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알아서 해결하라' 방치 말고 국가적 시스템 마련해야

신현영 의원-의협,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토론회' 개최 "원만한 분쟁 해결과 신속한 피해 회복 위해 필요" "'면책'이 아니라 형사 절차 방지에 초점 맞춰야" 교통법처럼 명확한 기준·범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

2022-02-23     고정민 기자

최근 '장정결제 투여 사망 사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항소심 절차가 잇따라 마무리되면서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형사처벌을 막기 위한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 논의가 재점화됐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은 물론 신속한 피해보상으로 의사와 환자 모두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 차원에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대한의사협회 용산회관에서 열린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가칭)의료분쟁 특례법 제정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의료분쟁 특례법 도입 필요성과 제정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국회의원이 주최했다.

발제에 나선 법무법인 담헌 이준석 변호사는 의료분쟁 특례법이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고 피해를 신속히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처럼 의료사고 배상책임보험 가입자에 대한 처벌 특례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의료분쟁 특례법은 의사의 처벌 면책이 아니라 환자가 입은 피해를 신속하게 회복하는 것이 주목적"이라면서 "보험 가입자는 업무상 과실에 대해서 처벌을 못 하도록 해 의료분쟁이 발생했을 때 형사책임 영역까지 (분쟁이)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민사 배상 책임 단계에서 해결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의사 특혜'가 되지 않도록 중과실 등에 대한 처벌 규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 12대 중과실은 처벌할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무면허 의료행위 지시, 사회적 상식에 위배되는 의료행위, 과실 정도가 큰 경우는 예외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분쟁 특례법 별도 입법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추진도 방법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의료분쟁조정법에 배상책임보험 관련 조항이 있다. 여기에 배상책임보험 가입 시 업무상과실치사·상에 대한 면책이나 처벌 감경 조항을 신설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 22일 열린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법 제정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다뤘다(사진 제공: 대한의사협회).

의협 전성훈 법제이사는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적 관리 체계가 미비했다면서 의료분쟁특례법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 이사는 "모든 문제는 환자가 민사상 합리적인 배상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시작됐다"며 "피해가 생겼을 때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 관리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사고가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와 사회가 위험을 분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지금처럼 개별적으로 해결하도록 민간에 방치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향이 아니다"라면서 "의료분쟁 특례법은 대한민국 의료시스템 전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형사 절차 방지에 초점 두고 더 명확한 기준 마련해야

서울지방변호사회 김의택 기획이사는 중과실에 대한 면책 조항이 있는 한 입법은 어렵다고 내다봤다. '면책'보다는 형사 절차 회부 방지에 초점을 둬야한다는 의견이다. 의료사고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김 이사는 "의료사고로 사망이나 장애를 얻는 경우, 12주 이상 상해 등 결과는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고의로 인한 중과실 여부는 수사하지 않고 명확하게 알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핵심은 처벌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형사 절차 자체에 회부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의 여부 등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중상이나 사망 등 (의료사고) 결과로 범위를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처럼 12대 중과실, 횡단보도·신호 위반 여부 등 '정확하게 결과적으로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가벼운 사례는 형사 절차 자체에 회부되지 않도록 면책하는 형태로 입법을 해야 한다"면서 "사망이나 중상해가 발생한 경우에 면책한다는 형태는 입법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또 민사 절차에서도 분쟁 사항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는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김 이사는 "의료분쟁 민사 절차에서 일반인이 의사의 행위에 대해서 정확하게 과실을 집어낼 수 있을 정도로 대등한 위치가 아니다"라면서 "이를 보완해줄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보건복지부 박미라 의료기관정책과장은 "먼저 법리적인 문제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구체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환자단체와 일반 의료소비자인 국민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으로 (마련하기 위해) 정부도 의견을 수렴하고 다각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중재 신청 건수 가운데 합의나 조정 중재가 최종 성립된 비율이 66%다. 나머지는 절차상 자동 탈락하거나 빠져나갔다. 이 부분을 보완하면 피해 구제의 신속성이나 안정적인 진료 환경 조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