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는 만났지만…"정부·전공의 빠졌는데 無소용"

2025 증원 고집하는 政 "대화 의미 없다" '전공의 배제' 우려도…"전공의도 나서야"

2024-09-23     고정민 기자
대한의사협회와 여야가 잇따라 만났지만 여야의정협의체 구성은 난망하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여·야·의'가 만났지만 '여·야·의·정' 협의체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부도 전공의도 움직이지 않는데 섣부르게 국면 전환을 시도하면 "일만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2일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회장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비공개로 면담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만난 지 3일 만이다. 면담 후 이 대표는 의협에 협의체 참여를 권하면서 당장 '여야의정'이 어렵다면 "'여야의'만이라도 만나서 대화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여당도 의협에 "우선 대화의 장에 나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협도 대화 필요성 자체는 인정한다. 대신 '전제조건'부터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대화하겠다며 의협이 먼저 물리기도 어려운 조건이다.

첫 번째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재검토다.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 초기부터 의료계가 내건 "가장 절대적인 참여 조건"이다. 하지만 의정은 물론 당정조차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 대표가 2025학년도 정원까지 협의체에서 다루고자 했으나 대통령실은 수용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22일 또다시 2025학년도 정원 재검토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사회 관계자 A씨는 이날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2025학년도 정원 재검토는 의료계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다. 결정권은 정부가 쥐고 있다. 설령 대통령과 의료계가 일대일로 만나더라도 대통령이 '하늘이 두 쪽 나도 2025학년도는 안 된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했다.

마찬가지로 익명을 요구한 수련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 B씨는 "우리가 먼저 2025학년도 재검토는 유보하자거나 2025학년도는 어쩔 수 없으니 양보하자고 한발 물러서면 지난 7개월간 의료계가 저항했던 명분과 당위성을 스스로 무너트리는 셈이 된다"고 했다.

B씨는 "2026학년도 정원 재검토나 필수의료 지원 등 다른 것들을 얻는다 해도 2025학년도 정원 문제를 끌어안고 가는 한 한국 의료 시스템은 멸망이라는 종착지로 향할 뿐"이라고 했다.

야당에서 정부를 움직일 수 없다면 '여야의'만이라도 만나자고 제안하지만 "정원 결정권은 정부에 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부를 배제"한 대화가 자칫 "전공의와 의대생을 배제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의협은 그간 전공의와 의대생이 동의하지 않는 "독단적인 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다. 현시점에서 정치권과의 대화는 그 약속을 깨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또다른 수련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 C씨는 "'전공의와 의대생 동의 없이 협상하지 않겠다'는 의협의 공언은 협회와 전공의·의대생 관계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신용이다. 의협이 먼저 협상장에 나가버리면 이마저 잃는다. 그럼 전공의와 의대생 복귀는 요원해진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없으면 대화도 없다"고는 하지만 "정작 전공의와 의대생은 의협하고는 대화에 안 나간다니 방법이 없다"는 불만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어떤 테이블에서도 임 회장과 앉지 않겠다"며 임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한 지역의사회 회장 D씨는 "지난 9·4 의정 합의 과정을 봤을 때 전공의와 의대생이 협회를 불신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불신 때문에 의료계 스스로 운신의 폭을 너무 좁혀버렸다"면서 "의협이 (전공의·의대생의 입장 때문에) 제약받는다면 전공의·의대생 당사자라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저 부동자세라 답답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