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병 놓치고 없는 병 만드는 '한의사 초음파', 위해 없다?

의협·산부인과학회·영상의학회 대법원 판결 비판 부정확 진단 사례 지적했으나 판결에 반영 안 돼 현대의학 지식·경험도 간과…"상상력 의존 판결"

2023-02-22     고정민 기자
대한의사협회는 22일 한의사 초음파 사용 영상을 공개하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환자 위해를 간과했다고 비판했다(ⓒ청년의사).

"내막이 얇다. 호르몬이 안 도니 내막이 잘 형성되지 않았다. 여기가 난소인데 포도송이처럼 동글동글한 게 보이나. 아직 조기 폐경까지는 아니지만 다낭성난소다."

서울시 서초구 소재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초음파 검사 후 내린 진단이다. 다낭성난소질환이라면서 한약 복용을 권했다. 정작 산부인과 의원 검사에서는 아무 증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숙 과정 난포를 한의사가 다낭성난소질환으로 착각한 것이다.

22일 대한의사협회가 공개한 한의사 초음파 검사 시행 영상 일부다. 한의사가 '보조적 진단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달리 공개된 영상에서 한의학적 표현이나 진단 방법을 찾아보기 어렵다.

진단도 틀렸다. '다행히' 공개된 사례는 증상이 없는 경우였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사건은 한의사가 2년간 68회나 초음파 검사를 하고도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쳤다. 하지만 대법원은 "보건위생상 위해를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의협과 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영상의학회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불러올 환자 위해와 의학적 위험을 다시 한번 강조한 이유다.

산부인과학회 이근영 회장은 "(이 사건)해당 한의사는 초음파 검사를 제대로 수행하고 판독할 능력이 없었다. 자궁내막암의 정상적인 진단 과정에 대한 의학적 지식도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 한의원은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 자궁내막염, 난소낭종 등 치료 사례에도 초음파 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한의원이) 현대의학적 진단이 아니라 '기체혈어 자궁증'이라는 한방질환의 진단 보조수단으로 초음파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면서 "이에 대한 이론적 자료는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학회 차원에서 부정확한 사용과 진단이 이어졌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판결에 반영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 회장은 "산부인과학회는 이 한의원이 제시한 초음파 사진과 한의사가 내린 추정 진단이 일치하지 않고 검사 자체가 부정확하게 이뤄졌으며 일부 증례는 진단명과 초음파 사진 간 추정 진단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파악했다. 이런 개연성에 대한 검토 결과를 의협을 통해 재판 과정에 제출했지만 대법원 판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영상의학회는 22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판결이 간과한 의학적 위험을 집중적으로 다뤘다(ⓒ청년의사).

법원이 초음파 검사에 필요한 현대의학 지식과 경험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영상의학회 이정민 회장은 "초음파 검사는 단순히 탐촉자를 환자 신체에 접촉해 육안상 보이는 구조물의 이상 소견 추정만으로 판단하는 행위가 아니다. 초음파 검사 영상은 누구나 만들 수 있어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회장은 "청진기를 가슴에 대면 심장과 호흡음을 들을 수 있어도 이를 해석하는 데 많은 의학 지식과 다년간 경험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과 유사하다"면서 "초음파 검사는 다른 의료영상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결과 해석은 영상의학 영역에서도 최고 난도 검사"라고 지적했다.

변호사인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도 "대법원이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도 통상적 수준의 위험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내놓는 논거를 보면 법조인으로서 부끄럽다"고 일갈했다.

박 교수는 "현대의학은 꾸준히 스스로를 검증해왔다. 이런 검증체계야말로 환자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면서 "대법원은 상상력에 의존해 판결하지 말고 판결을 검증하고 판결의 전제가 되는 사실관계를 검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작용은 오로지 국민이 감내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편, 의협은 파기환송심에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이같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달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