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 진료 불가? '정당 거부' 아냐"…대구 병원들, 잇따라 패소
대구파티마병원 시정명령 취소 청구 '기각' "정당한 수용 거부, 기초 진료했어야 성립" 대구가톨릭대병원도 1·2심 모두 패소
지난 2023년 발생한 대구 10대 중증외상 환자 사망사건으로 행정처분 받은 대구파티마병원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 소송에서 패소했다. 같은 사유로 소송을 제기한 대구가톨릭대병원에 이어 두 번째다. 두 병원 모두 배후 진료가 불가능해 환자를 받기 어려웠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정당한 수용 거부 사유로 보지 않았다. 병원 의료진이 환자 중증도 분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 제5부는 지난달 24일 대구파티마병원 운영 재단인 툿찡포교 베네딕도수녀회가 보건복지부 시정명령 등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송 비용도 병원 측이 부담하게 했다. 대구파티마병원은 지난 2023년 3월 19일 4층 높이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환자 A양이 가장 먼저 이송된 지역응급의료센터다. A양은 대구파티마병원을 거쳐 지역 내 수용 가능한 의료기관을 찾던 도중 심정지로 사망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후 2시 14분경 대구북부소방서 119구급대가 A양을 구조했다. 당시 A양은 좌측 후두부 부종과 우측 족관절 부위 통증이 있었으나 의식이 있었고 간단한 대화도 가능했다. 119구급대는 A양이 중증외상환자는 아니라고 판단해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대구파티마병원으로 이송했다.
오후 2시 34분경 119구급대는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B씨에게 '환자가 2~3m 정도 높이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측되고 활력징후는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전공의 B씨는 환자·보호자와 면담한 뒤, 환자 스스로 뛰어내렸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신건강의학과 폐쇄 병동 입원이 가능한 대학병원 전원을 권했다.
이후 3시 20분경 119구급대가 다시 A양 수용이 가능한지 유선 문의하자 대구파티마병원 의료진은 정신과 진료·입원이 안 되므로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A양은 이날 오후 4시 29분경 C병원 인계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해 대구가톨릭대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옮겨졌으나 오후 6시 27분경 저혈량 쇼크 추정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5월 복지부는 대구파티마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 등 4개 병원이 환자 수용 능력 확인 요청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했다며 시정명령과 6개월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내렸다. 대구파티마병원과 경북대병원에는 중증도 분류 의무 위반까지 적용해 과징금도 부과했다.
대구파티마병원 측은 이같은 복지부 처분이 부당하다고 했다. A양이 처음 대구파티마병원에 도착했을 때 전공의 B씨가 환자를 대면해 "병력 청취와 증상 문진, 수상 부위 확인 등 시진"했다고 항변했다. 중증도 분류 기준에서 "계획적이거나 뚜렷한 자살 시도는 중증도 2등급, 하지손상은 5등급으로 분류"하므로 B씨가 "외상 중증도는 높지 않으나 정신의학적 중증도가 높다고 판단"해 다른 의료기관 이송을 권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119구급대가 유선으로 '정신과 진료는 나중에 받을 테니 외상 진료만 받을 수 있느냐'고 다시 문의했을 뿐, A양의 상태 변화에 대한 정보는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고 했다. 따라서 "환자 상태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정신의학적 중증도가 높은 응급 환자를 수용해도 진료가 어려워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의료진, 구급대원 말만 듣고 직접 중증도 분류 안 해"
법원 판단은 달랐다. 전공의 B씨가 직접 환자 중증도를 판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정신의학과 응급 치료를 우선한 것 자체가 중증도 분류에 따른 판단이라는 병원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응급의료 핵심 주체는 의사와 같은 의료인이다. 응급구조사가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면 의료인은 응급구조사가 전해준 정보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직접 환자를 대면해 중증도 여부를 판단하고 필요한 응급처치와 진료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양은 대구파티마병원에 도착한 뒤 들것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로 5분 정도 머물렀는데, 그 사이 의료진이 "만연히 구급대가 전달한 환자 상태와 사고 경위만을 기초로 응급 환자 여부와 진료과목을 결정한 뒤 병원 수용을 거절했다"고 봤다. 병원 측 주장처럼 "직접 환자 활력징후를 측정하거나 외상 등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봤다고 인정할 자료도 없다"고 했다.
A양이 중증도 2급으로 분류될 만큼 "계획적인 자살시도였다고 단정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외상이 5등급 하지손상뿐이라고 판단한 것은 오히려 "의료진이 제대로 중증도 분류를 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대구파티마병원이 재차 환자 수용을 거부한 뒤 오후 3시 40분경 A양을 진료한 D병원 의료진이 "안구편위, 좌측 후두부 부종으로 뇌출혈 의심" 소견을 냈고, A양이 대구파티마병원에 처음 도착하고 "불과 1~2시간 만에 심정지로 사망한 점"도 들었다.
의료진이 조사 과정에서 "자살 시도가 의심되는 정신과적 응급 환자로 판단해 접수를 취소했다. (접수를 취소해서) 정상 진료가 아니므로 중증도 분류는 시행하지 않았다. 이런 환자는 대개 중환자가 아니므로 (병원 시스템에서 진료 접수를 취소하고자) KTAS 5등급이라고 입력했다"고 진술한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수용 거부 정당화 사유 없다"…청구 기각에 항소
이렇게 대구파티마병원 의료진이 중증도 분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이상 "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응급의료 거부 사유도 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다른 전문과목 영역 경험이 부족하거나 응급환자를 적절히 응급치료할 의사가 부재중 또는 신병으로 진료를 할 수 없는 경우 응급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된다"며 "그러나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환자에 대한 기초 진료로 중증도 분류를 제대로 시행했음을 전제로 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문의에서 구급대가 "보호자가 외상 치료부터 원한다. 다른 병원은 외상 환자 수용이 어렵다"고 전달했는데도 정신과 치료를 들어 거부한 점도 문제라고 했다. 설령 구급대가 환자 상태 변화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대구파티마병원 역시 외상 환자 수용 여력이 없었더라도 "정신과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사유만으로는 이같은 수용 거부를 정당화하긴 어렵다"고 했다.
한편, 뇌출혈 진단을 내린 D병원도 의료진 부재로 수용을 거부했지만 대구파티마병원과 같은 선상에 두기 어렵다고 했다. D병원 의료진은 환자를 진찰해 중증도 분류를 했고, 뇌질환 전문의가 없어 뇌출혈 치료가 어렵다며 전원을 권한 만큼 '정당한 사유'에도 해당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법원은 복지부 처분에 잘못이 없다면서 대구파티마병원 측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병원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서울고등법원 제6-2행정부(나)가 이 사건을 살피고 있다.
대구가톨릭대병원도 행정 소송 1·2심 모두 '패소'
대구파티마병원에 앞서 대구가톨릭대병원도 시정명령과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행정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대구가톨릭대병원 운영 법인 선목학원이 낸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이 당시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 진료가 불가능했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정당한 수용 거부 사유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구파티마병원과 마찬가지로 대구가톨릭대병원 의료진 역시 119구급대원 설명만 듣고 기초적인 진료는 하지 않았다고 봤다.
병원 측이 불복해 항소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지난 15일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다)는 대구가톨릭대병원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1심) 판결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