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 政지침에 환자단체 "혼란 가중"
응급실 폭력, 인력 부족 등 응급의료 제공 불가능한 경우 명시 환자단체연합 "명확한 판단 기준 없어…수용 의무 지침도 필요"
응급실의 시설 부족·미비 등으로 적절한 응급의료를 수행할 수 없어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더라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지침이 발표되자 환자단체가 반발했다.
이들은 오히려 ‘응급실 뺑뺑이’ 등의 상황에서 중증 응급환자를 수용할 경우 발생한 의료사고 시 형사책임을 감면하는 내용을 포함한 표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6일 ‘응급의료법상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발표하고 의료기관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응급의료법 제6조(응급의료의 거부 금지)에 따르면 응급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응급의료종사자는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해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할 수 없다.
지침은 제6조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응급실 내 폭력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진료 거부·기피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응급의료종사자에 대한 폭행, 협박, 위계 등으로 이송·처치·진료를 방해하거나 ▲의료용 시설 혹은 기재·의약품 등의 기물을 파괴·손상 혹은 점거 ▲환자 혹은 보호자가 의료인에 대해 모욕죄·명예훼손죄·폭행죄·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상황을 만들어 의료인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경우를 명시했다.
또 응급환자에 대한 적절한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도 정당한 진료 기피·거부 사유라고 봤다.
통신·전력이 마비되거나 화재·붕괴 등으로 불가피하게 환자를 수용할 수 없거나, 인력·시설·장비 등 응급의료자원의 가용 현황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 등도 포함했다.
다만 응급의료기관의 진료능력에 따라 긴급히 응급의료를 한 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 전원 조정 등을 적극 요청하라고 권고했다.
또 환자 보호자가 의료인의 치료 방침에 따르지 않아 치료를 시행하는 게 불가능하거나 의료인의 양심과 전문지식에 반하는 치료방법을 의뢰하는 경우도 진료를 거부·기피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로 봤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9일 성명을 내고 해당 지침이 오히려 응급실의 진료 거부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응급환자를 의무적으로 수용하는 지침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단체연합은 “지침 중 ‘응급의료 자원 가용 현황에 따라 적절한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는 판단의 명확한 기준이 없고, 이를 판단하는 주체도 정해져 있지 않아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전공의 사직으로 이탈한 인력이 보충되지 않는 한 수련병원 대부분은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환자단체연합은 “결국 이번 지침은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응급의료기관에 한번 더 확인시켜주는 성격에 불과하다”며 “응급실 뺑뺑이 상황에서도 응급의료기관이 응급 환자를 수용해 생명을 살릴 기회를 제공하는 지침을 우선 발표했어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의무와 수용 불가능 시 사전 통보 의무 등과 관련된 기준·방법을 명확하게 하도록 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시행된지 2년이 지났다. 그러나 표준 지침안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며 “신속하게 마련해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수용한 후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응급의료종사자에 대한 형사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환자단체연합은 “인근의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를 수용하기 곤란한 상황일 경우 인력·시설·장비 현황이 가장 양호한 권역응급의료센터, 혹은 지정된 응급의료기관에서 중증의 응급환자를 의무적으로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후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감면하고 재정·행정적으로 지원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