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민국 의사 수는 적지만 부족하지 않다②

조병욱 바른의료연구소 연구위원

2023-12-26     조병욱 바른의료연구소 연구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분석한 지난 글에서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와 의료의 질 즉, Treatable mortality가 상관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대한민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적은 의사의 수로 많은 숫자의 병원과 병상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적은 의사 수이지만 많은 양의 의료 공급을 하면서도 낮은 Treatable mortality를 이뤄 낼 수 있는 배경에는 의사 인력의 질과 그들의 희생이 뒷받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단순히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만을 근거로 내세우며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위한 핑계일 뿐이다. 특히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진료 오픈런 등 필수의료 분야 붕괴를 접목시켜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사실 의사 수가 부족해서 해당 분야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다.

조병욱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장

왜냐하면 의사 수가 적은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지속돼 오던 문제였으며 오히려 지속적인 의사 인력 공급이 되면서 점차 의사 수는 증가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사회 환경 변화에 따른 의사 인력 분포가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이탈(Vital) 의료 분야에 대한 각종 손해배상 소송과 형사 처벌, 소아 진료 영역에서의 비상식적 보호자의 갑질, 정상적 진료 업무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행정 규제와 심사평가 등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사법부, 행정부, 입법부는 의사로 하여금 필수의료 및 응급의료 분야를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대한민국 의료는 세계 제일이라고 자부할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낮은 의료비와 높은 의료 수준, 그리고 편리한 접근성. 대부분의 국가는 의료를 공공의료를 통해 낮은 의료비와 접근성을 제공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민간의료를 통해 제공한다. 건강보험이라는 단일 공보험제도를 이용해 민간의료이지만 공공의료와 같은 낮은 의료비를 구축하고, 진료 거부 금지제도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의 진료 접근성을 높였다.

의사 입장에서는 의료기관 즉, 요양기관 개설 혹은 취업 자체가 의료제도에 구속되기 때문에 전공과목 혹은 진료과목을 선택함에 있어서 그 구속정도가 덜한 것을 선택하게 된다. 이 선택에서 필수의료와 응급의료를 기피하게 된다.

종합해보면 국가가 의사에게 적용하는 제도적, 사회적 압박이 필수의료와 응급의료로부터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개선을 하려는 노력을 선행하지 않고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을 면피하기 위해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꼼수를 쓴 것이다.

이러한 꼼수는 공공의료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속여온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에 OECD 국가의 공공의료(병원)의 공급과 공공의료 관련 의료비 규모가 대한민국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 알아보겠다.

병원급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분석은 OECD 홈페이지에 공개된 OECDiLibrary 서비스에서 Statics - Databases – OECD Health Statistics에 제공된 Health care resources DATA를 Raw DATA로 삼아 분석했다. 시점은 코로나19가 보건의료체계에 영향을 주기 전인 2020년을 기준으로 삼았고 비교국가 중 통계치가 없는 국가는 제외했다. 국가별 1인당 의료비는 2023년 OECD를 통해 보고된 Health at a Glance에 수록된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확인했다. 공공부문 의료비는 정부 지원금 및 투입 예산액과 건강보험 같은 의무가입보험금이며, 민간부문 의료비는 본인부담금 및 민간 보험비 등이다.

OECD 국가의 인구 100만명 당 개설된 공공병원 과 민간병원의 수(제공: 조병욱 연구위원).

타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는 개설된 병원급 의료기관 수는 월등히 많지만 공급된 병원 수에 비해 공공병원 수가 매우 적은 것(5.4%)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와 같은 민간의료가 100%인 나라를 제외하면 심각한 수준으로 공공병원 공급이 매우 적다. 반면 민간병원의 공급은 매우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OECD 국가의 공공병원 공급 규모와 병원 고용 의사 수의 상관 관계(제공: 조병욱 연구위원)

OECD 회원국은 개설된 병원급 의료기관 중 공공병원 비중이 평균 50%를 넘는다. 특히 캐나다는 우리나라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비슷하지만 공공병원 공급 비율을 98% 이상이면서 병원에 고용된 의사 수가 OECD 회원국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뿐만 아니라 고용된 의사 수, 공공병원 비중도 모두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OECD 국가별 1인당 의료소비 총액 및 구성(제공: 조병욱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1인당 의료비가 중위권으로 그리 높지 않지만 공공부문 의료비(정부지원 + 의무 보험 납부금)이 타 국가에 비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반해 개인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민간의료비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OECD 국가별 1인당 소득 대비 의료 소비 비용 분율 및 구성(제공: 조병욱 연구위원).

공공 부문 의료비 분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GDP를 감안해서 비교할 때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았다.

대한민국 정부의 대국민 사기극 : 대한민국에 공공의료는 없다

대한민국의 공공 의료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요양기관이 건강보험에 당연지정돼 있기 때문에 의료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국민은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의료를 이용한다. 건강보험도 가입하기 어려운 극빈층의 경우 의료급여를 통해 일부 본인부담금을 내는 ‘일부무상의료’를 이용한다. 전액 무상의료는 군의료가 존재한다.

대부분 공공의료라고 하면 시설 투자 및 설립에 국가 및 지자체의 재정이 투입된 의료기관을 떠올린다. 이런 의료기관은 소비자 입장에서 민간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다. 쉽게 말해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과 삼성서울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게 같다는 것이다.

공공의료를 언급할 때 함께 쓰는 용어가 공공재다. 그 이유는 의료가 국가의 통제 및 관리가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OECD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공공병원이 전체 병원의 50% 이상으로 공공재답게 재원을 투입하지만 우리나라는 공공병원 비율이 5% 밖에 되지 않는다. 공공병원이 전혀 없는 네덜란드의 경우 국가가 병원을 직접 짓는 대신 의료비를 80% 이상 부담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90% 이상의 병원을 민간이 공급하고 전체 의료비의 약 40%를 개인이 직접 부담하고 있다. 정부 부담인 60% 중 40% 정도도 건강보험료로 국민이 부담한다. 그 결과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는 전체 의료비의 64%라는 산술적 수치가 나온다(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공공재라는 말을 쓰기 위해서는 공급과 소비가 비용에 구애 받지 않고 의료 이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공병원을 공급하지 않고 있으며, 국민 의료비를 위한 재정도 투입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제도 뒤에 숨어서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로 국민들이 의료비를 보전 받는 것을 국가가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사기다.

의료 소비에 있어서 대국민 기만 - 건강보험

대한민국 의료제도가 세계최고인 이유는 단연코 건강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 재산에 따라 책정되는 건강보험료는 부의 재분배 기능을 갖추고 있으면서 전 국민 의무 가입이기 때문에 준조세 성격을 지닌다. 게다가 보험료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적용되는 혜택은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하며, 국내 모든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을 수 있다.

게다가 혹여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검사나 치료를 잘못 받았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처방을 청구한 의료기관에서 환수되는 안전(?)성도 있다.

OECD 자료에서 건강보험 즉, 공보험이 정부 지원인 공공부문 의료비로 분류되는 이유는 정부지원금이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일몰제이기는 하지만 현재 건강보험에 대한 법정 정부지원금은 국고지원금(일반회계)+건강증진기금(담배부금)으로 되어 있다. 이중 국고지원금은 당해 예상보험수입액의 14%, 건강증진기금은 당해 예상보험수입액의 6%로 예상 보험수입액의 20%를 지원받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 마저도 ‘20%를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한다’ 고 애매모호하게 되어 있다.

건강보험 재정 국고지원금 현황(제공: 조병욱 연구위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국고지원금은 매해 그 액수는 증가했지만 법정지원액인 20%보다 적게 추계돼 왔다. 다시 말하면, 정부는 법으로 정해져 있는 국고지원금을 적게 내면서 건강보험제도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 정부는 법에 정해져 있는 것보다 적게 국고지원금을 내는데 국민들이 내는 건강보험료는 매해 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국민 1인당 총 의료비 중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부문 의료비가 아주 낮다. 이 정도면 국민이 건강보험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건강보험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의료 공급에 있어서 정부 방임

정부가 OECD 통계에서 단순히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만 가지고 이야기할 밖에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기형적인 의료제도에 있다. 공급에 정부는 기여하고 있지 않고, 의료 소비는 건강보험제도를 이용한 기만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통계자료를 가져와도 대한민국 현실에 적합한 통계 수치가 없다.

민간 병원에서 의료 자원 특히 의사 인력은 극도의 효율화를 추구한다. 낮은 수가와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효율성 있는 의료 공급과 고강도의 노동이 필요하다.

그러한 업무 요구에 맞추어 의사 인력이 고용이 되는데, 그래서 대한민국 병원의 고용 의사 수가 다른 나라보다 매우 낮은 것이다. 의사 수가 부족해서 라면 고용 의사 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병원 수가 더 적어야 한다.

민간병원의 의료 인력 구조가 그대로 공공병원에 적용되는 것을 보면 공공병원 또한 민간병원의 효율성을 그대로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반증이다.

특히 의사의 고용 형태 및 업무 분장이 거의 동일한데 이는 앞서 지적한 대로 공공병원과 민간병원 모두 건강보험제도 아래에서 같은 의료이용 지불체계를 적용 받고 있어 수익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의료 소비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의 기능과 역할이 전혀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나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공공의대를 설립하거나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이러한 부분이 확충되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공공 의료는 수익성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공익적 목적을 위해 의료를 공급을 하는 것이다.따라서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정책으로 내어 놓고 증빙하기 위해 기존 공공병원에 고용된 의사 수가 얼마나 부족한지 파악하고, 그 병원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데 필요한 인력이 어느 정도인지 산출해 제시해야 한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단계를 밟았다면 대한의사협회가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라”며 반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의료 공급을 조절을 해서 현재의 의료체계에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개입이 가능한 공공병원에서 인력 구조와 업무 분장을 조정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해 그에 대한 영향과 개선 방안 등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민간병원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현재 주어진 제도 아래에서 효율성을 끌어내기 위한 조정이 이루어져 왔다면, 정부는 그 제도를 수정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의료 공급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선순환적인 의료제도의 바른 개선 방법 아닌가. 국가가 통제하는 의료는 국가가 먼저 더 나은 효율성을 제시해야 민간 의료가 따라올 수가 있다.

공공병원이 시범사업으로 필수의료 영역과 응급의료 의사를 민간병원에 비해 더 많이 고용하고, 급여도 더 높게 책정하고, 근무 시간과 담당 환자 수도 OECD 평균에 맞춰 근무할 수 있게 하고, 배후진료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고용을 해서 받쳐줄 수 있게 질적, 양적 지원을 해주면서도 진료 수익이 난다는 결과물이 나오면 민간병원이 따라오지 않을까. 그리고 의사들도 필수의료와 응급의료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을까(물론 민형사 관련한 법적인 부분도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건강보험 시행 이후 사라져 버린 공공의료를 존재하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민간병원과 똑같이 운영되는 공공병원을 존속시켜 왔다. 만일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예산과 재원을 지원하며 공공의료를 키워왔다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에 민간병원 자원을 강제 동원하거나 지역별 필수의료, 응급의료체계 등과 같은 것을 걱정하고 있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동안 공공의료를 방치했고 앞으로도 계획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민간의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법리적으로 민간의료를 통제할 방법이 없으니 막무가내로 일단 숫자를 늘리고 보자고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의료는 건강보험이 만들었다. 저비용, 전국민이 누리는 보편성, 적은 의사로 높은 수준의 의료를 만들어내도록 만든 그런 제도이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대한민국 의료를 무정부 상태로 만들었다. 공공의료는 사라졌고, 사회적 변화에 대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 의료가 공공재라고 말하지만 그 어떤 공공 의료기관도 의료 제도를 앞장서서 이끌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왜 민간 의사들이 나서서 정책을 제시해야 하고, 왜 민간병원들이 나서서 시범사업을 제안하고 참여해야 하는가.

필수의료, 응급의료, 소아의료, 기피의료, 낙수의료로 의사들이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정부가 지원하고 운영하는 공공병원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고용된 의사 수도 공공병원에서 먼저 늘리고, 응급의료전달체계도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수립해라. 공공 병원에 환자들이 늘어나고 공공병원의 변화가 병원의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민간병원들도 그렇게 변화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병원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다. 의사 수가 적을 뿐이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부족한 것은 정부의 의료에 대한 진정성이다.

첨언하자면 공공병원 중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이 있다. 일산병원 손익계산서를 보면 현 건강보험제도의 문제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의료업을 하는)병원의 영업이익이 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