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분야 선두기업 '일루미나'가 내다본 다음 변화는

[인터뷰] 일루미나 기업개발담당 애슐리 반 질랜드 부사장

2024-01-04     이한수/양현수 기자

유전자 관련 기술의 발달로 유전체학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암, 희귀질환, 불임 등의 분야에선 이미 유전자 기술이 상용화되기도 했다. 또 현대 의학이 추구하고 있는 정밀의료가 가능하게 된 배경에 유전체학의 발달이 한 몫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소비자 직접 검사(DTC, Direct-To-Consumer testing)와 같이 유전체학이 일상생활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도 자명하다.

그럼, 현재 유전자 기술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을까. 또 앞으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인간 게놈 시퀀싱(genome sequencing, 염기서열 분석) 분야에서 혁신적인 제품들을 개발하며 유전체학 분야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일루미나(Illumina)의 애슐리 반 질랜드(Ashley Van Zeeland) 부사장을 만나 궁금증에 대해 물었다.

1998년에 설립돼 지난해 창립 25주년을 맞은 일루미나는 수만 달러의 비용이 들던 인간 게놈 시퀀싱(genome sequencing, 염기서열 분석) 검사를 수백달러로 낮추면서 유전체학의 저변을 넓히는 발판을 마련한 기업으로 꼽힌다. 또 종양의 바이오마커, 코로나19 돌연변이 등을 밝혀내는데도 일조하기도 했다.

일루미나의 기업 및 사업 개발 담당 부사장인 애슐리 반 질랜드 일루미나의 연구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제공: 일루미나)

-일루미나의 시작과 유전체학 업계의 리더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하다.

설립 당시 일루미나는 유전자형 분석과 관련된 미세배열(microarray) 기술에 집중했다. 이는 인간 유전체의 DNA 서열 변이의 일반적인 패턴을 결정함으로써 이 정보를 공공 영역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 ‘HapMap’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했다.

당시는 최초로 인간 염기서열을 분석하려고 시도하는 유전체학의 초창기였다. 첫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데에 10년 동안 30억 달러를 소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전체 하나당 200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1년 안에 2만개의 전체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다. 일루미나의 ‘Novaseq X’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일루미나는 염기서열 분석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혁신을 주도해왔다.

- ‘Novaseq X’가 궁금하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Novaseq X는 현재까지 가장 높은 처리량을 자랑하는 DNA 시퀀싱 플랫폼으로, 이전 기기인 Novaseq 6000보다 처리량은 두 배 많고, 정확도는 3배 더 높다. 지금까지는 비용 구조와 기술 수준 때문에 대규모 유전체 데이터 세트의 다양성이 부족했다. 하지만 처리량과 정확도가 높아진 기기를 갖추게 되면서 대규모 코호트에서도 염기서열 분석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암 등의 치료 시) 정밀의료가 환자의 생존율에 화학 요법이나 방사선과 같은 대체 치료법에 비해 훨씬 더 유리한 만큼 (정확하고 대규모의 DNA 시퀀싱이 가능한 기기의 등장은) 강력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 일루미나에선 인공지능(AI)을 어떻게 활용하나.

지금까지는 어떻게 하면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높은 품질의 데이터를 놀라운 정밀도로 유전자 데이터를 생성할 수 있을지 초점을 맞춰졌다. 하지만 이제는 데이터에서 어떤 결과를 창출할 수 있는 지가 중요해졌다. 이 지점에서 AI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생물학적 샘플을 데이터 유형으로 만드는 데, 그리고 그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법까지 다양하게 AI를 활용하고 있다.

- 데이터가 방대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 그 방대한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나.

이전에는 많은 고객이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생성할 수 있는 플랫폼에 관심이 컸다. 하지만 이제는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이를 임상 정보와 결합할 수 있는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일루미나에선 지난 몇 년 간 이에 발맞춰 데이터 플랫폼에 투자해 왔다. 먼저 ‘Dragen technology’를 보유한 Edico Genomics를 인수했다. Dragen technology는 2차 변이체 검출에 도달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며, 고객이 원시 데이터에서 변이체 검출로 매우 빠르게 이동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에 일루미나 제품에도 이 기술을 적용했다.

또 무손실 압축 기술을 도입해 설치 공간을 5배까지 줄였다. 이에 더해 고객이 데이터를 가져오고 해당 데이터를 다른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으며, 다른 정보를 유전체 분석에 사용할 수수 있는 클라우드 플랫폼 ‘Illumina Connected Analytics’도 개발하고 있다.

- 일루미나는 한국인의 건강 및 유전자 데이터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는 '바이오 빅데이터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루미나가 얻고자 하는 바는 뭔가.

현재 이용 가능한 (유전자) 데이터는 전 세계 인구를 대표하지 못한다. 유전자 데이터가 다양할수록 질병이나 신약 표적에 대한 유익한 바이오마커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은 한 번에 (바이오마커, 신약 물질 등을) 모두 발견하고, 이를 기다렸다가 모든 치료제를 출시하는 단계적 프로세스를 원하지 않는다. 기대되는 물질이나 바이오마커를 발견하면 이를 진단 또는 치료 프로그램에 곧바로 적용하고, 그 결과와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유전자 데이터에 다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한다. 따라서 각 지역 또는 국가 내에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 실질적으로 인류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각국이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최근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의료비 지출 증가 문제도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유전체를 기초로 삼으면 잠재적으로 선별검사와 모니터링 대상을 더 잘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조기에 개입함으로써 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질병이 손 쓸 수 없게 되기까지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총 의료비 곡선을 완화시킬 수 있다.

- 코로나19를 거치며 오픈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며 기업들이 앞 다퉈 이를 연구개발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일루미나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우리는 유전체의 힘을 활용해 인류 건강을 개선한다는 원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우수한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지만실제로는 대학, 중소기업, 대기업의 혁신가들이 우리 제품을 통해 혁신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예컨대 기존에는 단백질을 프로파일링하는 주요 방법은 질량 분석이었지만, 이후 단백질에 태그를 지정한 다음 (일루미나가 제공하는) 플랫폼에서 판독하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확장성이 향상되고, 접근성도 높아졌다. 우리가 도입한 혁신 기술이 이렇게 쓰인다는 점이 매우 기쁘다. 우리는 회사 울타리를 넘어 혁신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 일루미나의 향후 25년 비전과 계획은.

일반인이 유전체 검사를 받는 것은 해당 인구 집단뿐만 아니라 개인 또는 가족 구성원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속적인 인구 집단별 유전체 검사 노력을 통해 많은 기회를 발견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과 더 많은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활용이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에서 얻은 결과물을 개인과 집단의 임상 정보에 어떻게 활용하느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또 정보가 너무 많아서 표준 모델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AI도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AI와 대규모 클라우드 컴퓨팅 기능, 그리고 이를 통해 생성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결합되면 발견 속도 등이 훨씬 빨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