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응급실 한번 둘러본다고 되겠나”…전공의 면담 막았단 뒷말도

윤석열 대통령 의정부성모병원 방문에 醫 ‘냉담’ “권역센터 없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2024-09-08     송수연 기자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깜짝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을 바라보는 의료계 시선은 냉담하다. “응급실 한번 둘러본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는 비판이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윤 대통령 방문 당일 의정부성모병원을 사직한 전공의가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부 당했다는 뒷말도 나왔다. 윤 대통령은 소통을 위해 현장을 찾았지만 '불통' 이미지만 더 강해지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오후 8시 50분경 경기도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해 의료 현장을 점검하고 의료진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의료진과 간담회를 갖고 “응급의료가 필수의료 중에 가장 핵심인데 국가에서 제대로 관심을 갖고 도와드리지 못한 것 같아 참 안타깝다”며 “필요하면 예비비를 편성해서라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싸늘하다. 대한외과의사회가 8일 서대문구 스위스 그랜드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진행한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의대 증원 정책을 비롯해 정부가 추진하는 '필수의료 살리기 정책'이 오히려 필수의료를 죽이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한외과의사회는 8일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추계학술대회에서 의대 증원 사태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민호균 오미노외과의원 원장, 김종민 민병원 대표원장, 조항주 의정부성모병원 외상외과 교수, 박형욱 단국의대 인문사회학교실 교수(ⓒ청년의사).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인 조항주 교수(외상외과)는 “환자 받기가 무섭다”며 “외상외과를 하면서 지금처럼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조 교수는 대한외상학회 이사장이기도 하다.

조 교수는 “전공의 없이 밤에는 입원 환자를 (교수) 혼자 케어해야 하는 문제가 계속 생기다보니 밤에 누군가를 콜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게 돼 버렸다. 그래서 콜하기도 어렵다”며 “이 상태로는 오래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불이익인 문화가 돼 버렸다”고도 했다.

조 교수는 배후 진료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권역응급의료센터나 권역외상센터만 문을 열고 있다고 해서 환자를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오히려 과거로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지금은 119구급대가 무작위로 여러 곳에 전화해서 환자를 받겠다는 곳으로 무조건 가는 상황이다. 그 환자가 최종 치료를 어떻게 받는지는 상관없다”며 “권역응급의료센터나 권역외상센터가 없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윤 대통령이 의정부성모병원을 방문했을 당시를 거론하며 “VIP가 와서 응급실 한번 둘러본다고 해서 뭐가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는 윤 대통령이 의정부성모병원을 방문한 다음 날(5일) 대통령실은 권역응급의료센터 17곳에 비서관 배치를 검토한다는 “엉뚱하고 관료주의적인,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내놨다”고 비판했다.

특히 지난 6일 열린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내년도 건강보험료율을 2년 연속 동결하기로 했다며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우려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에 어마어마한 재원을 투여할 것처럼 국민들에게 잘못된 얘기를 해 왔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정부가 의료계에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적반하장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정부가 과학적이라는 말을 하려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과정에 대한 속기록 등 회의기록부터 제출해야 한다”며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 제시 책임은 정부에 있다. 2,000명 증원을 결정한 과학적 근거부터 제시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