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작성 사직전공의 "사실 인정…스토킹은 아냐"
서울중앙지법서 첫 공판…쟁점은 스토킹 혐의 여부 변호인 "불안감 조성 등 스토킹 범죄 요건 해당 안 돼" 검찰 "온라인 스토킹이자 사이버 불링" 주장
수련병원 복귀자 명단(블랙리스트) 게시로 구속된 사직 전공의 A씨가 명단을 배포한 사실 관계는 인정했지만,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는 부인했다. 명단 유포 행위가 법리적으로는 스토킹처벌법의 범죄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2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직 전공의 A씨의 첫 공판(형사13단독 이용제 판사)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A씨의 행위가 스토킹처벌법 상 범죄 행위에 해당되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A씨의 변호인 측은 사실관계에 따른 공소사실은 인정하나, 법률적으로 스토킹 범죄죄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 씨가 복귀자 명단을 게시한 행위가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범죄행위가 성립되는 요인을 충족하는지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검사 측에서 제기한 객관적 사실관계는 인정한다. 피고인도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자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그러나 피고인의 행위가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범죄 행위의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해선 상당한 의문"이라고 했다.
변호인은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범죄행위가 성립되기 위한 요건인 ▲상대방의 의사에 반할 것 ▲특정 행위를 통해 상대방에게 불안감·공포감을 유발할 것 ▲지속성·반복성을 갖출 것 등이 사직전공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변호인은 "공소장 범죄일람표에 기재된 피해자가 1,100명이다. 그중 485명의 피해자는 개인정보 게시 행위가 1회 혹은 2회에 그쳤다. 개인정보 공개가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수사기관이 조사한 30명 중 일부만이 불안감·공포감을 겪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 중 13명은 피고인의 행위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스토킹처벌법은 개인의 의사결정과 생활 형성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는 만큼 피해자별로 각각 범죄가 성립할지 따져봐야한다"며 "검사에 의해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 중에선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는 점도 참작해달라"고 했다.
검찰 측은 피고인의 행위가 2023년 개정된 스토킹범처벌법 상 범죄 행위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개정된 내용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의 정의를 명시한 제2조제1항에 상대방의 정보를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배포·게시하는 행위가 추가됐다.
검찰 측은 "피고인은 피해자의 성명, 근무 중인 병원, 출신 대학 등 개인정보를 텔레그램이라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불특정인에게 배포했다. 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스토킹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바로 명단에 추가하겠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고 명단에 대해 피해자를 조롱·비난하는 댓글도 있는 등 '온라인 좌표찍기의 성격'의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일방적으로 인터넷상에 게시하는 사이버 불링의 특성상 피해자의 거부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실제 명단에 포함돼 있는 피해자 중 11명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며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피고인의 보석 청구에 대한 심문도 진행됐다.
변호인 측은 피고인의 행위가 스토킹 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과 주소가 분명하는 점, 피해자 중 일부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해다는 이유로 보석을 허용해달라고 했다. 검찰 측은 해당 청구를 불허해달라고 했다.
변호인은 "이번 사건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스토킹 범죄와 너무나 다른 사건"이라며 "피고인이 피해자의 명단을 게시한 행위 외에는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해를 가한 행위를 한 바 없고, 또 동료인 의사들에게 피고인이 그러한 행위를 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피고인 A씨도 "현재 구속 수감 중인데, 증거 기록이 7,000장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증거 기록을) 반입하는 것도 불가하다"며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명단의 1,100여명의 이름을 다 기억할 수도 없다. 이에 방어하는 데 제한이 있다. 보석을 허가해 준다면 성실히 재판에 출석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증거 기록을 모두 열람하는 등 증거에 대한 조사를 시행한 후 오는 12월 13일 재판을 속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