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의약품 발전 없이는 제약산업 발전도 없는데…”

글로벌 원료의약품 시장 성장…국내 시장은 ‘주춤’ 업계 “중국·인도 대비 가격 열위…해외 개척 난항” “해외와 달리 의약품 공급망 마련에 소극적”

2022-06-27     김찬혁 기자

“연구를 하면서 (원료의약품)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봤는데 ‘우리는 버린 자식이다’, ‘이 분야에 경쟁력이 없으면 제약산업 발전도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정부에서 지원이 거의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열린 2022 한국에프디시규제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보건산업정책연구센터 정순규 책임연구원은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 현주소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원료의약품 품질 제고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방안’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정순규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센터가 진행한 원료의약품 관련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글로벌 원료의약품 시장은 전체 의약품 시장의 13~15%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1,775억 달러(약 230조원)에서 연평균 7.2% 성장해 2025년 2,514억 달러(약 326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러 국가들이 제네릭 의약품을 장려하고,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급증하고 있으며, 글로벌 CMO(위탁생산)/CDMO(위탁개발생산) 시장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 2020년 국내 원료의약품 시장 규모(생산액-수출액+수입액)도 전년대비 43.4% 증가해 약 36억 달러(약 5조원)를 기록했다. 이는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원료 생산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국내 원료의약품 기업들의 매출은 시장 규모에 비해 크지 않다. 2020년 기준 국내 주요 기업 12곳의 매출액 총합은 약 1,000억원이다. 국내 주요 기업에는 대웅바이오, 경보제약, 유한화학, 화일약품, 동국생명과학, 종근당바이오, 에스티팜, 코오롱생명과학, 국전약품, 하이텍팜, 에스텍파마, 이니스트에스티 등이 있다(2020년 매출액 순).

정순규 책임연구원은 “2010년부터 10년간 국내 원료의약품 무역은 수출보다 수입에 치우쳤지만, 점차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열린 2022 한국에프디시규제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보건산업정책연구센터 정순규 책임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순규 책임연구원은 국내 의약품 산업이 처한 문제점으로 원료의약품 공급망의 다양성 부족을 꼽았다. 원료 수급이 일부 국가로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센터가 2011년 1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원료 DMF(원료의약품등록)를 분석한 결과 한국산이 21.6%, 인도산이 34.2%, 중국산이 23.2%로 나타났다. 미국과 EU, 일본의 경우 자국 원료의약품 DMF가 가장 높은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중국 원료의약품의 경우, 2018년 발생한 발사르탄 NDMA 검출 사태와 코로나19로 인한 공급 불안정 외에도 미중 무역갈등의 여파로 ‘의약품 무기화’의 소지가 있다는 게 정순규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21년 국내 49개 원료의약품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기업들은 생산 및 수출입 관련 애로사항으로 ▲글로벌 트렌드 및 환경 관련 규제로 인한 제조경비 증가 ▲신흥공업국(중국, 인도 등) 대비 가격경쟁력 열위 ▲해외시장 개척 어려움 ▲협소한 국내 시장 규모로 인한 판로 어려움 등을 꼽았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순규 책임연구원은 “구체적인 원료의약품 공급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하는 거버넌스가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정순규 책임연구원은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미국이나 유럽 국가는 의약품 공급망 조사를 많이 하고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이에 소극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 연구 과정에서 국내 공급망 현황을 살펴보고자 했으나 모든 데이터를 식약처가 보유하고 있었다”며 “분석이 먼저고, 이후 대책 수립이 여러 방법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정순규 책임연구원은 원료의약품 품질 개선과 제조 기술 향상을 위해 민간협력파트너십(PPP) 방식의 협력을 제안했다. 이른바 ‘의약품 첨단제조협력 파트너십’ 하에 네트워크 파트, 규제연구 파트, 시설개선 파트를 두어 주체 간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정순규 책임연구원은 “제약사, 장비 업체, IT기업, 컨설팅 기업 등이 참여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며 “여기서 나온 결과물들이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 연계되면서 하루 빨리 산업 현장에 반영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정순규 책임연구원은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규제라든지 법령이 정비되고 정부 지원이 이뤄진다면 충분히 글로벌하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산업”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