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응급실에 군의관을 추가 배치한다고?

박종훈 고려의대 교수(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

2024-09-05     박종훈 고려의대 교수

정말 해도 너무한다. 응급실 대란은 없다? 응급실 문제는 원래 필수의료 인력 부족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에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를 추가로 배치할 것이니 응급실 대란은 해결될 것이다? 정부의 이런 배려(?)에 현장 반응은 어떨까. ‘야호, 이제 응급실 문제는 한숨 돌리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의사가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군의관을 추가 배치하기 전, 기존 파견 군의관들이 병원 현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복귀했는지 모니터링도 안 했다는 소리다. 다 아는 사실인데, 지면을 통해 말하기도 그렇다.

박종훈 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

그래, 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군의관이나 공보의 파견이 됐고 그들이 열심히 일해 준다고 치자. 응급실에 보초 세우듯 누군가를 보내기만 하면 해결될까. 작금의 사태가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한 그것만이 이유일까. 이는 마치 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한 원인이 절대 의사 수 부족에 기인한다고 판단하고 의대 정원 증원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다들 아는 말이지만 필수의료 분야 의사 부족은 단순히 의사 수부족에 기인한다고만 볼 수 없듯이.

왜 응급실에 연락하면 의사가 없다는 답을 들을까. 고령의 대퇴부 골절 환자가 발생해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병원 응급실에 연락해보니 치료를 담당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병원에 정형외과 의사가 적어도 수십 명은 될 텐데 단체로 학회라도 간 것일까.

현재 대학병원은 대형 식당에 셰프만 근무하는 꼴이다. 식당의 핵심은 셰프지만 식당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협조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셰프들끼리, 그것도 각각 분야가 다른 전문 셰프들만 남아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면 식당이 감당할 수 있는 손님은 60% 수준이나 될까. 평소 수준의 손님도 못 받는 상황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에게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올 수 있을까.

전공의가 있던 시절 진료 역량이 100%이라고 하면, 80%는 외래를 통해 입원하는 환자 치료, 그리고 20%는 응급실을 거쳐 들어오는 환자에 할애했을 것이다. 이제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원래 진료 역량의 60~70% 정도로 떨어진 상황에서 대부분 병원은 여전히 외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응급환자를 볼 여력이 있을 수가 없다. 즉, 의사가 없는 게 아니라, 응급환자를 진료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중증 응급환자를 제때 치료하려면 응급실이라는 게이트에 사람만 많이 세워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중증 응급환자는 결국 응급실 이후 각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최종 치료를 받게 되는데, 다들 지쳐서 나가떨어져 있는데 무슨 응급실 의사 타령인가.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 불나서 집이 타고 있으니 화재 원인이 누구 탓인지 공방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중증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병원 시스템을 비상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공립병원은 일반 외래 진료를 대폭 축소하고 병원 운영을 응급환자 진료 체계로 하고, 그 외에 응급의료센터를 갖고 있는 사립대병원들도 평소 외래 진료 서비스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특히 중증이 아닌 환자들은 당분간 진료 전면 중단), 정부의 적절한 보상 하에 역시 중증 응급환자 진료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상황에서 괜찮다고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