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치료, 정부의 급여 정책이 치료 성패 가른다
앤드류 데이비스 교수, 영국 NICE의 균형 잡힌 신약 평가 구조 강조 "영국은 ADC, 이중특이항체, CAR-T 치료제 모두 급여 사용 가능해" "NICE, 신약 평가에 경제성 전문가는 물론 임상의, 환자단체 모두 참여"
"임상적 효과만으론 부족하다. 신약이 환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회 전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영국 국립암연구소 림프종 연구 그룹 의장(Chair UK National Cancer Institute Lymphoma Research Group)이자 사우스햄튼 대학병원(University Hospital Southampton) 혈액종양학 교수인 앤드류 데이비스(Andrew Davies)의 말이다.
데이비스 교수는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 치료에서 신약의 역할이 커지는 상황에서, 단순한 약효 평가를 넘어선 포괄적 급여 심사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일의료보험제도 하에서 운영되는 영국의 NICE(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are Excellence)는 약제의 비용 효과를 평가할 때 생존 혜택과 같은 임상적 근거뿐 아니라 환자들의 미충족 수요, 사회적 부담 경감, 생산성 회복 등 다각적인 요소를 기준 삼아 급여 여부를 판단한다.
NICE의 경제성 평가 시스템은 치료제가 실제 임상에서 환자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정밀하게 반영할 수 있는 구조다. 혈액암 치료제도 고형암과 동등한 수준으로 심사 받으며, 관련 전문의와 경제성 평가 전문가, 환자단체 등이 함께 심의에 참여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전체생존율(Overall Survival, OS) 중심의 경제성 평가가 고착화되며 항암 신약, 특히 혈액암 분야에서의 신속한 급여 진입이 지체되는 실정이다.
데이비스 교수는 "CAR-T나 이중특이항체 치료와 같이 신속성과 시의성이 핵심인 신약은 평가 지표 자체가 달라야 한다"며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의학적, 경제적, 사회적 판단을 융합하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최근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ICKSH 2025) 참석을 위해 방한한 데이비스 교수를 만나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iffuse large B-cell lymphoma, DLBCL)을 통해 바라본 혈액암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와 한국의 보험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었다.
-림프종 치료는 '리툭시맙'의 개발로 1차 도약기를 맞은 이후, 항체-약물접합체(antibody-drug conjugate, ADC), 이중특이항체, CAR-T를 비롯한 치료 옵션이 늘어나며 2차 도약기를 맞고 있다.
현재 DLBCL을 비롯한 림프종은 다양한 치료 옵션들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림프종은 항암화학요법이나 항체 약물 정도를 치료 옵션만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현재는 ADC, 이중특이항체, CAR-T와 같은 새로운 옵션들이 등장하면서 치료의 지평 자체가 넓어지고 있다. 의료진과 환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비호지킨 림프종(Non-Hodgkin Lymphoma, NHL)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B세포 림프종 중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DLBCL은 상당히 공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현재 상당수의 DLBCL 환자들이 완치를 목표로 1차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리툭시맙'을 포함한 R-CHOP 요법이 등장하며 DLBCL 치료에서 긍정적인 예후를 기대할 수 있게 됐고, 최근에는 ADC인 '폴라투주맙 베도틴(제품명 폴라이비)'과 R-CHP 요법을 병행하는 치료(이하 Pola-R-CHP)가 가능해지며 환자들이 더욱 개선된 치료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됐다. Pola-R-CHP 요법은 임상연구를 통해 환자의 치료 예후 개선과 재발 감소에 있어 유의한 효과를 입증했으며, 약 80%의 환자는 치료 이후 2~3년 이상까지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러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재발하거나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이중특이항체, CAR-T와 같은 대안적인 치료법들을 고민해 볼 수 있다. 특히, '글로피타맙(제품명 컬럼비)', '엡코리타맙(제품명 엡킨리)'과 같은 이중특이항체는 면역 T 세포가 악성 B 세포를 타깃해서 공격할 수 있도록 결합시켜주는 독특한 기전을 가지고 있어, 치료 효과나 안전성 면에서 기존의 항암화학요법보다 개선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외에도 Pola-R-CHP 요법으로 어느 정도 관해에 도달한 환자를 대상으로 줄기세포를 동원한 치료법을 사용하는 등 최근 DLBCL 치료는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기존의 항암화학요법에서 탈피한 새로운 접근법이 가능해졌다.
-영국에서는 ADC나 이중특이항체, CAR-T 등의 신약에 대한 급여가 적용되고 있나.
영국에서는 NICE라는 기관이 약물에 대한 비용효과성, 급여 적정성 등을 평가해 급여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단일의료보험제도(single-payer healthcare system)를 운영하고 있다. DLBCL 치료에 사용되는 모든 신약 역시 NICE의 철저한 비용효과성 평가를 거쳐야만 급여 사용이 가능하다.
앞서 언급된 DLBCL 신약들은 NICE 심사 결과 비용효과성이 입증됐고, 특정 치료제에 대해 국가나 사회가 비용을 지불할 의사를 판단하는 지불의사금액 한계치(willingness to pay threshold) 역시 충족시켰다.
대표적으로 Pola-R-CHP 요법은 기존에 치료 이력이 없는 DLBCL 환자들의 1차 치료에 대한 급여 사용이 가능하다. 급여 기준의 경우, 중추(pivotal) 임상인 POLARIX 연구에 포함된 피험자들의 특성을 반영해, 80세 이하 IPI(International Prognostic Index) 2~5점 사이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1차 치료 후 12개월 이내에 재발하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악시캅타진실로류셀(제품명 예스카타)'과 '리소캅타진 마라류셀(제품명 브레얀지)' 등 두 가지 CAR-T 치료제를 2차 치료 옵션으로 급여 사용할 수 있다. 만일 1차 치료 이후 재발까지 12개월 이상이 걸렸다면, 기존 항암화학요법이나 줄기세포 치료를 우선 적용할 수 있다.
3차 치료의 경우, '티사젠렉류셀(제품명 킴리아)' 등 CAR-T를 포함해 글로피타맙, 엡코리타맙 등 이중특이항체가 급여 승인을 받았다. 이 외에도 1차 치료에서 Pola-R-CHP 요법을 사용하지 않았던 환자들, 특히 고령 때문에 CAR-T나 이중특이항체 치료를 받기 어려운 경우에는 폴라투주맙 베도틴과 '벤다무스틴', 리툭시맙 병용요법을 사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영국은 NICE라는 단일 기관이 약제 급여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치료 과정 전반에 있어 사용되는 모든 약제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고려하고, 관련된 비용 체계를 총망라해 검토, 심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환자들 역시 신약 급여에 대한 수요가 높고 관련된 의견을 활발히 내는 편이며, 신약 접근성 확보에 대한 대중의 여론이 잘 형성돼 있다. 즉, NICE는 신약의 임상적 근거와 환자들의 미충족 수요, 사회적 필요성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균형잡힌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앞서 언급된 ADC, 이중특이항체, CAR-T 등의 급여 사용이 불가능하거나 상당히 제한적이다.
영국에서는 규제 당국이 약제를 평가할 때, 단순히 임상적 효과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예를 들어, 관해에 도달하거나 재발 없이 생존하는 환자의 수가 증가할수록 경제 활동이 가능한 생산인구가 늘어나고,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의료적 부담이 줄어들어 국가 전체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Pola-R-CHP 요법을 1차 치료 단계에서부터 사용해 재발 환자 수를 줄일 수 있다면, 2차·3차 치료에 따른 추가 의료비를 비롯한 사회적·경제적 부담을 경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Pola-R-CHP 요법은 기존 R-CHOP 대비 향후 재발, 불응 환자 수를 약 23%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입장에서도 처음부터 Pola-R-CHP 요법으로 치료를 받아 재발 없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면, 2차·3차 치료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신체적·심리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Pola-R-CHP 요법의 1차 치료 급여 적용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림프종 치료에서 재발이 환자에게 미치는 신체적·심리적·경제적 부담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치료제를 조기에 사용해 질병의 진행을 막고 재발을 예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급여 심의기관은 신약에 대한 경제성을 평가할 때, 'OS'를 중요한 지표로 보고 있다.
먼저 DLBCL 치료에서 OS만을 주요 지표로 삼고 접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질병의 진행을 막아주는 역량을 나타내는 무진행생존율(Progression-Free Survival, PFS)과 OS 데이터를 복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적합한 접근일 것이다.
예컨대, POLARIX 연구에서 치료 시작 후 2년 시점을 살펴봤을 때, Pola-R-CHP 요법군의 사망 위험도는 0.9 정도로 R-CHOP 대조군과 거의 유사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치료 후 5년 시점에서 Pola-R-CHP 요법군의 사망 위험도가 점차 개선되며 R-CHOP 대조군과 격차가 벌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도 추가적인 추적 관찰 데이터가 발표될 것으로 기대되며, 향후 결과에서도 Pola-R-CHP 요법이 사망 위험을 낮추는 데 있어 긍정적인 경향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의 림프종 전문가들은 Pola-R-CHP 요법의 급여가 거듭 거절되면서 급여기준을 'IPI 3~5점'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절충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답변에 앞서 과학자이자 임상 전문가로서 하위 그룹 분석은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POLARIX 연구는 IPI 2~5점에 해당하는 전체 환자군을 대상으로 설계됐다. 연구 결과를 특정 하위 그룹으로 나누어 해석할 경우, 그 결과를 전체 연구와 동일한 수준의 검증력으로 보는 데는 제한점이 있다.
다만 IPI 3~5점 환자군으로 급여기준을 고려한 것은 임상적으로 비교적 탄탄한 근거를 갖춘 하위그룹을 선택함으로써 실용적인 접근을 했다고 생각한다. POLARIX 연구에 포함된 환자들 중 IPI 3~5점에 속하는 고위험군은 약 3분의 2에 해당하며, 하위 그룹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이들 환자에서 Pola-R-CHP 요법이 보여준 임상적 효능 역시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5년 추적 관찰 연구를 살펴봤을 때도, IPI 3~5점 환자군에서 Pola-R-CHP 요법의 치료 효과를 더 크게 체감할 수 있었다. 또한 고위험군 환자들은 치료 개입이 가장 시급한 집단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현실적인 차선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다른 국가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급여 범위를 설정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재발·불응 DLBCL 환자에게 있어 이중특이항체 치료제가 갖는 임상적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린다.
영국의 경우, DLBCL 3차 치료에서 이중특이항체 대한 급여가 적용되면서 환자들이 비교적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3차 치료에 접어든 환자들 중에서는 건강 상태가 악화돼 항암화학요법을 견디기 어려운 경우나, 약물 독성으로 인해 부작용을 감당하기 힘든 사례가 많다. 또한, 자택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에 장기간 체류하며 치료를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환자들도 적지 않다.
물론 CAR-T 치료제도 유효한 치료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모든 환자에게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제조 및 생산에 있어 일정 시간이 소요된다는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질환이 빠르게 진행돼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반면, 이중특이항체는 즉각적인 투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환자에게 상당한 치료적 이점을 제공한다. 치료를 결정한 다음 날부터 바로 투약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높으며, 투약 방식도 간편해 자택과 가까운 병원에서 편리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중특이항체를 투약받은 환자들의 관해 달성율도 매우 높고, 치료 효과가 장기간 지속된다는 점 역시 큰 장점이다. 이러한 특징들을 고려했을 때, 이중특이항체의 등장은 재발, 불응 DLBCL 치료에 있어 아주 강력한 무기가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지난 미국혈액학회(ASH)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글로피타맙 임상연구의 3년 추적 결과 재발·불응 DLBCL 환자들의 40%가 완전관해(Complete Remission, CR)를 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림프종 환자들이 글로피타맙 치료를 통해 상당히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CR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세잔존질환(Minimal Residual Disease, MRD) 음성(negative) 달성율이 높았다는 점 역시 고무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중특이항체는 이상반응에 있어서도 CAR-T 치료제 대비 충분하게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Cytokine Release Syndrome, CRS)이 발생하더라도 대부분 'grade 1' 정도에 그쳐, 적절한 교육을 받은 의료진이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 환자들이 여러 가지 제도적 문제로 인해 이중특이항체 치료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현재까지 발표된 데이터들을 고려할 때 이중특이항체는 기존에 3차 치료에 사용했던 다른 약제들과 비교해도 매우 우수한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했다. 한국 정부가 의료진과 환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약제에 대한 데이터를 참고해서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에서는 현재 혈액암 치료제가 고형암에 비해 급여 등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국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이슈화된 적이 있는지, 영국 정부는 심사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영국에서도 고형암에 비해 혈액암 치료제의 급여 등재가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혈액암 환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고형암에 비해 축적된 임상 데이터가 부족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혈액암과 고형암의 급여 승인율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볼 때 공정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NICE에서는 혈액암과 고형암에 대해 각각 별도의 위원회가 운영되지는 않지만, 종양학 전문가를 포함한 다학제위원회가 급여 적정성 평가를 담당하고 있다. 다만, 해당 위원회 내에는 혈액암에 초점을 맞춘 세부 그룹이 구성돼 있어, 혈액암 치료제에 대한 급여 심사에서 관련 데이터 분석과 자문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는 급여심사위원회에 비용효과성 평가 전문가뿐만 아니라, 임상 현장에서 활동하는 의료진들이 함께 참여해 급여 적정성 평가와 심사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의학적, 경제적, 사회적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려해 급여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