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췌장암 술기, 한국에서만 못 써…종주국 뺏길 판”

췌장담도학회, 전문의 부족 문제 등 현안 집중 논의 허가·급여·신의료기술평가 제도 개선 요구 이어져

2025-04-04     김찬혁 기자
4일 열린 대한췌장담도학회 기자간담회 모습. (왼쪽부터) 우상명 학술이사, 송태준 총무이사, 서동완 이사장, 유병무 회장, 현종진 대외협력이사.

국제 췌장담도학술대회(IPBM 2025) 개막을 기념해 마련된 기자간담회에서 췌장·담도 전문의 부족, 허가·급여 심사 제도 문제 등이 도마에 올랐다. 현장의 의료진들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4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대한췌장담도학회(KPBA)가 주최하는 국제췌장담도학술대회(IPBM 2025)가 열렸다. 4일과 5일 양일간 진행되는 이번 국제 학술대회를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전문의 부족 문제 등 췌장·담도 분야 현안이 집중 논의됐다.

이날 송태준 총무이사(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는 학회 차원의 전문의 부족 해결 방안에 대해 “췌장·담도 분야는 시술이 어렵고 예후도 나빠서 젊은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으려 한다. 이 문제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대만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학회 차원에서 전문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 TF(Task Force)를 구성하고 있으며, 발표 기회 확대, 국제 교류 프로그램, 조기 교육 등을 통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췌장암과 담도암의 조기 검진 문제도 다뤄졌다. 우상명 학술이사(국립암센터 종양면역연구과)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전환 병변(precancerous lesion), 즉 암으로 발전하기 전 단계 병변을 조기에 포착하는 기술에 대한 세션이 마련돼 있다”며 “향후 정확한 가이드라인 수립을 위한 기반 연구를 학회 차원에서 이어가고 있다”고 답했다.

유병무 회장(아주대병원 소화기내과)은 “췌장암은 예후는 나쁘지만 발생률이 낮아 국가 암 검진 대상에 넣기엔 정책적으로 쉽지 않다. 비용 대비 효과성(cost-effectiveness)과 진단 정확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담도암이 통계상 과소 평가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우상명 이사는 “간내 담도암이 간세포암으로 분류되거나 영상 진단만으로 질병 코드가 부여되는 경우가 있다”며, “중앙암등록본부와 병리 진단 기준 통합을 위한 협력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및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신의료기술평가와 관련한 제도적 한계도 제기됐다.

서동완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은 “예를 들어 우리가 숟가락 쓰는 건 허가를 받았는데, 그걸로 국을 떠먹으면 불법이라는 식”이라며, “ERCP(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나 EUS(내시경 초음파) 가이드와이어 등도 췌장에는 허가됐지만, 담도에 쓰면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식이다. 허가를 위해 너무나 많은 임상 연구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송태준 총무이사도 “국내에서 개발한 내시경 유도 고주파 열치료 장비는 미국 의사들이 매년 배우러 올 정도지만, 국내에서는 허가가 제한적이라 임상 현장에서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며 “결국 외국에서 대규모 임상을 통해 상용화되고, 우리는 종주국임에도 기술 주도권을 잃는 아이러니가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유병무 회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하지 말라는 것만 금지하고, 우리는 하라는 것만 해야 하는 구조다. 제도 체계 전환 없이는 현장 의사들이 신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기자간담회 종료 후 송태준 총무이사는 본지 질의에 스탠트 관련 시술의 건강보험 급여 문제를 지적했다.

송 총무이사는 “췌장암 수술 비용이 산정특례 적용 시 150만 원인데, 수술 후 고름 배액을 위한 내시경 시술은 비급여로 500만원 이상 나온다. 시술 도구인 스탠트가 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부분적으로 급여화를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환자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