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정부 수련환경 개선 약속 ‘공수표’로 보는 이유

연간 1조2774억 들지만 정부 지원 640억 뿐 정원 2000명 늘면 전공의 수련비용도 급증 “비용 부담과 재원 얘기 없이 미사여구만 남발”

2024-05-11     송수연 기자
정부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약속했지만 전공의들은 냉담하다(ⓒ청년의사).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중심으로 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강조한 분야 중 하나가 전공의 수련환경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전공의들은 ‘빛 좋은 개살구’로 봤다. 재원 마련 방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10일 발표한 '우선 개혁과제 검토 방향'에도 전공의 수련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하고 수련비용 국가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그 규모와 재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사직 전공의인 세브란스병원전공의협의회 김은식 대표는 이날 연세의대 교수평의회와 교수비상대책위원회가 ‘2024년 의정갈등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연세의대 윤인배홀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대표는 선진국들은 전문의 양성을 위해 전공의 수련비용을 국가가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미국은 65세 이상과 장애인 대상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에서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6,700억원)를 전공의 수련비용으로 지원한다. 전공의 1인당 2억원 정도 지원하는 셈이다. 저소득층 대상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도 연간 38억 달러를, 민간보험사는 연간 72억 달러를 지원한다.

캐나다와 영국은 전공의 수련비용을 모두 국가가 부담하고 호주는 전공의 1인당 연간 9,000만원씩 급여를 지원한다. 일본도 인턴 수련비용은 전액 국가가 부담하고 레지던트는 연수비 등 일부 비용을 지원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이 미미하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전공의 수련교육 공공성 강화 정책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공의 1인당 수련비용이 연간 9,993만원이다. 전체 전공의 수련에 총 1조2,774억원이 투입되지만 정부 지원은 연간 640억원 정도다. 전공의 수련비용의 5%만 지원하는 셈이다.

세브란스병원전공의협의회 김은식 대표는 10일 연세의대교수평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의정갈등을 어떻게 보는가를 주제로 이야기했다(ⓒ청년의사).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면 전공의도 매년 2,000명씩 추가된다. 김 대표는 “전공의 1인당 수련비용이 1억원이라고 하면 증원된 2,000명이 전공의 과정을 시작하는 첫 해부터 연간 2,000억원씩 수련 비용이 증가하고 전국적으로 연간 2조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담긴 수련비용 지원 내용은 일부 필수진료과 전공의에게 지원하는 월 100만원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추진한다는 전문의 중심 병원 개편은 ‘공수표’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개편하려면 전문의를 더 많이 채용해야 한다. 현재 3대 2인 전문의와 전공의 비율을 미국이나 일본 수준인 9대 1 정도로 조정하려면 수련병원에 고용돼 일하는 전문의를 지금보다 6배 정도 더 늘려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인건비가 들어가는데 어떤 식으로 재원을 마련해 지원할지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관련 기사: '전문의 중심 빅5병원' 인건비만 3조…의대 증원되면 7조).

김 대표는 “정부는 가장 중요한 비용 부담과 재원 마련은 얘기하지 않고 전문의 인력 확충과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미사여구만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한국 의료시스템이 사상누각과도 같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며 “일반 직장으로 따지면 수습사원에 불과한 인턴, 레지던트가 업무를 중단했을 뿐인데 소위 빅5병원을 포함한 대학병원들이 경영난에 시달리며 비상경영체계로 전환하는 광경을 모든 국민이 목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만성적인 저수가 체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수련병원들은 저렴한 전공의 인력 활용을 극대화하며 병원을 운영하려 할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한 전공의 수에 상관 없이 수련환경 개선은 요원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