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유기 의사 면허 재교부 판결에 의료계 ‘곤혹’
법사위 계류 ‘면허관리강화법’에 미칠 영향 ‘촉각’ “경제사범도 면허취소, 가혹”…의협, 대안 마련 의료계 내부 “살인·강간 등 중범죄자 강력 처벌”
시신 유기로 의사면허가 취소된 A씨에게 면허를 재교부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의료계는 그 파장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의료계 입장과 상관없는 법원 판결로 인해 대중의 비난이 의사 사회로 번져 자칫 과도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A씨는 지난 2012년 7월, “잠을 푹 잘 수 있게 해달라”는 지인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인 미다졸람, 전신마취제인 베카론, 국소마취제인 나로핀과 리도카인 등 13개 약물을 섞어 주사했다. 2시간 뒤 지인이 사망하자 A씨는 시신을 차에 실어 공원에 유기했다.
A씨는 이 사건으로 지난 2013년 2월 업무상 과실치사, 사체유기, 마약류관리법·의료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으며 그해 5월 형이 확정됐다. A씨는 2014년 8월 의사면허도 취소됐다.
A씨는 지난 2017년 8월 복지부에 면허 재교부 신청을 했지만 복지부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자 A씨는 지난 2021년 3월 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지난 14일 “과오를 범했지만 개전의 정이 뚜렷한 의료인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해 의료기술이 필요한 현장에서 봉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의료법 취지와 공익에 부합한다”며 A씨에게 면허를 재교부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 4월 26일 법원에 항소했다.
의료계는 이같은 판결이 불러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의료인 면허관리강화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모습이다.
의료인 면허관리강화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 면허 취소 범위를 집행유예를 포함해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은 모든 중대범죄로 확대했다. 의료계는 그 범위가 너무 넓어 의료와 관련 없는 일로 집행유예만 받아도 의사 면허가 박탈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도 감지된다. 살인이나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의사까지 감싸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2020년 10월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464명 중 69.5%가 ‘살인과 강간 등 중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했다. 반대는 30.5%였다.
‘무조건 반대’하던 대한의사협회도 살인이나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같은 입장을 반영한 면허관리강화법 대안을 마련해 국회에 의견을 개진하고 있기도 하다.
의협 박수현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31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며 국민의 눈높이도 알고 있다”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의사와 관련된 사건이 나올 때마다 난감하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살인이나 성범죄 등을 저지른 의사에게 온정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이는 의협이나 의료계 내부도 마찬가지”라며 “우리 내부에서 자정 작용이 있어야 다른 선량한 의사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사위 계류 중인 면허관리강화법에 대해서는 범위에 제한이 없어 과도한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사위 내에서도 “선거법 위반으로 집행유예가 나오면 면허 취소”되는 등 의사의 직업 선택권을 과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박 대변인은 “교통사고로 처벌 받거나 병원이 망해 폐업하는 과정에서 경제사범이 되면 의사면허까지 취소당할 수 있다. 의료와 전혀 상관없고, 목적성이 없는 범죄에도 적용되는 부분이 문제”라며 “강력 범죄 등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제사범 등도 면허를 취소하는 것은 가혹하다.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우리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여러 대안을 마련해서 제시하고 있다”며 “살인이나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까지 옹호하면 의사라는 직업의 윤리성을 인정받기 힘들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