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인테리어' 지원까지?…"환자를 더 안전한 집으로"

[인터뷰] 분당서울대병원 이강현·임종훈 의료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작업치료사·의료진 함께하는 '집으로' 사업 "집 안 안전장치 하나로 퇴원 환자 일상 바꿀 수 있다" 인식·현실적 벽 높아…"어려운 시도, 길라잡이 되고파"

2024-08-26     고정민 기자

'집'은 대개 가장 안전한 공간이자 안락한 장소로 여겨진다. 직장으로, 해외로, 병원으로 떠났다가도 언젠가 돌아갈 곳을 집이라 부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집이 더 불편하고 위험한 공간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사회복지팀의 '집으로' 프로젝트는 "퇴원해도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자가 많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시작했다. 입안자인 임종훈 의료사회복지사는 "집이 안전하지 않아서"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집에 임시 거처를 두는 환자들을 주목했다. 뇌졸중 환자 절반 이상이 퇴원 후 낙상 사고를 겪는다. 질환 재발이 아니라 골절 때문에 다시 입원하는 환자들도 있다. 사고로 재활 시기까지 놓치니 일상으로 돌아가기 더 어려워진다.

이 악순환을 끊자는 제안에 재활의학과 의료진과 작업치료사가 호응했다.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포괄적 재활 평가를 진행해 "이번 사업으로 지역사회 복귀가 가능한 환자"를 선정한다. 사회복지사와 작업치료사, 의료진이 마주 앉아 평가하면서 자연스럽게 환자 지원 방향과 환경 개선 방향 논의도 이뤄진다. 여기에 낙상 예방 전문 시공업체인 '내집 연구소'가 의기투합했다. 김은영 의료사회복지팀장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사업도 더 힘을 받았다.

지난 2020년 시작한 집으로 프로젝트 1호 대상자는 뇌경색 치료 후 퇴원한 환자였다. 의료사회복지사와 작업치료사, 시공업체가 가정을 함께 방문해 주거환경을 평가하고 개선 계획을 조율했다. 낙상 예방 장치나 재활 보조기기 설치는 물론 가구 교체와 공간 재배치까지 이뤄졌다.

4년이 지나 8번째 환자가 더 안전해진 집으로 돌아갔다. 전신 떨림과 발작으로 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주기적으로 혈액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하는 만성신부전 환자다. 환자를 위해 안전 장치 설치와 공간 재배치에 더해 화장실 전면 공사까지 진행했다.

그렇다고 "모든 걸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어떤 환자는 좌변기 옆 손잡이처럼 안전장치 단 하나만으로도 일상생활의 불편을 덜 수 있다. 반면 어떤 환자는 집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여기서 프로젝트는 기술적 한계는 물론 "집주인과 타협해야 하는 '소유의 한계"를 맞닥뜨린다. 8호 환자는 이틀에 한 번 계단 20여 개를 오르내려야 하지만 끝내 난간 설치를 하지 못했다.

인식의 한계도 존재한다. 주거환경 개선을 단순히 인테리어 공사로 여기는 시선이다. 어린아이는 물론 고령층에게도 더 안전한 집을 위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상급종합병원이 이제는 퇴원 환자 집안까지 들여다보느냐는 목소리도 부담이다. 이런 현실의 벽 앞에서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사회복지팀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3차 병원은 어디까지 해야 하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며 답을 찾고 있다.

청년의사는 집으로 프로젝트 기획자이자 1~7호 담당자인 임종훈 의료사회복지사와 현재 프로젝트 담당인 이강현 의료사회복지사와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의사는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사회복지팀 임종훈 의료사회복지사(사진 왼쪽)과 이강현 의료사회복지사를 만나 집으로 프로젝트 의미와 주거환경 개선 지원 필요성에 대해 들었다.

- 집으로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했나.

임종훈: 재활의학과 환자 퇴원 계획 상담을 하면서 내 생각보다 '집으로'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는 걸 알았다. 살기 불편하거나 안전하지 못해 퇴원해도 또 다른 병원으로 가거나 다른 사람 집에 가야 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가 집을 안전하게 꾸미고 싶어도 어떻게 바꿀지 도움받을 곳도 마땅하지 않았다. 없으면 우리가 만들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의료비 지원을 넘어 회복과 사회 복귀까지 우리 팀이 도울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방향이 맞아떨어졌다.

-이전에 없던 시도다. 처음 프로젝트를 제안했을 때 내부 반응이 어땠나. 병원에서 여기까지 챙기느냐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

임종훈: 재활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비슷한 시도가 나왔지만 우리처럼 급성기 질환을 다루는 3차 병원은 사례가 없었다. 또 사회복지사끼리 하겠다고 가능한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환자 기능 평가와 의료 평가, 자문 등 의료진과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가 협업해야 한다. 다행히 재활의학과도 이같은 사업 필요성을 느껴 와서 취지를 잘 이해해 줬고 협조가 수월했다. 의료사회복지팀 차원에서도 '해보자'고 밀어줬다.

이강현: 병원도 우리 의료사회복지팀도 새로운 시도에 배타적이지 않다. 특히 우리 팀은 공공 부문이 세분화되기 전부터 복지 관련 업무라면 거의 전담해 와서 '아무도 안 한 일'이라거나 '처음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덜하다. 환자 삶의 질 개선이나 사회 복귀 차원에서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자는 분위기가 쉽게 모였다.

- 사업 시작 후 겪은 어려운 점은?

임종훈: 사실 시공 업체 선정이 제일 어려웠다. 고령층이나 장애인의 주거환경을 다루는 전문업체가 없었다. 손잡이 같은 보조기구를 인테리어 차원에서 달아주는 거지 낙상 예방이나 주거 환경 개선 차원에서 접근하는 전문가를 만나기 어려웠다. 다행히 낙상 예방 전문을 내건 업체를 찾아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강현: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모든 게 가능하지 않다. 기술적으로 구현이 어려울 때가 더러 나온다. 더 현실적으로는 소유의 문제가 있다. 집주인이 공사를 수용하지 않는 경우다. 자가라면 괜찮지만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이고 세입자가 많다 보니 집주인 협조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여닫이문을 미닫이로 바꾼다거나 집안 구조를 바꿔야 할 때 집주인이 거절하면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이번 8호 환자도 공동 주택 거주자라 주민 동의를 다 얻지 못해 건물 계단 난간 공사를 못했다. 기술적인 문제든 소유 문제든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공사여도 포기해야 할 때가 생긴다.

- 재택의료나 사회복지 차원에서 지자체나 정부가 퇴원 환자의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하면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강현: 병원 부서 차원에서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사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자체나 국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제는 초고령사회다. 인테리어의 시선을 벗어나 고령층과 중도장애인의 삶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안타깝게도 아직 인식의 간극이 존재한다. 가정에 아이가 생기면 최소한 매트를 깐다든지 가구에 보호장치를 둔다든지 작은 부분에서나마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가정에 고령층이나 중도장애인이 생기면 이런 부분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주거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인지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고 집안의 어느 한 부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 생각 이상으로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

- 대상자 선정 작업을 거치며 느끼기에 주거환경 개선까지 개입이 필요한 환자 비율이 어느 정도 된다고 보나.

이강현: 현재 집으로 프로젝트 선정 기준으로만 두면 전체 입원 환자의 1%도 안 된다. 의료진 협조가 가능하느냐도 봐야 한다. 재활 환자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것도 재활의학과가 진료과 차원에서 사업 시작부터 꾸준히 함께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만약 지자체나 정부 차원에서 사업을 진행하면 일반 지역 병원에서도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환경 개선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재택의료 의료기관이 방문 진료 중에 대상자를 찾아낼 수도 있고 행정복지센터를 중심으로 사업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상자이자 수혜자는 무궁무진하게 늘어날 수 있다.

임종훈: 지금은 서울·경기 지역에 거주하면서 65세 이상 고령층 또는 장애인, 장애가 예상되는 재활 환자가 주 대상자다. 이렇게 제한을 둔 것 자체가 필요한 환자 모두를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제한이 아니라면 사실 중증도나 일상생활 기능 여부에 따라서 모든 환자가 집으로 프로젝트 대상자라고 본다. 화장실 변기 옆에 손잡이 하나만 달려도 생활이 달라지는 환자들도 있다.

- 집으로 프로젝트 외에 새로 시도한 사업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임종훈: 카카오톡으로 의료진과 상담하는 것처럼 의료사회복지팀에서도 카카오톡 상담 서비스를 열었다. 서비스 도입 후 의료비 지원을 받은 환자가 늘었다. 잘 몰라서 서비스 받지 못한 누락자가 줄었다는 뜻이다.

건강과 관련한 사회적 환경 개선 욕구를 충족하는 사업을 더 해보고 싶다. 건강은 의학적 원인은 물론 사회·경제적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집으로 프로젝트로 주거 환경을 개선했고 식사 지원 사업도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교통 지원 사업을 해보고 싶다. 독거노인이나 장애인은 병원에 오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강현: 의료비 지원이나 후원은 대개 소아 환자에게 몰린다. 고령층 후원은 거의 없다. 소아 지원은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이뤄지지만 고령층은 경제 상황이 비슷해도 지원받기 더 어렵다. 또 고령층 환자 대부분 자식이 경제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식이 부모를 지원하느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우리가 눈으로 보는 지표와 현실 사이를 어떻게 채울지 연구하고 싶다. 이런 환자까지 우리가 굳이 지원하느냐는 물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답하며 제시할 기준이 마련되면 좋겠다. 그렇게나마 소외당하는 이가 줄길 바란다.

- 재택의료나 사회복지 분야에서 3차 병원 역할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분당서울대병원이 집으로 프로젝트를 꼭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각자의 대답은.

이강현: 병원 간 역할 구분은 명확해야 한다. '3차 병원은 여기까지만' 이라고 정해둬야 한다. 그런데도 해야 할 때 역시 분명 있다. 우리는 국립대병원이고 분당서울대병원이지만 동시에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지역 병원이기도 하다. 병원과 지역사회를 어우르는 역할도 맡아야 한다. 이번 집으로 프로젝트가 그 일환이다.

물론 우리 목표가 이 사업의 끝없는 확장이어선 안 된다. 이런 사업이 필요하고 효과가 있다고 알리고 비전을 제시하는 게 우리 역할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젊은 국립대병원이고 새로운 시도를 긍정하는 병원이다. 더 도전할 수 있고 도전해야 한다.

임종훈: 우선은 '3차 병원이면 이런 일은 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병원을 퇴원하는 환자 중에도 이런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가 존재한다. 3차 병원이니까 이런 서비스는 하면 안 된다고 못 박을 문제는 아닌 듯하다. 집으로 프로젝트처럼 아직 아무도 하지 않은 일, 할 수 없다는 일을 나서서 해 본 뒤 '우리가 먼저 해봤습니다'라고 말하는 길라잡이라면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