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에 엇갈리는 시선…"법적 근거 마련" VS "처우 개선 부족"

일부 현장 간호사들 "간호사 지원 위한 법적 근거 마련에 의의" 반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등 구체적 내용 부족하다는 지적도 "의료상황 해결 목적…간호사를 위한 '배' 아닌 '뗏목'"

2024-09-07     김주연 기자
국회에서 통과된 간호법에 대한 현장 간호사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는 간호사 지원을 위한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는 반응이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간호사 근무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진료지원(PA) 간호사를 법제화한 간호법이 통과됐지만 현장 간호사 사이에서 이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 현장 간호사들은 간호사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 의의를 둬야 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부족할 뿐더러 진료지원 간호사 제도화 방안에도 허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간호법은 지난 8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인원 290명 중 283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구체적으로 간호사 등의 면허와 자격, 업무 범위, 권리와 책무, 수급과 교육, 장기근속을 위한 간호정책 개선 등에 관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규율했다. 또 진료지원 간호사 업무 수행 근거를 명시하고 업무 수행을 위한 요건과 절차 규정도 담았다.

이에 대한간호협회는 “19년 만에 이뤄진 뜻깊고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간호계 내 반응은 엇갈리는 모습이다.

먼저 일부 현장 간호사들은 간호법만으로 모든 간호사의 처우가 개선되진 않겠지만 법적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는 반응이다.

경기도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A간호사는 최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간호사들이 진료지원 업무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에 대한 법적 정당성이 인정됐다”며 “(법이) 완벽하진 않지만 앞으로 처우 개선을 요구할 때 법적 근거를 둘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

간호대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는 간호대생 B씨는 “의료법 내에 있던 간호사 (업무) 관련 내용보다는 훨씬 진일보했다고 생각한다”며 “ 입법 목적에도 간호사 인권과 복지를 증진한다는 내용이 있는 만큼 향후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내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C 간호사도 “간호법이 생겼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모든 내용을 담아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시작된 만큼 차근차근 쌓아 올리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반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 등을 포함해 구체적인 처우 개선 방안이 담기지 않아 오히려 현장 간호사 고충만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간호법 제29조(간호사 대 환자 수)에서는 국가가 병원급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이에 따른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간호사회 관계자 D씨는 “간호사들이 현장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게 바로 높은 노동 강도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라며 “지난 국회 때 발의된 간호법에는 지역사회 간호에 대한 내용도 담겼는데 이 부분도 빠졌다. 얻은 것도 없고 오히려 후퇴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젊은간호사회 관계자 E씨도 “의료법 시행규칙에는 한 간호사가 봐야 하는 환자 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선진국 기준보다 훨씬 더 많은 수였지만 강제성이 없어 지키는 병원이 없었고 국가는 이를 묵인해 왔다”고 했다.

이어 “강제성이 없는 조항을 두고 마치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큰 발판이 생긴 것처럼 환영하는 간협의 행태는 현장과 동떨어진 반응”이라고 꼬집었다.

진료지원 간호사 제도화 부분에서도 문제가 크다고 했다. 진료지원 업무 범위, 한계 등을 보건복지부령으로 넘기면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간호법 제14조(진료지원 업무의 수행)에는 진료지원 간호사의 요건을 전문간호사 혹은 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임상경력과 교육과정을 이수해 자격을 보유한 자로 정하고 있다. 또한 ▲진료지원 업무 기준과 내용 ▲교육과정 운영기관 지정·평가 ▲병원급 의료기관의 기준 및 절차·요건 준수 등은 복지부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E씨는 “지난 수년간 임상현장에서 비의사 직군들이 진료지원 업무를 해 왔다. 간호법으로 직역 간 갈등이 예상될 것이라는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PA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진료지원 업무의 범위와 조건 등이 없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어 “또한 복지부령으로 정해진 임상경력을 보유하고 교육과정을 이수해 자격을 획득하면 전문간호사가 아니어도 진료지원업무가 가능한데, 향후 정부가 의료대란을 이유로 이 기준을 터무니 없이 낮출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간호사에 대한 업무 부담만 늘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D씨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의 불법의료 시비를 피해가면서 앞으로 값비싸고 부족한 의사 대신 더 값싼 인력인 간호사로 이를 대체하기 위함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의사는 의사 일을, 간호사는 간호사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 상급종합병원에서 전담 간호사로 근무하는 G 간호사는 “개인적으로는 원래 하던 업무가 합법이 되면서 좋다. 그러나 간호사를 위하는 게 아니라 현 의료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놓은 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원래 더 많은 일을 했던 간호사들에게 업무를 넘기고 일을 시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간협이나 정치권에서는 간호사를 위한 배를 띄워준다고 했지만 내용만 보면 ‘뗏목’을 띄운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