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람만 늘려선 바뀌지 않는다

정용익 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장

2025-07-29     정용익 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장

최근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 감독인력 300여명을 당장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이라는 정책 목표 자체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다시금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정부 전반에 걸쳐 쏟아지는 인력 증원 요구의 흐름이다. 특허청은 1,000명의 심사관 증원을 요구하고, 식약처는 심사관 인력 확충과 함께 심사 수수료 대폭 인상을 추진 중이다.

정용익 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장.

여기에 경찰, 소방, 교육, 사회복지 등 거의 모든 공공 부문에서 증원 요구가 이어지며, 마치 대한민국 전역이 '사람이 부족한 나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특히 AI와 자동화 기술로 대체 가능한 영역까지도 인력 증원에만 의존하는 관행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특허청(USPTO)과 유럽특허청(EPO)은 이미 AI 기반 사전심사 시스템을 도입해 심사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유럽의약품청(EMA)은 머신러닝 기반 안전성 신호 탐지 시스템을 활용해 적은 인력으로도 보다 정밀한 약물 감시를 수행하고 있으며, 미국 FDA는 실사용증거(Real World Evidence) 플랫폼을 구축하여 시판 후 약물 안전성을 실시간 모니터링 중이다.

근로감독 분야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는 IoT 센서와 AI를 결합해 건설현장 안전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작업자의 안전모 착용 여부부터 위험 구역 출입까지 자동으로 감지해 사고를 예방하며, 영국은 머신러닝으로 위험 사업장을 사전 선별해 선제적 감독을 실시한다. 이처럼 기술혁신이 심사와 관리 업무의 정확성과 속도를 동시에 높이고 있는 세계적 흐름과 비교할 때, 우리는 여전히 '사람 더 넣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된다.

비단 공공분야뿐만이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된 의대정원 2,000명 증원 논란은 단순한 인력 확대가 얼마나 복잡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한 바는 단순한 의사 수가 아니라, 지역 간 불균형, 필수의료 분야 기피,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이었다.

실제로 서울과 수도권은 과잉 공급 상태인 반면, 지방의 중소도시나 응급·외과계 진료과는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권익위 설문에서도 가장 큰 보건의료 문제로 '지역 간 의료 격차'가 꼽힌 바 있다. 의대 정원 확대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숫자만 늘린 대표적 미봉책이었다. 의료인력 분배, 진료과 유인 구조, 지역 인프라 개선 등 근본적 처방 없이 단순한 증원만을 추진하면서 의료서비스 공백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가 인력 정책 전반에서 반드시 되새겨야 할 중요한 교훈이다.

첫째, AI와 자동화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정형화된 업무는 기술에 맡기고, 사람은 고부가가치·판단 중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특허심사의 경우, 유사특허 검색과 분류 전반을 AI가 담당토록 하고 심사관은 진보성 검증에 집중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의료제품 인허가 분야의 형식 심사의 경우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둘째, 공공서비스 제공 방식의 구조적 효율화가 우선이다. 의료분야에서는 단순 정원 확대보다 수가체계 개편, 지역-대학병원 간 연계망 구축, 원격의료 기반 확충 등 자원의 '분배 혁신'이 중요한 것처럼 심사와 인허가, 감독 및 관리 영역의 서비스 제공 시스템의 전반적인 구조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셋째, 민간의 역량과 자율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모든 걸 직접 하려 하기보다 민간의 전문성과 자율 규제 체계를 강화하고, 인증기관 등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이는 식약처, 근로감독, 안전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한 접근이다.

넷째, '얼마나 많이 채용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결했는가'를 평가하는 성과 중심 인력정책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단순히 인력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책 목표 달성도·서비스 품질·민간 만족도와 같은 결과지표 중심의 평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인력 증원 자체가 목적이 되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모든 부문의 인력 증원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증원을 요구하기 전에 기술, 제도, 민간 참여 등 다양한 대안을 충분히 검토하고, 지금보다 훨씬 정밀하고 전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한국은 스스로를 IT 선진국이자 AI 강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인력정책 또한 그러한 국가 비전에 걸맞은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여전히 20세기의 방식으로 21세기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는 디지털 전환과 행정혁신에서 세계적 흐름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투입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스마트하게 문제를 해결하느냐가 중요한 시대다. AI 시대에 걸맞은 인력정책, 기술 기반의 효율적 거버넌스, 민간과의 협력 체계 강화—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정부야말로 국민이 바라는 '일 잘하는 정부'다.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AI 강국으로 도약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