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안전학회 대상 받은 의대생, ‘사법 리스크’ 챗봇으로 풀다

AI 기반 의사결정 지원 챗봇 ‘Leximed’ 개발한 장우진 학생 판례 1700여건 기반으로 응급 상황 따라 최적 조언 제시 "기술로 진료실서 느끼는 법적 불안 조금이라도 해소되길"

2025-07-15     고정민 기자
청년의사는 실시간으로 법적 조언을 해주는 챗봇을 개발한 경희의대 장우진 학생을 만나 이번 연구 의미와 진로에 대해 들었다(ⓒ청년의사).

지난해 초 정부 의료 정책에 반대해 대학을 떠났던 의대생들이 돌아온다. 의정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의대 정원 증원은 '의사 수 추계'라는 해법이 제시됐지만, 여전히 남은 문제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른바 '필수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사법 리스크가 대표적이다.

최근 청년의사를 만난 경희의대 의예과 장우진 학생이 지난해 휴학계를 제출한 이유도 여기 있다. 법적 부담을 덜어달라는 호소를 외면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는 깊은 회의감을 안겼다. '의사도 판례 공부를 하는 시대'라고 자조하는 선배와 교수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의료 시스템의 법적 불확실성을 실감하게 됐다.

그렇게 대학을 떠난 학생은, 인공지능(AI) 기술로 의료 현장의 불안을 해소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장 씨가 개발한 AI 챗봇 'Leximed'는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의료인이 마주한 불안한 현실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물이다. 지난 5월 30일 장 씨가 발표한 '의료진의 법·윤리적 의사결정 지원을 위한 판례기반 인공지능 LexiMed의 개발 및 임상 적용 가능성 평가'는 대한환자안전학회 학술대회 구연발표 대상을 차지했다. 의료인이 현장에서 마주치는 법적 불확실성을 실시간으로 해소하자는 Leximed의 제안은 학회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실효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Leximed는 약 1,700건의 판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료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의문에 답한다. 챗봇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할루시네이션' 문제를 막기 위해 검증 가능한 데이터 확보에 공을 들였다. 공공 데이터 플랫폼인 'AI 허브'로 공신력 있는 판례를 수집하고, 그에 맞는 질문과 답변 형태를 정제했다.

Leximed는 단순히 키워드 중심으로 검색 결과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마주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적합한 판례를 찾아 준다. 예를 들어 '응급 수술 중 불가피하게 장 절제를 진행했는데, 수술 동의서에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환자가 문제 삼는다면?'이라고 물으면, 관련 판례를 근거로 '응급 상황에서는 설명의무의 범위가 제한될 수 있으므로, 선택 기회 상실에 대한 위자료 청구에 대한 사실 관계를 입증하라'고 조언한다. 챗봇이 질문의 맥락을 먼저 파악하고 의미를 기반으로 적합한 자료를 찾는 'Retrieval-Augmented Generation(RAG)'방식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Leximed는 제시된 상황과 가장 유사한 사례 세 건을 우선 선별하고, 이 판례를 종합해 사용자 질문에 가장 적절한 답변과 근거를 제공한다.

챗봇 Leximed 구동 예시(자료 본인 제공).

의대 진학 전부터 AI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장 씨는 지난해 10월 경희의대 예방의학교실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1월 삼성서울병원 차원철 디지털혁신센터장(응급의학과) 교수를 만나면서 AI 기반 임상지원 시스템 개발을 접할 기회를 얻었다. 마침 기존에 다니던 연구실 지도교수 사직이 겹쳐 자연스럽게 연구실을 옮기게 됐다. Leximed 개발 아이디어도 차 센터장 지도 아래 처음 구체화했다. 그는 "AI가 진료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직접 만들고 고민해 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현실적인 사람"이라 불렀다. 연구를 시작한 계기도 "거창한 포부보다는 필요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심장내과 전문의를 꿈꾸는 의대생에게 연구 경험은 "미국 레지던트 매칭에서 경쟁력을 높여 주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략적 선택이던 연구 그 자체에 몰입하고 흥미를 느끼게 됐다. 정신건강의학과처럼 학문적으로 더 탐구하고 싶은 분야도 생겼다.

한국에서 외과 계열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도 간직하고 있다. 수술처럼 "손을 쓰는 진료가 끌린다"고 했다. Leximed 개발 계기가 됐던, '의사가 진료실에서 법 공부 해야 한다'는 말을 들려 준 것도 외과 교수였다. 외과 계열 전문의라는 진로 때문에 급박한 수술 현장에서 마주치는 법적 문제가 더 크게 다가왔을지 모른다.

"응급실이나 수술실에서 즉각적인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Leximed처럼 법적 자문에 가까운 도움을 주는 도구가 곁에 있다면 의료진이 조금 더 마음 편히 의술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같은 기술로 '의료진은 주의의무를 다했다'는 정당성이 확보되고, 의사가 책임의 무게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