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2021년, 우리가 ‘왕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왕진에서 찾는 지속가능한 의료서비스의 미래①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의료비 지출 증가…변화 절실 찾아가는 의료서비스로 질병 발병 전 관리해야 해결

2021-06-24     곽성순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규모 유행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전망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사회전반적으로 거센 가운데, 보건의료분야에서도 변화에 대비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비대면’의 중요성을 등에 업고 전화처방 등 비대면 진료 강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미 힘을 얻고 있으며 의료기관 감염관리 강화는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 가는 모양새다.

이런 와중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왕진’을 새로운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목소리들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주장의 핵심은 ‘의료기관 중심 의료체계’를 환자와 의사의 유대 중심 ‘일차의료 기반 의료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2025년 초고령화사회 진입

유엔(UN)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고령화사회는 총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 고령사회는 14% 이상, 초고령사회는 20%를 넘어설 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 중 15.7%를 차지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통계청은 2025년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20.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유엔 기준으로 2025년이면 우니라라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2000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후 25년만으로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빠른 속도에 해당한다.

사회가 고령화될 수록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보건의료분야에 미치는 영향도 당연히 크다.

심상치 않은 GDP 대비 진료비 증가

고령사회가 진행될 수록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진료비 지출 증가세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하듯 최근 5년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이미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단순히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증가세가 가장 빠르다.

최근 보험연구원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지난 2014년 6.5%에서 2019년 8%로 1.5%p 증가했다.

반면 미국은 지난 2014년 16.4%에서 2019년 17.0%로 0.6%p 증가했고 일본도 같은 기간 10.8%에서 11.1%로 0.3%p 늘어나는데 그쳤다.

OECD 평균도 같은 기간 8.7%에서 8.8%로 0.1%p 증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 1.5%p 증가세를 보인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보였다.

불과 몇년 사이에 OECD 평균을 밑돌던 우리나라 GDP 대비 진료비 지출이 OECD 평균까지 치달았고 앞으로 평균을 넘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기다리다 ‘환자’ 만들지 말고 되기 전에 막아야

이처럼 초고령사회 진입과 진료비 지출 증가로 보건의료체계의 미래가 어두운 지금 두가지 문제 모두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차의료 강화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의료기관 중심 보건의료체계를 환자중심체계로 전환해 병을 키우지 않고 선제적으로 관리해 중증질환자를 줄이는 것이 초고령사회 노인인구 건강관리와 진료비 지출 증가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일차의료와 왕진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은 “고령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 입소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왕진이나 지역사회 케어를 통해 관리가 가능하다”며 “(일차의료가 활성화됐다면)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병원에 누워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요양병원, 요양시설 입소자 외 수술 후 퇴원, 분만 후 퇴원 등 거동이 불편하지만 케어해줄 의료진이 있으면 굳이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등도 왕진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현재 간호사는 방문간호제도가 있어 법적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의사들의 왕진은 법적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는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커뮤니티케어를 강조하고 지금까지 추진하고 있지만 복지에 중심을 두고 있는 모양새”라며 “하지만 복지만으로는 만성질환자나 고령인구를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라도 왕진제도 체계화를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이재호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진료비 상승 속도가 크다. 브레이크 없는 차 같다”며 “의료비 상승 속도가 최고인 나라에서 보장성 강화 정책은 의료비 상승 속도에 가속도를 붙이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공병원 확충도 좋은 정책이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병상 수가 증가하고 있는 나라”라며 “이런 상황에서 가속도 붙은 차를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일차의료 강화”라고 덧붙였다.

인하의대 임종한 학장은 “우리나라는 그동안 치료중심 의료체계를 가동해 왔다. 하지만 만성질환 관리 수준을 보면 고혈압이 50% 미만, 당뇨는 26.8% 정도”라며 “우리나라는 일차의료 기능이 약화된 상태기 때문에 만성질환 예방관리와 사전 건강관리가 취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학장은 “고령화와 진료비 지출 증가가 가파른 상황에서는 치료중심 의료체계를 예방중심 의료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건강취약그룹에 대한 관리 강화는 전문가들 모두 인정하는 과제”라고 덧붙였다.

임 학장은 “전쟁을 치를 때 다양한 무기가 있어야 유리하다. 탱크와 전투기도 필요하지만 소총수도 필요한 것”이라며 “현재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은 유연하지 못하다. 사회적 요구는 예방적 돌봄인데 이를 위해 (왕진 등) 다양한 서비스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 찾아가기 전 넘어야 할 산들

현재 왕진에 대한 시범사업이 진행중이기는 하지만 왕진을 포함한 일차의료 강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일차의료 강화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앞을 가로막는 ‘주치의제도’ 도입에 대한 의료계 반발은 가장 큰 숙제다.

지금까지 일차의료 강화와 주치의제도를 논할 때마다 의료계 거센 반발이 일었고 그때마다 논의는 한발도 전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일차의료 전문가들은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임종한 학장은 “지금 당장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주치의제도를 도입하고 왕진을 활성화하자고 하면 못한다. 시간이 걸리는 과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수련구조, 지불제도 등 고려할 문제가 많다. 전면적인 도입이 어렵다면 초고령화시대를 대비해 노인주치의제도 도입부터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호 교수는 “건물을 지을 때 1층부터 튼튼히 하고 2~3층을 지어야 하는 것처럼 의료체계도 1층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위로 갈 수록 위태로워 진다”며 “지역사회가 책임지는 의료체계를 이야기 하면서 (주치의제도 등) 일차의료 강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역책임병원을 만들고 지역완결형으로 1~3차를 구분해 건강관리를 하겠다고 하면서 일차의료 강화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탁상보건행정의 전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