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숙원' 전남 의대 신설…"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인터뷰] 최운창 전라남도의사회장 새 의대·병원 바라면서 지역 병원 외면하는 현실 "지역 지키는 의사·병원 독려하고 지원해 달라"
전라남도에는 '30년 숙원'이 있다. 의과대학 신설이다. 1990년대부터 새 의대 설립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자체가 담당 조직을 따로 두고 지역 대학이 통합까지 하겠다고 나섰지만, 논의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럴수록 "지역에 의대가 필요하다는 믿음"은 굳건해졌다.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편 윤석열 정권이 물러났지만, 의대 유치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이번에야말로 숙원을 풀리란 전망이 나온다. 공공의대와 부속 병원 설립, 지역의사제가 새 정부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의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안'에 담겼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에서 전남을 비롯해 인천광역시와 전북특별자치도에 공공의대를 짓고, 경상북도에도 신규 의대를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전남 지역 의료가 고립무원은 아니다. 500병상 이상인 목포한국병원과 순천의 성가롤로병원을 비롯해 종합병원 26곳이 전남 지역에서 진료하고 있다. 600병상 규모 국립대병원인 화순전남대병원도 여기 포함된다. 하지만 중증·응급 환자 유출률은 49%에 이르고, 180만명 인구 중 연간 80만명이 다른 지역 병원을 이용한다. '지역 신설 의대'를 믿고 기대하면서 정작 "오랫동안 지역을 지켜온 병원들"은 외면하는 셈이다.
지난 29일 언론과 마주한 전라남도의사회 최운창 회장이 새 의대, 새 병원, 새 인력이 아니라 "기존 의료기관과 지역 인력을 눈여겨 보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미 보유한 인프라를 활성화하려는 노력 없이 새 자원만 투입하는 식의 정책으로는 "기존 의료 생태계를 교란하고 불필요한 경쟁만 유발한다"고 봤다. 인구 감소로 의료 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 유출은 계속되고 "의료기관 간 출혈 경쟁"만 일어나면, 결말은 "지역 의료의 공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 회장은 "'지역 완결형 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최선책은 의대 신설이 아니라 지역 주민을 책임지는 상급종합병원급 의료기관 육성이다. 적절한 보상과 지역 특성화 지원으로 기존 지역 의료 인력과 기관을 독려하고, 정주 여건 개선과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로 지역에서 살아가며 의술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의사회 차원에서도 그간 축적한 지역 의료 현황 데이터와 숙의 내용을 정부와 지자체에 전달하고 현실적인 지역·필수의료 정책을 이끌어 내겠다고 했다.
지역 의사회 회무에서는 회원 권익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회원과 함께하는 의사회'로 거듭나고자 힘쓰겠다고 했다. 행정 민원 해결은 물론 젊은 의사와 선배 의사,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으로 전남 지역 의료계 전체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각오다.
그러면서 "전남은 수도권에 비해 인프라가 열악한 만큼, 의료인 간 연대와 협력이 더욱 중요하다. 그렇기에 16개 시도 가운데서도 의대생·전공의와 활발히 소통하며 유대 관계를 다져왔다. 앞으로도 연대를 굳건히 다지고 미래 의료 세대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했다.
최 회장은 조선의대를 졸업하고 목포시의사회장과 전남도의사회 부회장을 거쳐 지난 2021년 회장에 당선했다. 지난해 2월 재선에 성공했다. 비뇨의학과 전문의다.
-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남 지역 공공의대 신설 기대가 커졌다.
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만큼 논의가 본격화되겠으나, 지역 의료 현실을 외면한 처방이란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전남은 인구 소멸 위기 지역이다. 이곳 목포시만 해도 인구 20만명 선이 무너지기 직전이다. 이런 곳에 새 의대와 병원을 세우는 것은 예산 낭비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 신설이 기정사실화라면, 현실적인 운영 계획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신규 교원 선발부터 막막한데, 관련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지역 현실을 이야기해도 '30년 숙원 사업'이란 당위성을 넘기 어려워 보인다.
'30년 숙원 사업' 외에 의대가 필요한 다른 이유를 대기 어렵기 때문이다. 30년 전부터 의대 신설에 도전해 온 만큼 '지역에 의대를 새로 지어야 한다'는 믿음이 공고하다. 30년 전에는 옳은 이야기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역 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지금 전남은 새로운 의대가 아니라 지역 내 최종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이 필요하다. 의대 신설과 운영에 들일 천문학적인 예산을 그간 지역에서 자리를 지켜온 의료기관에 투자해 달라. 광주와 목포, 순천 등 지역 곳곳에 3차 병원으로 도약할 잠재력을 갖춘 지역 2차 병원들이 있다. 기존 국립대병원과 이들 지역 거점 병원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히 지역 내 필수·중증 진료를 책임지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
- 공공의대 설립과 함께 지역의사제 도입 가능성도 크다.
단호하게 반대한다.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진료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위헌적 발상일 뿐만 아니라, 의무 기간만 채우고 떠나는 '시한부 의사' 양산에 불과하다. 복무를 강제당한 이들에게 과연 사명감과 지역에 대한 애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앞서 공중보건장학생 제도도 실패했다.
현재 진행 중인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도 여의치 않다. 필수과목 전문의 자격 취득 5년 이내 의사에게 지역 근무 수당을 주겠다는 것인데, 4개 지역 중 전남 지원자가 8명으로 가장 적었다. 정부는 신규 인력을 지역에 불러들이고 유출을 막는 게 최선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이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의대 신설이 아니라 기존 의료기관 지원이 중요한 것처럼, 신규 인력이 아니라 이미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의료 인력을 주목할 때다.
-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 대신 지금 필요한 현실적인 대책은 뭔가.
의사를 늘리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종사자도 생겨나리란 '낙수 효과'에 기댄 안일한 정책은 그만둬야 한다. 기존 의료 인력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정착할 근본적인 방책이 우선이다. 의사가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살겠노라 마음먹을 만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자녀 교육부터 문화·여가 생활까지 기본적인 정주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 특히 전남은 고령층 인구가 많고, 섬 지역 다수 분포한다. 이런 지리적 특성까지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절실하다.
이와 함께 지역 필수의료 분야에 파격적인 수가 인상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지역 응급 복부 수술 가산 적용이 그 예다. 수술 건수 기준을 채우면 200% 가산을 받는다. 지역 병원에서는 '개원 이래 최다 수술 실적을 세웠다'는 반응이다. 동기부여만 되면 성과는 따라온다. 충분한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 지역 의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지역 의료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20년 넘게 지역 의사회 회무를 맡으며 이익 단체로서 역할과 전문가 단체로서 사회적 책무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 지역 의사회는 주민 건강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지역 의료 현실을 가장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집단이다. 현실적인 지역 의료 정책이 성립되도록 정부 소통 채널을 다각화하고 협력의 끈을 놓지 않겠다.
한편으로 정부나 다른 직역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의사는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려면 우리 스스로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헌신해야 한다.
- 회원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회원이 주인이자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의사회를 만들겠다. 민원 해결 역할을 넘어 회원 권익을 선제적으로 보호하고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는 능동적인 단체가 되고 싶다. 더 나아가 지역민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의사상 정립에 앞장서는 의사회로 자리 잡길 바란다. 회원이 자부심을 가지고 신뢰하는 의사회가 되도록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