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만 남은 면허취소법…대응 바꾸지만 시름 깊어지는 의료계
파업·단식→대화·협상으로 전략 수정 헌법소원은 "피해자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대의원 운영위, 비대위 유지 여부 논의
간호법은 다시 국회로 돌아가고 ‘의료인 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의료계 투쟁 방향도 달라진다. 파업이나 단식 같은 강경한 방식은 접고 국회를 통해 면허취소법을 개정하거나 헌법소원을 제기해 위헌 판결을 받아내는 데 집중한다. 투쟁에서 대화와 협상 국면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투쟁 방식이 바뀌면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해산 여부도 논의된다. 의협 대의원회는 오는 20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비대위 해산 여부에 대해 논의한다. 의협은 지난달 23일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비대위 활동 기한을 연장하면서 종료 여부는 운영위에서 결정하도록 위임한 바 있다.
의협 대의원회 박성민 의장은 16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오는 20일 운영위를 개최해 비대위 유지 여부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박명하 비대위원장으로부터 활동 기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이를 토대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의장은 “비대위 의견을 들어 본 뒤 활동 기한을 이날 운영위에서 바로 결정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여유를 갖고 결정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박 의장은 간호법에 대해서만 재의요구가 결정되고 면허취소법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상황에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 의장은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다행이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면허취소법은 조금 아쉽다. 지난 14일 당정협의에서 거부권 대상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점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간호법도 중요하지만 의사 회원들은 사실 면허취소법 저지가 더 절실해서 그 부분에 관심이 컸는데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도 했다.
박 위원장은 국회로 다시 넘어간 간호법이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될 때까지 비대위가 활동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는 25일과 30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다시 논의되면 그 결과를 지켜본 뒤 6월 중으로 비대위를 해산한다는 계획이다.
박 위원장은 이날 보건복지의료연대 기자회견 이후 청년의사와 만나 “간호법과 면허박탈법(면허취소법) 저지를 위한 비대위이기 때문에 법안이 최종 폐기되는 순간까지 활동하게 돼 있다. 5월 국회 본회의가 25일과 30일 예정돼 있어서 그 시점까지 활동하는 게 원칙”이라며 “그 다음에 마무리 수순으로 가서 6월 중에는 활동을 마칠 예정”이라고 했다.
면허취소법 대응을 위해 공포된 후 시행되기 전까지 개정을 추진하거나 위헌 결정을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면허취소법은 의료관련법령이 아닌 다른 법을 위반해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은 의료인도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관련 기사: 본회의로 넘어간 ‘면허취소법’ 어떤 내용 담았나). 의료계는 면허취소법 적용 대상을 살인이나 성범죄 등 중대 범죄로 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면허취소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법안 내용을 개정하거나 위헌 결정이 나오도록 노력하겠다. 비대위 활동이 끝나면 서울시의사회장으로서 의협과 함께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면허취소법으로 “단체행동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의협과 대한치과의사협회가 플랜B로 거론한 헌법소원은 현실적인 대응 방식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소원을 제기하려면 면허취소법 적용으로 피해를 입은 의료인이 생겨야 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세승 한진 변호사는 “협회는 헌법소원을 제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면허취소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거나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며 “현 상황에서 법이 공포된다고 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헌법소원보다는 국회를 통해 법률을 개정하는 게 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협회 차원에서는 토론회 등을 통해 면허취소법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널리 알리고 국회를 통해 개정을 추진하는 게 더 현실적이고 빠른 방법”이라며 “언제 피해자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데 위헌 소송을 하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면허취소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의석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는 법 개정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협 대의원회 박성민 의장은 “피해 회원이 나와야 위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반대로 말하면 회원이 피해를 입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라며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게 현실적일 수 있지만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에서 개정안이 발의된다고 해서 처리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의협 대의원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반복되는 의료 악법 저지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총선에 참여하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