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태원 인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선생님, 제가 여기에 왜 온 거죠?”
3개월마다 찾아오는 정기진료 시간, 나의 외래 진료실에서는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초기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은 마흔 두 살의 젊은 환자, 최미연 씨다. 유전성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 그녀의 어머니도 마흔 살에 같은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단다.
처음 미연 씨가 내 진료실을 찾아온 건 작년 가을이었다.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젊은 교수가 혼자 찾아와 이야기했다.
“요즘 이상해요. 강의 중에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려요. 학생들의 이름도 자꾸 헷갈리고……. 처음엔 그저 피곤한가 보다 생각했는데, 어제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못 찾았어요.”
그날 진료실에서 그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저는 알고 있어요. 우리 어머니도 마흔 살 때 똑같은 증상으로 시작되셨거든요. 열다섯 살에 어머니의 진단을 지켜봤고, 스무 살에 어머니를 떠나보냈어요. 그래서 더 무서워요. 제가 겪게 될 일을 너무 잘 알거든요.”
검사 결과는 미연 씨의 예감이 맞았음을 보여주었다. 유전성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 진단명을 말하기 전,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의외였다.
“다행이에요, 선생님. 이제라도 알게 되어 준비할 수 있잖아요. 어머니는 진단받고 나서야 당신의 혼란스러움을 이해하셨대요. 하지만 전 미리 알았으니 조금 다르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날부터 미연 씨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병과 싸우기 시작했다. 캘리그래피로 꾸민 일기장에는 매일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녀는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을 그림일기처럼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본 하늘, 수업에서 만난 학생들의 표정, 퇴근길에 들른 카페의 풍경까지.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이 그림들은 남을 테니까요. 제가 살았던 증거니까요.”
미연 씨의 진료 기록을 보다 보면 가끔 웃음이 나온다. 한번은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제가 세 번째로 오는 거 맞죠? 달력에 체크해뒀거든요. 근데 왜 달력에 체크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그러다가도 스케치북을 꺼내들면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어느 날은 내 얼굴을 그리며 물었다.
“선생님은 왜 신경과 의사가 되셨어요?”
순간 스무 살 시절, 할아버지의 파킨슨병을 지켜보며 무력감에 울던 나를 떠올렸다. 할아버지는 내가 의대생이던 시절에 돌아가셨다. 마지막까지 내 이름을 기억하진 못하셨지만, 내 손을 꼭 잡아주시던 그 따뜻함은 기억난다.
“저도…… 누군가의 기억이 되고 싶었나 봐요.”
그날 이후 미연 씨의 스케치북에는 가끔 내가 할아버지와 찍은 마지막 사진을 보며 울던 모습이 그려져 있곤 했다. 그녀는 그림으로 나의 이야기도 기억해 주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그림체는 점점 단순해졌다. 처음에는 섬세했던 선이 조금씩 흐트러지고, 복잡한 배경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림 속 감정만은 더욱 선명해졌다. 때로는 분노와 좌절로, 때로는 평온과 감사로 가득한 그림들. 그것은 마치 지워지는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 감정의 기록 같았다.
그녀가 동생과 함께 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동생은 미연 씨가 두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맸다고 했다.
“언니가 그림 그리는 걸 보면 마치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아요. 그때도 이렇게 매일 그림일기를 그렸거든요. 어머니 병수발을 들 때도, 언니는 늘 그림으로 하루를 기록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미연 씨가 특별한 부탁을 했다.
“선생님……, 제가 나중에 병원 오는 것도 잊어버리면 제 동생에게 이 스케치북을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저한테도 보여주시고 과거의 제가 그렸다고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이토록 의연하게 준비하는 그녀 앞에서,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병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제 미연 씨는 혼자서 병원을 찾아오지 못한다. 동생이 부축해 진료실로 들어올 때마다, 그녀는 마치 처음 보는 곳을 신기해하듯 두리번거린다.
“어머, 여기가 어디죠?” “미연 씨, 저예요. 김 교수…….” “아……, 네…….”
분명 나를 전혀 기억 못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스케치북을 보여줄 때만큼은 달라진다. 그림을 보는 그녀의 눈빛만은 여전히 맑다. 그녀는 마치 처음 보는 작품을 감상하듯 즐거워한다.
“어머, 이 그림 정말 예쁘네요. 누가 그린 거예요?” “미연 씨가 그렸어요.” “제가요……? 아……, 그렇군요…….” 잠시 슬픔이 스치는가 싶더니, 이내 환하게 웃는다. “그럼, 저는 화가였나 봐요?” “네, 정말 훌륭한 화가였어요.”
3개월마다 찾아오는 정기진료 날, 그녀가 올 때마다 나는 스케치북을 꺼낸다. 때로는 같은 페이지를 여러 번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새로운 감동을 느끼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그녀와 약속한 대로 들려준다.
“미연 씨, 이 그림들은 과거의 미연 씨가 그린 거예요.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매일매일 이렇게 그림을 그리셨죠.”
지난주에는 동생이 혼자 찾아왔다. 이제 미연 씨는 집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슬프지 않았다. 그녀의 스케치북 속에는 여전히 우리의 시간이 살아있으니까.
연구실 책상에는 여전히 미연 씨가 그려준 내 초상화가 놓여 있다. 매일 아침, 나는 그 그림을 보며 다짐한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어도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의사는 때로 치료자가 아닌, 기억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미연 씨에게서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올 그녀의 진료 시간에는, 빈 의자를 두고 스케치북을 펼쳐 볼 것이다. 그리고 믿는다. 우리가 함께 그린 시간이, 언젠가 그녀에게 다시 돌아갈 것을……. 비록 그림으로나마.
먼저 이런 뜻깊은 상을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한 환자와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의료의 본질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진료실에서의 만남이 아닌, 인간과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동행하는 여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의사로서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날 때마다, 저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의사란 무엇인가?"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 아니면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 하지만 수많은 환자들과의 만남은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의사는 환자 삶의 한 페이지를 함께 걸어가는 동행자이자,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증인이라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젊은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는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우리는 의료의 본질적 가치들을 하나둘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를 향한 이해와 신뢰, 그리고 치유를 향한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아픔을 기억하고 공감하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 상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잃어버린 신뢰를, 잃어버린 관계를 함께 찾아나가자는 격려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반드시 희망이 있음을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이 귀한 상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