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에 쓰러지는 아이’ 꾀병인 줄 알았는데 파브리병?

땀이 적고, 손끝 통증 호소…10대 흔한 꾀병으로 오인 이범희 교수 "심장 등 장기 비가역적 손상 전 치료해야"

2024-03-13     이혜선 기자

여름철 뙤약볕에 픽 쓰러지는 경우 대부분 일사병을 생각한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도 땀이 별로 나지 않았다면? 더구나 평소 손끝과 발끝의 통증을 호소한 경험이 있고, 손끝이나 사타구니에 바늘로 콕콕 찌른 듯한 병변이 있다면 일사병이 아닌 희귀질환인 ‘파브리병’일 수도 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이범희 교수는 의료인을 위한 전문 유튜브 채널 <의대도서관>의 주요 코너 ‘월간 이.범.희’에서 “파브리병은 땀이 잘 나지 않고 통증이 심한 게 대표적인 증상이다. 체온 항상성을 유지하기 어려워 여름이 위험하다. 특히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기 때문에 10대 아이들이 평소 손과 발끝의 통증을 호소하는 것을 ‘꾀병’으로 많이 오해한다”고 설명했다.

파브리병은 특정한 당지질 대사에 필요한 효소인 α-갈락토시다아제가 결핍되어 나타나는 희귀한 유전성 대사질환이다. X염색체가 불활성화되어 발생하는데 국내에는 250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질환의 특징은 손발에 통증이 심하고, 손끝이나 사타구니에 바늘로 콕콕 찌른 듯한 병변을 가진 혈관각화종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땀 분비가 줄어드는 것도 주요 특징이다. 파브리병으로 인해 자율신경계가 망가져 체온항상성 유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브리병 환자들은 심부온도가 올라갈 수 있는 환경은 위험하다.

파브리병은 혈관벽에 글라보오실세라마이드와 같은 당지질이 점차 축적되어 조직과 기관을 손상시킨다. 대표적인 합병증은 심부전, 만성신부전, 뇌졸중 등이다.

진단은 늦게 되는 편이다. 파브리병의 증상이 유년시절부터 20대 정도에 나타나는데 다른 질환으로 오진되거나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증상의 정도가 다른데다 땀배출이 적고, 통증에 예민한 것을 단순히 체질 탓이라고 여겨서다.

남성의 경우 10대에 통증을 호소하고 20대에 단백뇨가 나타나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진단될 수 있지만, 여성의 경우 중년이 되어서야 진단되기도 한다. 심장 혹은 신장 문제로 병원을 다니다가 조직검사를 통해 우연히 진단되는 게 대부분이다. 문제는 환자의 대부분이 신장 질환이나 뇌혈관 질환 등으로 인해 40~50대에 사망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파브리병은 치료제가 존재한다. 부족한 효소를 보충해주는 방식이 대표적인데 사노피 젠자임의 파브라자임주(성분명 아갈시다제 베타), 다케다 레프라갈주(성분명 아갈시다제 알파), 이수앱지스의 파바갈주(아갈시다제 베타)가 국내 출시돼 있다.

2002년 파브라자임주가 도입되었고, 이후 국내 제약사인 이수앱지스가 파브라자임주의 바이오시밀러인 파바갈주를 개발해 2014년 4월에 제품을 출시하며 10년 째 치료제를 공급중이다. 다케다의 레프라갈주는 2015년 국내 출시됐다.

효소 대체 치료제인 파브라자임주, 레프라갈주, 파바갈주 모두 2주에 한 번 병원에 방문해 정맥주사로 약을 투여 받는다. 이 외에 전체 파브리병 환자의 20~30%에서 쓸 수 있는 먹는 치료제인 갈라폴드캡슐(서분명 미갈라스타트)도 2019년부터 국내에 처방되고 있고 국내 출시됐다.

다만 어느 정도 병이 진행되면서 신장이나 심장의 기능이 나빠진 경우는 해당 장기의 기능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조기 진단을 하고 비가역적인 손상을 막는 게 필요하다.

이 교수는 “병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이후라면 치료를 안했을 때보다는 병의 경과를 더디게 할 수 있다. 치료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는 비가역적인 손상이 있기 전에 환자를 찾아서 치료해야 한다”며 “신생아 스크리닝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10대 청소년이 손 끝에 통증을 호소하거나 땀을 흘리지 않고, 조금만 뛰어도 힘들어하는 증상을 보이면 한번쯤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