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리겠단 꿈 부쉈다" 전공의·의대생이 국회에 전하는 말

이병철 변호사,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 19명 메시지 공개 "필수의료 사명감 짓밟은 정부, 사과하라…'돌아오라'는 말뿐"

2024-08-14     김주연 기자
오는 16일 국회에서 열리는 '의대 증원 진실 규명을 위한 합동 청문회'를 앞두고 사직 전공의와 휴학 의대생들이 국회에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다(ⓒ청년의사).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학과)를 선택한 전공의들은 돈 안되는 것 알고 선택한 사람들이다. 다시 그 사명감과 애정이 들 때까지는 돌아갈 수 없다”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1년 차 전공의였던 A씨의 말이다. A씨는 “사직서 제출 전날 첫 분만을 받았던 아기의 촉감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도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재논의하고 사과하지 않는 한 복귀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14일 공개된 ‘사직 전공의, 휴학 의대생들이 국회에 하고 싶은 말’에 담긴 내용 중 일부다.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는 오는 16일 국회에서 열리는 ‘의대 증원 진실 규명을 위한 합동 청문회’를 앞두고 사직 전공의와 휴학 의대생 19명이 전하는 메시지를 공개했다. 이 변호사는 의대 정원 증원 관련 의료계 소송을 담당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사직 금지 등 행정 명령뿐 아니라 내외산소 등 필수의료과가 ‘낙수과’로 취급당하는 현실에 자부심과 사명감을 잃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사직한 전공의 B씨는 “산부인과 전문의의 꿈을 꿨다. 힘든 일 너머의 보람을 찾고 싶었지만 ‘낙수과’라는 조롱은 그 보람을 철저히 부숴버렸다”며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라는 악법으로 전문의로서의 미래를 짓밟았다. 미래와 보람을 뺏긴 전공의들이 할 수 있던 것은 그저 사직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전협이 제시한 7대 요구안이 곧 의료계의 통일안이라면서 국회에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달라고 했다.

동아대병원 내과 전공의였던 C씨도 “내과를 전공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그러나 정부가 미용하는 의사를 때려 잡으면 패배자들은 낙수효과로 바이탈과로 갈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며 주 120시간을 참고 일했던 노력의 가치가 쓰레기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필수의료 의사들이 피부·미용이 아닌 본인 진료과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내과 전공의였던 D씨도 “감정적인 부분이 해결되는게 우선"이라며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과 박민수 제2차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D씨는 "힘든 일에도 사명감으로 선택한 과인데, 조 장관과 박 차관이 의사로서의 명예를 짓밟고 악마화했다. 이에 수련 현장으로 복귀할 의지를 전부 내려놨다”며 “조 장관과 박 차관의 진실된 사과와 징계, 반헌법적인 명령으로 취업을 제한한 것에 대한 손해 배상을 요구한다”고 했다.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법적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였던 E씨는 “개인의 과실이 없는데 과중한 책임과 처벌이 뒤따르는 직군은 의사가 유일무이하다”며 “필수의료과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스스로를 갈아 넣는 분야다. 그러나 소송에 한 번 걸리면 과실이 없는데도 몇 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필수의료 종사자가 바보, 멍청이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필수의료과를 지망했지만 소송 위험으로 피부과를 전공했다는 울산대병원 사직 전공의 F씨도 “내과, 소청과 등 직접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과를 하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한 번의 실수나 과실이 없어도 소송을 피할 수 없겠다는 것을 깨달았고 피부과로 마음을 돌렸다”고 했다.

F씨는 “중증의료가 기피과가 된 것은 봉급이 아닌 소송이다”며 “소송 위험을 줄이는 게 미래의 중중의료를 살리는 마지막 방법이며, 사람이 죽으면 의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G씨는 환자를 위해 응급실에서의 법적 위험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G씨는 “법적 위험이 완화된다고 해서 환자를 대충 진료할 의사는 없다. 오히려 소송 위험이 높다는 인식으로 인한 의사들의 방어 진료, 처치가 불가능할 것 같은 환자에 대한 전원, 전문의 이탈 현상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정책으로 전문의 이탈이 더 늘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영상의학과 사직 전공의인 H씨 “정부는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을 핑계로 ‘PA(진료지원인력) 중심 병원’을 만들려고 한다”며 “대학병원의 주니어 스텝들은 이번 사태 전부터 넘쳐나는 업무와 논문 스트레스 등으로 이탈하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여기에 기름을 부어 전문의를 병원에서 내쫒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전문의 중심 병원은 허상”이라며 “현재 복귀한 전공의 수인 1,500여명보다 이탈한 전문의 수가 더 많다. 이미 망가졌지만 남은 의료시스템이라도 살리기 위해 정부의 폭정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의대생들도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 등으로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휴학한 본과 4학년생 I씨는 “6개월 동안 매일같이 의사를 악마화하는 정부와 언론, 댓글을 봤는데, 정부가 산산조각 낸 환자-의사 관계, 의료 시스템 속에서 더 이상 소신 있게 사람을 살릴 자신이 없다. 오히려 환자를 보는 게 두렵다”며 “설령 정부가 이번 정책을 철회하더라도 매번 말을 바꾼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휴학 의대생 J씨도 “조 장관과 교육부 이주호 장관에게 묻고 싶다. ‘돌아오라’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는가”라며 “2월에 이어 7·8월에도 여전히 그 소리만 한다. 이제는 정말로 유급할 상황인데 대책이 있기는 한가. 답답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