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용은 증가하고 제품은 사라지며 환자는 불안한…
이진휴의 의기충천(醫機衝天)
최근 의료기기 산업에서의 규제 강화가 산업 생태계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규제 정책은 의료기기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복잡계 이론을 적용해보면 그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즉, 행정적 효과를 달성하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실보다 득이 적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규제의 주요 방향은 국제 조화, 오래된 허가증의 갱신, 그리고 GMP(우수 제조 관리 기준)의 강화다. 국제 조화를 통해 우리나라 의료기기의 안전 수준을 높이고 수출 규제 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표지만, 현실적으로는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대형 수출 제조사만이 혜택을 받고, 내수 중심의 제조사들은 원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시장 점유율이 높은 제품만이 생존하고, 그렇지 않은 제품은 단종 수순을 밟게 된다. 이는 환자와 의료진의 제품 선택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시장의 독점 또는 과점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수출을 금지했던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의료기기 다양성과 국산 대체재의 중요성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의료기기 허가 갱신제는 불필요한 행정 비용을 줄이고 오래된 허가에 대한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재허가 수준의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가중되고 있으며, 품목당 수억원에 달하는 시험 검사 비용도 발생한다. 이로 인해 수익성이 낮은 제품은 단종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과적으로 대체재가 없는 필수 의료기기의 공급 중단을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카테터나 캐뉼라 같은 소모품은 다양한 임상 상황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지만, 시장에서는 공급 중단이 강요되는 현실이 오고 있다. 이는 환자 치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3년마다 시행해야 하는 GMP 인증도 또 다른 문제다. 국내 의료기기 제조 시설이 국제 기준과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인 인증 절차로 인해 수천만원의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해외 제조소가 이미 CE(유럽연합 인증)와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관리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인증 비용이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규제 강화가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시험 검사 수요 증가로 국내 시험 기관의 매출이 증가하고, 이를 통한 재투자가 의료기기 생태계에 질적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규제 부담 증가로 인해 국내 제조업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으며, 의료기기 수입 비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2023년 기준 약 57%)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국제 인증을 받은 제품들이 국내 인허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또 내수 중심의 기업들이 고비용의 외국 시험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규제는 국가 주권과 국내 산업 육성을 위한 중요한 정책 수단이지만, 그로 인해 국민 건강이 위협받거나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규제 기관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보다 넓은 시각에서 규제 강화가 초래하는 전체적인 효과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여 년간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은 증가했지만, 국내 제조업은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국내 토종 수입사는 감소하는 추세다. 이는 국제 조화라는 규제 흐름이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 미친 영향 중 하나다. 이제는 의료기기 품목 감소 문제와 장기간 현장에서 안전성이 입증된 제품에 대한 관리 비용 증가 문제를 재평가해야 한다.
결국, 의료기기 수급을 위한 비용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에 100원에 구매할 수 있던 제품이 150원이 된다면, 이 추가 비용은 결국 환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낮은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적인 성공 사례를 갖고 있지만,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책이 고려가 필요하다. 비용은 증가하고, 제품은 사라지며, 환자는 치료에 대한 불안을 겪는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