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에 늘어나는 ‘재활난민’ 해결방안은?
중증환자 재활의료 ‘골든아워’ 사수 위한 ‘재활병동’ 도입 必 임재영 교수 “전문재활치료 필요한 환자 대상군 확대해야”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 추진에 의료 현장에서는 불합리한 중증도 분류로 인한 ‘재활난민’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증환자 비율을 올려야 하는 병원들이 재활병상을 줄이면서 중증환자 재활의료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이 지난 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의료개혁 추진과 혁신적 재활의료 전달체계 마련을 위한 정책 공청회’에서 재활의학 전문가들은 상급종합병원 내 중증환자와 중증 장애인을 위한 ‘필수 재활병동’ 도입을 강조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임재영 교수는 중증환자 재활의료 적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상급종합병원 내 필수 재활병동을 도입하고, 급성기 의료기관 입원 초기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집중재활 수가’ 도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중증 질환이나 외상, 수술 직후 기능 회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치면 환자는 ‘신(新) 재활난민’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며 “급성기 재활치료는 기능 회복, 사회복귀, 의료비 절감을 위한 ‘골든타임’이지만 지금 시스템은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 의료체계와 의료개혁 추진 과정에서 필수의료에 재활의료가 포함되지 못해 재활의료 체계 혁신이 우선순위에서 고려되고 있지 않다”며 “급성기 환자들이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전문재활치료에 필요한 환자 대상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입원초기 재활 개입을 체계화해 46시간 내 기능평가와 재활치료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급성기 병동 내 재활 환자들의 경우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어 다학제 협진 체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조기 재활치료가 가동되도록 수가 기준도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국립교통재활병원 재활의학과 김태우 교수는 “재활의학과에 병상이 없다. 진료를 할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이라며 “회복기 병상도 (재활의학과) 병상에 포함돼야 한다. 통합기능평가를 통해 충분한 재활을 받고 다학제 진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급성기 진료를 받고 재활의료로 완결되는 급성기 진료체계 수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중증환자 조기 재활 수가가 있어야 한다. 돈을 벌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환자들이 안전하게 진료 받고 돌아가도록 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으로 인해 중증환자 재활의료 시기를 놓쳐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상급종합병원 내 재활병상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재활의학과 역할을 장애인 관련과로 확대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 이진용 교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 불똥이 재활의학로 튀었다. 병상을 줄이면서 학문 후속세대도 사라지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좀 더 도전적인 정책 제안이 필요하다. 중증환자 재활의료를 위한 필수병상으로 10병상은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재활병상 확보를 위해선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평가기준에 재활병상 10개를 두고 없으면 탈락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안된다면 어린이 공공진료센터 모델을 벤치마킹해 재활센터 성과 평가를 통한 묶음 지불 보상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응급의학의 응급환자 트리아지(Triage)처럼 모든 퇴원환자 재활상태에 대해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한 재활서비스 제공의 주도권을 확립해야 한다”면서 “재활의학과가 환자 삶의 질을 결정 짓는 의료의 마지막 관문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에서 반드시 치료 받아야 하는 중증환자 재활의료 기능이 저하되지 않도록 급성질환 적합질환군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유정민 건강보험지불혁신추진단장은 “정책적으로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시범사업 기간 중 적합질환군 영역을 넓히고 조정해 나갈 생각이다. 필수 중증이라고 획일적으로 제시하진 못한 부분이 있다. 현장 이야기를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유 단장은 “급성기 중증환자 기능평가나 사회 복귀, 타 의료기관 전원 전까지 역할 등이 제한되는 부분이 있다. 대상 질환자나 필요기능이 무엇인지 보면서 적합질환자를 보완해 상급종합병원 기능이 저하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한지아 의원은 “회복기 재활병상은 전체 입원병상의 5%에 불과하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으로 사실상 필수의료라고 할 수밖에 없는 영역인 재활의학이 중증도가 안 된다고 등한시되고 축소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의원은 “구체적인 성과지표나 병상 보상이 있지 않으면 사실상 (병상을) 보전하기 어렵다. 의료개혁추진단에서도 진료과별 형평성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늘어나는 진료비 차원에서 보자면 구체적으로 재활영역에 대한 부분도 봐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