 자연분만으로 받은 아기가 출생 직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일로 지난 8월 26일 불구속 기소됐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진행 중이다.
의학회는 “뇌성마비와 같이 그 원인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나쁜 결과에 대해 단순히 의료진 잘못으로 단정해 고의성을 가진 범죄 행위와 동일시하고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하고 있다”며 “평생 수많은 고위험 산모를 진료해 온 대학 교수가 형사재판에 서는 모습이, 산부인과를 비롯한 필수의료에 대한 꿈이 있는 의사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번 형사 기소는 이미 소수에 불과한 산과 교수들로 하여금 분만을 포기하고 대학병원을 떠나게 만들 것”이라며 “이는 곧 산과 교육과 분만 인프라 붕괴라는 국가적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학회는 영국, 미국 등 영미법 국가나 독일, 스위스 등 대륙법 국가는 “의료 행위는 고의나 중과실이 아니면 형사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이 부당한 형사 기소 대상이 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며 “법원을 비롯한 사법 기관이 이번 사안을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필수의료 존속에 직결된 문제로 인식해 줄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했다.
대한의학회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속화된 필수의료 붕괴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왔으며, 이러한 원인이 의료계나 의사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재원 확보와 지원 등 근본적인 정부 대책의 부재로 인한 것임을 강조하여 왔다.
2025년 기준 대표적 필수의료과인 심장혈관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각각 21.9%, 48.2%, 13.4%, 36.8%에 불과하며, 이는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여 전국적인 지역 필수의료 인력 부족의 피해 사태 뉴스는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실제로 산부인과 전문의 부족으로 분만 취약지에서는 응급 상황에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대도시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산모와 태아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또한 소아청소년과 공백으로 인해 야간·주말에 고열이나 경련 등 응급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는 정부가 수년 전부터 대한의학회를 비롯한 의료 전문가들이 외쳐온 지속 가능한 필수의료 관련 대책을 외면해 온 결과이다.
산부인과, 그중에서도 산과는 산모와 아기 두 생명을 다루는 과목으로, 우리나라의 모자 보건에 중요한 의료 분야다. 산과학 발전의 혜택은 우리나라 산모와 아기에게 가고, 반대로 퇴보의 피해도 산모와 태아에게 돌아간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모성 사망률이 감소하고, 다양한 부정적 결과가 크게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출산의 과정은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항상 잠재하고 있는 생리적 과정이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현실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출산 연령이 높고, 다태 임신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조산율은 유례없이 증가하고 있다.
뇌성마비와 같이 그 원인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나쁜 결과에 대해 이를 단순히 의료진의 잘못으로 단정하여, 고의성을 가진 범죄 행위와 동일시하고 경찰 및 검찰과 같은 수사 기관의 조사를 받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의료 환경 속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에게 산모를 보지 말고 분만장을 떠나라는 경고장에 다름 아니다. 특히, 평생 수많은 고위험 산모의 진료 현장을 지키고, 우리나라 산과학 발전 연구에 애써 온 대학교수가 형사 재판에 서는 모습이 그나마 산부인과를 비롯한 필수의료에 대한 꿈이 있는 젊은 의사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영국이나 미국 등 영미법 국가에서는 고의나 중과실이 아니면 의료 행위는 아예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독일과 스위스 등 대륙법 국가에서도 과실범 처벌 규정이 있지만 의료 행위는 고의나 중과실이 아니면 역시 형사 책임을 묻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법 체계가 가장 유사한 일본은 2016년 이후 통계가 확인되는 2021년까지 의료 행위를 형사 기소한 사례 자체가 발견되지 않는다.
사회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본질적으로 위험성이 내재해 있는 업무들이 있다. 그런 영역에서 위험이 실제 발생했다고 그 업무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정의로운 공권력 행사가 아니고 사회를 마비시키는 행위이다. 선진국의 사법 기관은 의료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해로운 공권력 행위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분만과 같은 필수의료에 대한 형사 기소는 이미 소수에 불과한 산과 교수들로 하여금 분만을 포기하고 대학병원을 떠나게 만들 것이며, 이는 곧 산과 교육과 분만 인프라의 붕괴라는 국가적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대한의학회는 더 이상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이 부당한 형사 기소의 대상이 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결국 수많은 산모와 아기가 산과 의사를 찾아 헤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한의학회는 법원을 비롯한 사법 기관이 이번 사안을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필수의료의 존속에 직결된 문제로 인식해 줄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 대한의학회는 사법 기관이 지속 가능한 필수의료 체계를 지키고 확립하기 위하여 현명하며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끝.
2025년 9월 11일 대한의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