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라자임, 전형적 파브리병 남성 환자에게 우선 권고”

[인터뷰] 취리히대 병원 내분비학과 알비나 노왁 교수  “기존 약제서 전환 시 Lyso-Gb3 수치 감소 효과 확인”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 프로그램 필요해”

2024-08-05     김찬혁 기자

파브리병은 리소좀 축적질환(LSD)의 일종으로, 리소좀 분해 효소인 알파-갈락토시다제 A(α-GAL A)의 결핍으로 인해 세포 내 당지질인 GL-3와 Lyso-GL-3가 축적돼 발생하는 희귀 유전 질환이다. 이 질환은 전신에 걸쳐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며, 성인이 될수록 증상이 더욱 악화돼 조기 진단과 빠른 치료가 필수적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파브리병의 치료법은 증상을 완화하는 데 그쳤으나, 효소대체요법(ERT)의 도입으로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게 됐다. 특히 ‘파브라자임(성분명 아갈시다제베타)’은 GL-3를 제거해 병의 진행을 늦추고 증상을 개선시키는 ERT 치료제로, 2001년 유럽의약품청(EMA), 2003년 미국식품의약국(FDA), 2002년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아 현재 전 세계 40개 이상 국가에서 7,000명 이상의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스위스 취리히대 병원 내분비학과의 알비나 노왁 교수는 지난 2022년 특정 유형의 파브리병 환자들에게 파브라자임을 1차 치료제로 제안하며 주목을 받았다.

노왁 교수 연구팀은 아갈시다제알파에서 파브라자임으로 전환한 파브리병 환자들의 치료 효과를 분석한 결과, Lyso-Gb3 수치가 평균 30.1%, 효소 활성이 없거나 매우 낮은 남성 환자 하위집단에서 평균 40.4%가 감소했음을 밝혀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효소 활성이 거의 없는 전형적(classic) 남성 환자에게 파브라자임이 효과적인 치료 옵션임을 시사한다.

이에 본지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알비나 노왁 교수를 만나 파브리병의 최적 치료 전략과 글로벌 치료 현황, 그리고 파브리병 치료의 최신 연구 결과 등에 대해 들었다.

취리히대 병원 내분비학과 알비나 노왁 교수.

- 간단한 자기소개와 한국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스위스에서 14년째 파브리병을 진료하고 있는 신장내과 전문의다. 현재 약 120명의 파브리병 환자를 정기적으로 진료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해 여러 한국 의료진과 파브리병 치료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발표도 했다.

- 스위스에서는 파브리병 조기 진단을 위해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나? 정부 혹은 공동체 차원에서 파브리병 진단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조언해 달라.

스위스도 한국처럼 파브리병 진단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스위스에도 미진단 상태의 환자가 꽤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진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파브리병과 그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만났을 때 의사가 파브리병을 의심할 수 있도록 의료진의 인식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파브리병으로 의심해야만 검사를 통해 진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신생아 선별 검사에 LSD 관련 효소활성도 검사(이하 LSD 선별 검사)가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선별 검사가 더 폭넓게 진행된다면, 미진단 파브리병 환자를 더 많이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심장 비대 증상도 파브리병이 원인일 수 있기 때문에 심장내과에서의 스크리닝 프로그램도 도움이 될 것 같다.

- 스위스에서는 이미 신생아를 대상으로 LSD 선별 검사가 표준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 검사가 LSD 환자 발굴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질환 인식 개선 및 치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궁금하다.

신생아 선별 검사는 조기 진단을 통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다양한 파브리병 증상의 진행을 막거나 지연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치료가 필요할 때까지 환자를 어떻게 관리할지 환자 부모와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진단된 환아를 기준으로 나머지 가족을 대상으로 진단 검사를 실시할 수 있어, 미진단 환자를 찾아내고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 한국에서는 신생아 대상 LSD 선별 검사 이후 확진 검사와 치료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가 과제로 떠올랐다. 스위스나 유럽에서는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이 마련돼 있는지 궁금하다.

스위스나 유럽에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프로토콜이 있지는 않다. 전문가 의견에 따라 진단과 치료가 진행되고 있다. 신생아가 파브리병으로 확진된다면 반드시 곧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의 경우, 전형적(classic) 파브리병 환자는 증상이 시작되는 3~4세부터 소아청소년과로 협진을 의뢰해 정기적으로 파브리병을 치료 및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형적 파브리병 환자가 아닌 비정형적(later onset) 파브리병은 14세에서 17세 연령부터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 파브리병의 치료는 ERT의 도입과 함께 크게 발전했다. 20여 년 전 처음 등장한 ERT가 파브리병 치료 성적 향상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시기적절한 치료를 통해 파브리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게 됐다. ERT의 도입으로 많은 파브리병 환자의 기대 여명이 연장되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도 크게 개선됐다. 특히, 파브리병 증상의 특징 중 하나인 비가역적인 장기 손상이 발생하기 전에 ERT를 통해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 2022년 논문(Agalsidase-β should be proposed as first line therapy in classic male Fabry patients with undetectable α-galactosidase A activity)을 통해 특정 유형의 파브리병 환자들에게 ERT 중 파브라자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치료 전략을 제시했는데, 간단히 소개 부탁드린다.

연구는 스위스 로잔 및 취리히의 전문 파브리병 센터에 등록된 전형적 파브리병 환자 1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중 9명은 남성, 5명은 여성 환자로, 모두 장기간 아갈시다제알파를 사용해 왔다. 이 환자들이 아갈시다제알파에서 파브라자임으로 전환했을 때의 효과를 살펴본 결과, 모든 환자에서 Lyso-Gb3 수치가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잔존 효소 활성도가 낮은 환자에서 Lyso-Gb3 수치의 감소 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 해당 연구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비록 적은 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였지만, 파브라자임에서만 관찰된 임상적 유효성을 보고했고, 동료심사(Peer review)를 통해 학술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잔존 효소 활성도가 낮은 변이를 가진 환자에게는 파브라자임 1㎎/㎏을 우선적으로 투여할 것을 제시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스위스에서는 효소 활성이 없는 전형적인 파브리병 남성 환자 치료의 1차 치료제로 파브라자임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 그렇다면 기존에 아갈시다제알파를 처방받고 있던 환자들도 파브라자임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나.

그렇다. 실제로 연구를 통해 시도한 것이 바로 그러한 전환이다. 물론, 오랫동안 사용해 온 치료제를 바꾸는 것은 의료진이나 환자 모두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가 익숙한 치료제를 사용하길 원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와 동의가 필요하다.

- 전형적인 파브리병 남성 환자 치료에 파브라자임을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했는데, 다른 유형이나 성별의 경우 권고 정도가 어떻게 되나.

잔존 효소 활성도가 높은 환자에게는 파브라자임와 아갈시다제알파 모두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 환자처럼 잔존 효소 활성도가 높은 경우에도 아갈시다제베타를 권하고 있다. 권고 정도는 남성보다는 낮지만, 파브라자임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

- 임상 현장에서 파브라자임이 또 다른 ERT 치료제인 ‘아갈시다제알파’와 갖는 차이점은 무엇이며, 각각 어떤 환자에게 더 적합한가.

두 제제는 동일한 아미노산 서열을 가지고 있지만, 글라이코실화 패턴에 약간 차이가 있다. 아갈시다제알파는 0.2㎎/㎏ 용량으로 사용되며, 여성 환자 중 잔존 효소 활성도가 비교적 높은 환자나 긴 투여 시간을 원하지 않는 환자에게 적합할 수 있다. 반면, 전형적 파브리병 남성 환자처럼 잔존 효소 활성도가 거의 없거나 낮은 환자는 1㎎/㎏ 용량의 파브라자임으로 치료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파브리병 치료 목표는 모든 파브리병 환자가 동일하다. 환자 몸에 축적된 세포 내 당지질인 GL-3 와 Lyso-Gb3의 양을 줄이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환자의 장기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므로, 신장, 단백뇨, 심장 상태 등의 바이오마커를 이용해 계속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 파브리병 치료 옵션 중에는 경구용 약제도 있다. 이러한 약제는 어떤 임상적 역할을 한다고 보나.

경구제는 특정 변이를 가진 환자에게는 좋은 옵션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순응 변이를 가진 만 16세 이상의 환자가 최소 1년의 ERT 치료를 받은 후에 경구제를 급여 처방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다. 순응 변이는 순응성 표(Amenability Table)로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 임상적으로도 순응성을 보이는지 확인해야 한다. 경구제 복용 후에도 환자의 효소 활성도와 장기 기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경구제 치료를 지속할 수 있다.

- 현재 한국 기업을 포함한 여러 제약사에서 파브리병 치료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데, 기존 치료제 대비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한다고 보나.

환자들이 항상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완치가 가능한 치료제의 개발이다. 격주로 ERT 치료를 하는 것이 익숙해졌을 수 있지만, 완치돼 치료가 필요 없게 되는 것이 더 좋다. 그래서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유전자 치료제가 상용화되기까지 임상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새로운 치료제가 등장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 파브리병 치료와 관련해 진행하고 있는 연구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파브리병 환자의 통증 관리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이중 맹검, 위약 대조군 비교 방식을 통해 파브리병 환자에서 통증 조절에 대한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IIT)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PERIDOT이라는 (벤글루스타트) 3상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이 연구는 기질 감소 요법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기질 감소 요법은 경구로 복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며, 모든 변이를 가진 파브리병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이 요법의 기본 원칙은 환자의 몸에 쌓인 대사체를 제거하기 위한 효소를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대사체인 Gb3의 합성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 앞서 심장내과를 포함한 여러 분과에서 파브리병을 의심하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효과적인 다학제 진료 방법에 대해 고민이 많은데, 유럽이나 스위스에서는 어떤 방법을 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심장내과, 마취통증과, 류마티스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파브리병 증상으로 환자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과의 의료진에게 파브리병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파브리병은 매우 복합적인 질환으로 진단이 어려워 다학제 진료와 협업이 중요하다. 현재 소속된 스위스 취리히대 병원에는 전담 코디네이터가 있어서 환자가 내원 시 파브리병과 관련한 모든 진료과를 방문, 하루에 모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의료진이 희귀질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독려하고, 희귀질환을 진료하는 전문 의료진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거나 해결책을 찾은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유럽에서도 희귀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 희귀질환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의료진이 모든 희귀질환을 알고 있어야 환자를 놓치지 않고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주로 보는 환자 유형이 아니면 의료진이 희귀질환에 대해 추가로 공부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도 실제로 해당 환자를 만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이는 희귀질환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장애가 된다.

많은 희귀질환이 전신에 영향을 미쳐 여러 장기에 걸쳐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러한 점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그림 자료 등을 제공해, 의료진이 관련 증상을 가진 환자를 볼 때 희귀질환을 의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자들의 심리적, 정신적 부담도 함께 살펴봐야 하는데, 우울증, 정신과적 문제, 수면 문제 등도 고려해야 한다. 환자들이 사회, 학교, 직장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수용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이는 큰 사회적 문제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교육과 정보 전달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에 아이들을 위한 질환 관련 정보 책자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데, 이를 통해 환아들이 자신의 병에 대해 이해하고, 학교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병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이 환자들이 더 잘 받아들여지도록 돕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식 개선 프로그램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추가 설명 부탁드린다.

파브리병은 유전질환이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지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진단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파브리병 환자로 낙인 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이로 인해 진단 후 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고, 가족과 친지에게 미칠 영향을 고민하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최초 진단된 환자가 가족과 친지에게 직접 사실을 공유하고 동의를 구해 검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사회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환우회 같은 단체를 방문해 질환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듣고, 다른 환자와 가족의 경험을 공유하며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 마지막으로 국내 파브리병 환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현재 질환의 진행을 지연시키고 증상을 완화하는 적절한 치료제와 보조 요법이 많이 나와 있다. 또한, 파브리병에 대해 잘 교육받은 많은 의료진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진료를 받으면 삶의 질이 개선될 것이다. 더 다양한 치료 옵션이 등장할 것이며, 신생아 선별 검사를 통해 신생아 때부터 진단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방법도 열렸다. 언젠가는 유전자 치료가 신생아 단계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좋은 치료제와 방법이 있으며,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에 기대와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