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적응증 혁신신약, 대부분 급여 사각지대”, 해법은?

국회서 ‘혁신 신약 불평등성 해소’ 토론회 개최 의료계 “적응증별 불평등…접근성 확대 개선 시급” “적응증별 가중 평균값 고려할 수도”…시범사업 제안도

2025-04-25     김찬혁 기자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 신약 불평등성 해소 및 규제개선 정책 토론회’ 모습. (왼쪽부터)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안정훈 교수, 삼성서울병원 종양내과 홍정용 교수, 럿커스-뉴저지주립대 약대 서동철 겸임교수.

다중 적응증 혁신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자, 국회와 의료계,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 모색에 나섰다.

지난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혁신 신약 불평등성 해소 및 규제개선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소병훈, 김윤, 장종태 국회의원실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가 주관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다중 적응증 약제의 접근성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이 논의됐다.

이날 연자로 나선 삼성서울병원 종양내과 홍정용 교수는 “면역항암제와 같은 혁신 신약들은 기존 치료법과는 전혀 다른 기전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10년 사이 치료 현장을 크게 바꿨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혁신 신약들의 허가 적응증 대비 급여 적응증은 굉장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키트루다나 옵디보 같은 면역항암제는 20~30개 넘는 허가 적응증을 갖고 있지만 실제 급여 적응증은 대략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적응증별로도 불평등 문제가 존재하며, 폐암에 비해 간암, 담도암, 췌장암과 같은 암종은 급여되는 신약이 적어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특히 홍 교수는 간암 분야에 대해 “그나마 2~3년 전에 ‘티쎈트릭(성분명 아테졸리주맙)’이라는 면역항암제가 보험 급여가 되어 환자들의 생존율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면서도 “담도암의 경우 10년 이상 1차 표준 치료가 바뀌지 않았는데, 최근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라는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이 생존율을 크게 향상시키는 대규모 임상연구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급여가 되지 않아 환자들이 고가의 치료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말이 ‘실비보험(실손의료보험) 있으시냐’라는 점은 굉장히 불편한 현실”이라며 “간암 환자든 담도암 환자든 당연히 새로운 치료법이 빨리 급여화되길 바란다”고 토로했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문지용 교수는 암 외에도 호흡기 질환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은 암이나 심혈관 질환 다음으로 전 세계 사망 원인 3~4위에 달하는 질병 부담이 큰 질환”이라며 “COPD로 입원한 환자 중 3~4%가 사망하고, 1년 사망률이 24%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생물학적제제로 분류되는 혁신 신약이 개발됐지만, 이 약제 역시 급여 문제로 환자들이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중 적응증 약가 제도, RSA처럼 고민되어야 할 시점”

이날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안정훈 교수는 다중 적응증 약제의 급여 확대를 위한 대안으로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안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약가 제도는 새로운 적응증이 추가될 때마다 약가를 인하하는 방식”이라며 “적응증이 30개라면 30번 인하하게 되어 약값이 크게 하락하기 때문에 제약사가 적응증 확대를 신청할 인센티브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해외 주요국의 다중 적응증 약가 제도로 세 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첫째, 적응증별 가중 평균값(블렌디드 프라이싱)으로 적응증별로 가치를 계산해 그 평균값으로 단일 약가를 유지하는 방식(이탈리아, 프랑스, 호주, 일본 등에서 적용), 둘째, 환급률 차등 적용으로 적응증별로 환급률을 다르게 하는 방식(이탈리아, 스위스, 호주, 벨기에 등에서 적용), 셋째, 적응증별 개별 허가 방식이다.

안 교수는 “일본의 경우 비용 효과성 평가 시 적응증을 나누어 약의 가치를 산정하고, 그 가치를 평균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스위스는 적응증별로 약제 사용에 대한 코드가 따로 있어 명목 가격은 같지만 환급률을 다르게 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적응증별 개별 허가 방식은 약사법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위험분담제 틀 안에서 블렌디드 프라이싱이나 환급률 차등 적용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블렌디드 프라이싱이 투자 비용이 적어 먼저 시작한 후 점차 환급률 차등 적용으로 제도를 확대해 나가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부 혁신 신약의 시범사업 도입을 통해 다중 적응증 약가 제도의 타당성을 검증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방혜련 전무는 “다중 적응증 약가 제도 도입은 과거 위험분담제(RSA) 도입과 비슷한 맥락에서 고민되어야 할 시점”이라며 “시범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제도가 무엇인지, 보험권에 들어오지 못하는 여러 적응증을 어떻게 보장성 강화 틀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 검증해보자”고 제안했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 이중규 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복지부·공단, 의료계 등 제안에 신중론

이날 건강보험공단 약제관리실 김형민 부장은 다중 적응증 약가 제도 도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 부장은 “다중 적응증 약제를 포함한 혁신 신약의 치료 접근성 제고를 위해 비급여된 적응증이 조속히 급여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도 여러 우려 사항을 제기했다.

김 부장은 “적응증별 가격을 달리하는 방식은 복수의 청구 코드 신설과 가격 차별이 명시화되어 환자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환급률 차등 적용도 명목상 단일 가격과 실제 가격 사이의 건강보험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적응증 가중 평균가 방식은 현행 제도 대비 가격 상승 가능성, 타 약제와의 형평성, 사후 관리 측면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부장은 “해외 일부 국가에서 도입한 제도를 벤치마킹할 때는 각 국가별 제도가 도입된 배경과 다른 제도와의 연계 등 포괄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며 “신약의 가치와 환자 접근성 향상뿐 아니라 재정 관리도 동시에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 이중규 국장은 제도 개선 검토 필요성에 더 무게를 두는 열린 입장을 보였다. 이 국장은 “최근 항암제든 호흡기 질환 치료제든 한 약재에서 적응증이 여러 개가 되는 것이 추세이고,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현실을 인정했다.

이어 “건강보험 제도의 기본 방향은 국민들이 필요한 약을 적정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다보험 체계가 아닌 단일 보험 체계에서 단일 구매자인 건강보험이 기존의 전통적인 구매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최근의 약 개발이나 생산 방향 변화에 맞춰 구매하는 데 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이 제도는 검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재정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기존 제도적 관성이나 이로 인해 발생할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전반적으로 논의해 좋은 약을 적기에 공급하는 데 있어 우리 제도가 문제가 있다면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신약 접근성, 새 정부에서 적극 해결해야”

이날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축사를 통해 “환자들에게 신약은 단순한 의약품이 아닌 소중한 생명줄”이라며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러 이유로 신약이 환자들에게 사용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관료적인 규제 문제와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비용 부담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까지 우리나라 의료 정책이 전반적으로 대단히 거칠고 정교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고, 이런 특성이 신약에도 적용되어 비용 중심, 적응증 중심 보험급여 등재 절차가 환자에게 신약이 전달되지 못하게 하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김 의원은 “조금 있으면 새 정부를 맞이하게 될 텐데, 새 정부는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정교한 정책을 마련하고 불필요한 규제들을 대폭 개선해 신약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반드시 신속하고 폭넓게 사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이영신 부회장은 축사를 통해 “혁신 신약은 기존 치료법이 없던 질환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주는 소중한 의약품”이라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허가받은 적응증보다 급여가 적용되는 범위가 좁고, 주요 해외 국가에 비해 환자들이 신약 또는 새로운 적응증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건강의 형평성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환자 중심의 접근성과 건강 형평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