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들이 면허 내놓겠단 이유…“의료정책 편향 분노”

건보서 드러난 한방 경영 부진…한방 자보 진료비 ‘고공 행진’ 박성우 서울시한의사회장 “의료계와 동등 경쟁할 수 있어야”

2025-08-01     김은영 기자
한의계가 교통사고 경상환자 장기 치료 자료제출 의무화에 한의사 면허 반납까지 거론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정부의 교통사고 경상환자 장기 치료 자료제출 의무화에 대한 한의사 반발이 거세다. 진료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다.

한의사들은 면허 반납과 한의대 폐지 운동까지 거론하며 정부를 향한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일각에선 이러한 한의계 분노가 단순한 진료권 침해 논란을 넘어 지속된 경영난으로 위태로워진 한방 의료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의계의 격렬한 반발에는 한방 의료기관의 만성적인 경영난이 자리하고 있다. 한의계는 이같은 원인을 의료 정책에서 한방이 배제되면서 발생하고 있는 의과와의 형평성 문제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졌고 수십 년간 누적된 ‘정책적 불균형’이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한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장인 유창길 부회장은 지난 5월 진행됐던 2026년도 요양급여비용(수가)협상 당시 “필수의료에서 한의과를 배제하다 보니 (한방) 진료비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고 경영수지도 나빠지고 있다”며 “10년간 누적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9.2%인데 (한방은) 10년간 고작 8% 증가한 상황”이라며 경영난을 호소하기도 했다.

유 부회장은 “(의료 정책) 시범사업이나 공공정책수가에서 배제 되는 부분이 많다보니 환산지수 외에는 진료비 상승분을 기대할 수 없다. 보장성 확대도 어렵다”며 “ICT나 텐스 등 물리치료 기기를 동일한 치료 목적으로 동일한 치료 효과를 내고 있지만 의과에서는 급여로 보장받고 있는 반면 우리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한방 의료기관의 지속적인 경영 부진은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종별 요양급여비용’에 따르면 한방 의료기관 건보 진료비는 코로나19 팬데믹 확산 직후였던 2020년 2.06% 감소율을 보이며 3조원대였던 진료비는 2조9,500억원으로 떨어졌다.

2021년부터 진료비 규모는 3조621억원에서 2023년 3조4,519억원으로 9.48% 늘며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가운데 한방 의료기관이 차지하는 진료비 규모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2019년 3.51%였던 한방 진료비 비중은 2023년 2.06%로 0.45%p 떨어졌다.

반대로 자동차보험 진료비 영역으로 넘어오면 상황은 역전된다. 심평원의 ‘자동차보험 진료비통계’에 따르면 자보 진료비는 지난 2019년 9,569억원에서 2023년 1조4,888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증가율은 55.59%였다. 전체 자보 진료비 가운데 한방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58.13%로 절반을 넘겼다.

이처럼 한의계의 자동차보험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정부가 교통사고 경상환자 장기 치료 시 진료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히자 한의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한의사회 박성우 회장은 “환자 1명 더 받고, 2명 더 받는다고 (의료기관 경영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며 “그런 관점에서 한의사들이 반발하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 회장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자배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악 철폐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국토교통부가 교통사고 경상환자 8주 치료 제한을 철회하지 않으면 한의사 면허 반납과 한의대 폐지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이날 박 회장은 오명균 강원도한의사회장과 함께 삭발까지 했다.

서울시한의사회 박성우 회장(왼쪽)과 강원도한의사회 오명균 회장이 국토교통부의 자배법 개정안 즉각 철회를 촉구하며 삭발식을 단행했다(사진제공: 대한한의사협회).

박 회장은 자배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한의사 반발의 본질을 “편향된 의료 정책에 대한 분노”라고 규정하며 “정부가 (의료계와) 동일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은 한의사를 의료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한의사 제도를 없애거나 한의대를 폐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보험 진료비 상승 이유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교통사고 후) 의료기관에 가면 크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한의원에서는 침도 놓고 부항도 뜨고 약도 지어주니 이쪽(한방)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일부 한방 의료기관에서 도덕적 해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문제는 국토부 장관 임명 후 논의를 시작했어도 됐을 일”이라고 했다.

이어 박 회장은 “예방접종 등 의사들이 독점하고 있는 일부 진료 영역을 다른 의료 인력과 적절히 분담해야 의사 수를 늘리지 않고도 의료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