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문제 의료일원화로 풀자…“이번 기회에 한의대 폐지”
박인숙 전 의원 "한의대 정원으로 '의대 증원' 명분 확보" 제안 기존 면허 범위 문제 넘어야…"탄핵 위험 감수할 사람 없다" 정원 조정 수준은 미봉책…의료계도 새로운 논의 나서야
한의대 정원 축소가 의대 정원 증원 방안으로 제시되자 의료일원화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의료계가 추진한 의료일원화 첫 시작이 한의대 폐지였기 때문이다. 한의대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정원을 의대로 옮겨 명분과 실리를 다 챙기자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3일 대한의사협회 용산회관에서 열린 의료윤리연구회 세미나에서도 이런 의견이 제기됐다. 박인숙 전 국회의원은 "의대와 한의대를 모두 설치한 종합대 한의대를 폐지하고 의대로 입학 정원을 옮기자"고 했다.
전국 12개 한의대 중 원광대·동국대·경희대·가천대 4개 대학이 대상이다. 전체 한의대 폐지보다 저항이 적어 더 수월하게 의료일원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전 의원은 의정 활동 당시에도 이같은 방안으로 의료일원화를 추진했으나 교육부 등 관계 부처·단체 비협조로 무산됐다고 했다.
박 전 의원은 "(종합)대학으로서는 과 폐지로 인한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대학은 한의대 운영으로 이익보다 손해가 커서 고민하고 있었다"며 "반면 의대는 대학과 병원에 이익이 큰 만큼 설득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추진 당시 상황에 대해 설했다.
한의대 정원만큼 의대 정원이 늘어나므로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의료계도 정원 증원이라는 명분을 얻는다"고도 했다. 보건복지부도 최근 한의대 정원을 줄여 의대 정원을 늘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한의대를 폐지해 정원을 조정하는 방식이 의료일원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의협은 지난 2015년 추무진 전 회장, 2018년 최대집 전 회장이 한의대 폐지를 전제로 한의계와 구체적인 합의안까지 마련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의료일원화 자체는 물론 그 방법을 두고 여론이 분분했다. 여기에 '밀실 야합'이라는 비판까지 나와 추 전 회장은 특별감사 대상에 올랐고 최 전 회장은 탄핵 직전까지 갔다.
이날 세미나 발제를 맡은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김교웅 위원장은 의료일원화가 "국민 입장에서도 필요하다"면서도 현재 논의 수준에서는 다시 추진하기 어렵다고 봤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8년에도 한특위원장으로 의료일원화 방안을 상의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9년 대회원 조사에서 의료일원화 찬반 여론이 반반 수준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며 "마지막에 도장 찍는 것은 의협 회장이다. (선례를 봤을 때) 또 다시 탄핵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누가 나설지 모르겠다"고 했다.
면허 범위 준수도 문제다. 의료계는 한의대·한의사 제도 폐지만큼 기존 면허 범위 준수를 대전제로 보고 있다. 대회원 조사에서도 의협 회원 78.7%가 '기존 면허자는 상대방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가 의료일원화 최우선 원칙이라고 했다. 지난 2015년 추 전 회장 당시 마련된 합의문은 '의료와 한방의료 간 교류 촉진'이라는 문구가 면허권 침해 여지가 된다며 반발을 샀다.
이에 대해 이윤성 전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장은 "한의대를 폐지하고 이후 (의료일원화) 과정을 합의하기 위해 한의계에 던진 협상 여지였는데 결과적으로 이 문구 때문에 (의료일원화를)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 전 원장은 지난 2015년도 논의 당시 대한의학회장으로 협의에 참여했다.
이 전 원장은 "그때 합의했으면 벌써 내년과 내후년에는 한의대 입학이 금지되고 2030년에는 신규 한의사 배출도 멈췄다"며 "한의대 정원을 일부 줄이는 수준으로는 미봉책에 그친다. 한의대를 폐지해야 의료일원화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탄핵당할까 봐 안 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도 우리 입장을 더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밀어붙이며 한 발 크게 내디뎌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 역시 "한의대 폐지를 발표하고 (의협) 회원도 설득해야 한다. 한의계 문제에 회원의 더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지금은 많은 회원이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 있다"면서 "기존 의견과 논의 방식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행동도 달라져야만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