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 낸 1년 4개월…필수의료는 ‘메이저 기피과’가 됐다
[내외산소, 수련을 말하다①] 전공의 사라진 수련병원 외래 신환 안보니 입원도 줄어…"PA와 진료해도 한계" 의정갈등 끝나도 "100% 복귀 아닐 것"…복귀 후도 문제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수련이 멈춘 지 1년 4개월. 전문의 배출 공백과 수련 체계 붕괴 우려는 여전하다. 새 정부가 의정 갈등을 풀어도, 수련 현장은 이미 달라졌다. 전공의 자리는 PA가 메웠고, 근무시간 단축도 추진 중이다. 전공의가 돌아와도 예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청년의사는 필수과 4개 학회 수련교육이사들과 수련 정상화 방안을 모색했다. ‘내외산소’ 수련이사들이 말하는 수련 현장의 변화와 과제를 3회에 걸쳐 전한다.
① 전공의 사라진 수련병원 ② PA 제도화와 수련교육 ③ 수련교육 질 관리 체계
사회: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토론: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 대한외과학회 최동호 수련교육이사, 대한산부인과학회 수련제도발전TFT 홍순철 위원장,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윤신원 수련교육이사
2024년 2월 이후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이 사라졌다. 정부는 상·하반기 전공의 모집 외 추가 모집을 세 차례 더 진행하고 기간까지 연장했지만, 복귀자는 미미했다. 최근 진행된 ‘5월 추가 모집’으로 복귀한 전공의는 인턴 포함 총 860명뿐이다. 현재 수련병원에 남아 있는 전공의는 총 2,532명이다. 의정 갈등 이전 수련 중이던 전공의 1만3,531명 중 18.7%만 남았다.
필수진료과로 꼽히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상황은 더 심각하다. ‘메이저과’로 불리는 이들 4개 과의 전공의 복귀율은 10%를 밑돈다. 지난 5월 추가 모집에서 내과는 101명, 외과 13명, 산부인과 22명, 소아청소년과 8명이 돌아왔다. 전공의 복귀율만 봐도 “메이저 기피과가 되어 버린” 필수과의 현실이 드러난다.
교수들은 전공의들을 기다리며 1년 4개월을 “버텼다.” 전공의가 떠난 대학병원은 진료지원인력(PA)을 충원해 그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PA 제도화도 진행되고 있다. 수련교육 현장은 이미 바뀌었다.
대한내과학회, 대한외과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수련교육이사들은 “되돌릴 수 없는 변화”로 봤다. 전공의들이 돌아오더라도 “이전으로 돌아가긴 힘들다”고 했다. 근무시간 단축 여론도 강하다. 그래서 돌아올 전공의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이 깊다.
-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난 지 1년 4개월이나 지났다. 현장에서는 ‘전공의 없는 대학병원’에 적응해 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김대중: 적응을 했다는 그 자체가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내과 같은 경우 그냥 진료만 하고 있다. 적응된 게 아니라 버티고 있다. 입원 환자 진료는 과거에 비해서 70~80%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래 진료도 조금 줄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신환을 안 받는다는 데 있다. 외래에서 신환을 받지 않으니 당연히 입원 환자가 줄 수밖에 없다. PA와 진료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최동호: 외과도 마찬가지다. PA가 있어서 돌아간다고 하지만 중증질환 수술은 하기 어려워졌다. 또 암 환자 수술이 연기되고 있다. 지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암 환자 생존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이터도 나오기 시작했다. 진단이 늦어지니 수술도 늦게 하고, 일부 지역은 항암 치료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외과 의사들이 피로도가 높아져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는 데 있다. (의정 갈등이 해결돼) 전공의들이 돌아오더라도 상처는 깊을 것이다. 이번 일로 ‘고생하는 건 결국 메이저과’라는 인식이 강해지면 지원 기피 현상은 더 심화될 수 있어 걱정이다. 일단 버티고는 있지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윤신원: 소청과는 전공의가 있는 병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사태를 맞았다. 기존에도 많은 곳이 전공의가 없는 시스템 안에서 겨우 운영돼 왔다. 전공의가 부족한 소청과는 다른 과에 비해 전담전문의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신생아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병동 전담전문의, 입원 전담전문의, 응급실 전담전문의 등이 생기면서 소청과 전문의 인력 구조가 바뀌었다.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소청과 전문의 비율도 늘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교수가 아닌 전담전문의다. 교수들도 당직 근무를 하는 게 당연해졌다.
그렇다고 ‘전공의 없는 병원’에 적응한 건 아니다. 오히려 미래가 더 많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이 사태가 계속되면 소청과는 존립 위기에 처한다. 지난 2022년부터 수련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였지만 (전공의 지원율 상승) 효과가 없었다. 소청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분과 전문의를 하기 위해 펠로우(전임의)를 하는 인원도 줄었다.
홍순철: 산과는 의사가 없다. 수련교육 시스템이 무너졌다. 산과는 소송 위험이 크고 근무시간도 길수밖에 없다. 산모가 입원하는 순간 의사는 책임을 져야 하기에 근무시간이 끝나면 바로 퇴근하는 게 불가능하다.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을 조사했을 때 주 80시간이 넘는 전공의의 80% 정도는 내과나 외과, 산부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 입원 환자를 봐야 하는 과들이다. 전공의들이 사직한 후 그 공백을 메우다보니 36시간 연속 근무 같은 건 없어져야 할 구시대 유물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나는 했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는 논리는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수련환경을 바꿔서 필수과도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
수련 현장은 전공의 맞이할 준비돼 있나
새 정부 출범 후 전공의들 사이 대화 기류가 강해지는 분위기도 주목했다. 지도부를 교체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국회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고 했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통해 오는 9월 대거 복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내·외·산·소는 ‘100% 복귀’ 가능성을 낮게 봤다. 전공의 복귀율에서도 인기과와 기피과가 드러날 것으로 봤다.
전공의들이 돌아온 이후도 걱정이다. 남은 전공의와 복귀 전공의 간 교육 격차나 갈등, PA와 전공의 간 업무 분배 등이 지적된다.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는 대책은 없다. 그래서 준비 없는 복귀는 오히려 혼란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전공의 9월 복귀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복귀하기로 결정된다면 얼마나 많은 전공의들이 돌아올 것으로 보는가.
최동호: 얼마나 많이 돌아오느냐가 중요하다. 100% 복귀는 아닐 것이다. 사직 후 입대한 전공의도 많다. 사직 전공의의 50~70% 정도만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되면 상황이 애매해진다. PA를 충원하기 전으로 돌아가기도 힘들다. 남아 있던 전공의와 돌아온 전공의, PA가 섞여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직군별 업무 범위가 확정되지 않았고 수련 프로그램도 불확실하다. 갈등도 예상된다.
홍순철: 현재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는 전공의 8명 중 3~4년 차 3명이 돌아왔다. 1~2년 차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전공의들이 밖에서 1년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필수의료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굳어지지 않았겠는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3~4년 차는 기존에 수련 받은 게 아까워서 전문의 자격을 따려고 돌아왔을 텐데, 이들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없어질 과를 모아 놓고 좌담회를 진행하는 셈이다. 이게 우리나라 의료 현실이다. 산과 펠로우도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 산과 펠로우가 9명 뿐이었다.
최동호: 내·외·산·소가 메이저과가 아닌 ‘메이저 기피과’가 됐다.
- 수련 현장은 돌아오는 전공의들을 교육할 준비가 돼 있는가.
최동호: 줄이거나 중단했던 전공의 대상 컨퍼런스 등 교육부터 원상복구해야 한다. 남아 있던 전공의와 돌아온 전공의 간에도 교육 프로그램 등에 차이를 둬야 하지 않나 싶다.
김대중: 솔직히 얘기하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준비할 시간을 확보하고 수련교육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든 다음 전공의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9월부터 수련병원별로 전공의들이 복귀한다면 가장 중요한 건 중단됐던 수련교육 프로그램을 다시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전공의 대상 컨퍼런스나 논문 발표 등이 안 되고 있었다. 서둘러서 원내 기본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정상화해야 한다.
윤신원: 병역 문제도 있다. (병역법 시행령에 따라) 현재 의무사관후보생이 33세까지 수련을 마칠 수 없으면 입대해야 한다. 복귀한 전공의가 이 문제로 갑자기 수련을 중단하고 입대해야 한다면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 전문의 자격시험은 어떻게 하는가. 당분간 1년에 2번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김대중: 입영 특례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문의 시험을 6개월에 한번씩 시행하는 건 힘들다. 전문의 시험을 한번 실시하는 데 몇십억원이 드는데 정부는 지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응시료가 비싼 거다. 수요를 따져봐야 한다.
윤신원: 2025년도 전문의 자격시험은 응시자가 557명에 불과했다. 비용을 최소화했는데도 수억원 적자가 난 것으로 알고 있다. 쉽지 않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