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파계로 파킨슨·치매 진단하는 한의사? 해외 학계 ‘경악’

WFN·MDS·AOAN “뇌파로 파킨슨·치매 진단 불가” 뇌파검사 전문성 강조하며 “신경과 전문의가 수행해야”

2023-03-10     송수연 기자
아시아·오세아니아신경과학회(AOAN), 세계신경학연맹(WFN), 국제파킨슨병및이상운동질환학회(MDS)는 뇌파검사로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할 수 없으며 뇌파검사 자체를 전문성을 갖춘 신경과 전문의가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해외 학계가 한국에서 뇌파계를 이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는 ‘의료인’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신경과 전문의 등 의사가 아닌데도 뇌파검사를 한다는 부분도 이해하지 못했다.

한의사 뇌파검사 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한의사 A씨는 ‘뇌신경전문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했다. 이 때문에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로 면허자격정지 1개월 15일과 경고 처분을 받았다. A씨는 자격정지 처분을 취소하라며 보건복지부를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는 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뇌파계를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 대상에 올랐다. 결국 초음파 진단기기에 이어 뇌파계 한의사 사용 합법 여부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결정한다. 대법원이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합법이라고 판단하면서 ‘새로운 판단 기준’까지 제시한 터라 뇌파계 한의사 사용도 ‘합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상황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뇌파계로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한다는 사실 자체로 ‘비전문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아시아·오세아니아신경과학회(Asian and Oceanian Association of Neurology, AOAN)는 뇌파검사(EEG)를 포함한 전기생리학적 검사 등은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견서를 지난 3일 대한신경과학회를 통해 대한의사협회에 전해 왔다.

AOAN은 “뇌파검사가 여러 신경계 질환 진단과 모니터링에 사용되지만 매우 민감한 기술로 신경과 전문의의 임상 지식과 훈련이 필요하다”며 “현재 세계 표준인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기준에 따르면 뇌파검사를 포함한 혈액검사와 전기생리학적 검사는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파킨슨병및이상운동질환학회(International Parkinson and Movement Disorder Society, MDS)도 같은 의견이었다. MDS는 지난 2015년 파킨슨병 임상 진단 기준인 ‘MDS Clinical Diagnostic Criteria for Parkinson's Disease(MDS-PD Criteria)를 발표했고 현재 이 기준은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MDS는 “MDS-PD 기준을 적용한 정확한 진단을 위해 서동(bradykinesia), 휴식 떨림, 강직을 기반으로 일련의 진단 과정이 필요하며 반드시 신경학에 대한 충분한 훈련을 필요로 한다”며 “현재 뇌파검사와 같은 검사는 MDS-PD 기준에 포함되지 않으며 파킨슨병 진단에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신경학연맹(World Federation of Neurology, WFN)은 뇌파검사가 중요한 질병까지 나열하며 파킨슨병과 치매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환자 입장에서 신경과 전문의 등 전문가가 뇌파검사를 하고 이를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WFN은 “뇌파검사는 신경학적 맥락에서 수행돼야 하며 신경학적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뇌파에 대한 자세한 지식과 해석, 관련 적응증도 이해해야 한다”며 “환자 입장에서 뇌파 검사가 신경과 전문의 등 전문가에 의해서만 수행되고 해석된다는 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신경과 전문의로 이는 전 세계 과학계에서 엄격하고 지속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9일 “해외 학회 등 관련 기관에서도 의사가 아닌 한의사가 뇌파계를 사용하고 특히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한다는 것에 놀라움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의견서를 보내왔다”며 이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한의학에 존재하지 않는 질병명인 파킨슨병을 진단하기 위해 뇌파계를 사용한 것은 진단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 한의학적 진단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현행 의료법 제2조는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명확히 적시돼 있어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 범위가 명확하게 구분돼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사들이 의과의료기기, 특히 환자의 건강과 직결될 수 있는 뇌파계의 불법적인 사용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의협은 “뇌파계 사용과 같은 한의사 면허 범위 외의 의료행위와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하려는 불법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을 비롯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며 “정부에는 한방 무면허의료행위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을 촉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