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의료데이터가 4차 산업 육성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김남국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2020-09-28     청년의사

인공지능ㆍ빅데이터 시대에 데이터는 새로운 재화이다. 하지만 의료 데이터는 기존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규제 일변도의 법 때문에 자유롭게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 3법(개인정보 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이런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발의된 지 1년 2개월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 올해 8월 5일 시행되었다.

데이터 3법 개정 취지는 규제 중심의 개인정보보호에서 나아가서 데이터의 가명처리를 통해 4차 산업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런 정보를 활용하여 더 좋은 의료인공지능을 만들어서 환자와 의료진에 도움을 주고, 우리나라 의료 산업도 육성하는 것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

그런데, 이번에 새로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을 살펴보면, 개인정보에 대한 너무 포괄적인 정의, 추상적 가명화의 정의, 과학적 연구에 산업적 목적을 포함하는지 불명확, 환자의 동의를 받을 때 포괄적 동의 가능여부, 관련된 ‘의료법’이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등의 모순적 관계 등 다양한 문제가 있다.

특히, 데이터의 활용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가명정보의 산업적 연구가 가능한지를 살펴보자. 이번에 같이 개정된 신용정보법에는 가명정보의 경우 동의없이 상업적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금융분야에서는 마이데이터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 및 마이페이먼트사업 등 다양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에는 과학적 연구만 적시되어 있어 향후 논란의 불씨가 남았다.

최근 데이터 3법에 자세히 기술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행정부 유권해석을 담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안)’이 의견조회가 끝나고 곧 정식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과학적 연구란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의 연구개발 및 개선 등 산업적 목적의 연구를 포함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신용정보법과 같이 명시적으로 적시되어 있지 않아서, 가명처리가 충분히 되었더라도 향후 문제가 되면 법원의 판단을 한 번 더 받아보아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또한, 건강 등에 관한 민감정보를 일반 개인정보와 같은 기준으로 가명처리하여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법문상 명확하지 않다. 가명처리를 금지해 놓은 의료법, 국민건강보험법 및 생명윤리법 등과 상충되지 않는지도 명확하지 않아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의료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안전하게 하기위해서는 환자의 동의를 받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나라 법상 포괄적 동의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법률의 모태가 된 미국 보건부의 커먼룰(common rule)은 이미 포괄적 동의를 가능하게 개정되어서(2020년 1월 20일), ‘연구대상자의 권리 증대’과 ‘연구의 효율성 증대’를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번호 만으로 전국민 단위의 환자를 추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이다. 소위 빅5 병원의 환자정보를 모으면, 50% 이상의 중중질환 코호트를 구축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나 오픈 이노베이션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의료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과거 의료데이터를 일일이 동의를 받아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가명정보를 이용하여 국가차원의 데이터 활용 기구를 만들어 기존의 병원 데이터를 가치 있게 활용하는 시도에 대해 심사를 한다. 이 심사를 통과한 데이터를 이용해서 만든 인공지능 의료기기는 수익의 일부분을 ‘데이터세(tax)’로 거둬서, 정부가 보조하는 국세(14%)와 국민건강증진기금(6%)에 추가한다. 이런 식으로 건강보험을 강화해 환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단일보험체계는 이런 합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토대이다. 만약 자신의 데이터를 비식별조건에서도 공유하기 싫은 개인은 옵트아웃(opt-out) 형태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또한, 지금부터 생성되는 의료데이터에 있어 옵트인(opt-in) 형태로 동의를 받는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하고, 의료정보 손상 없이 비식별화 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의료인공지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병원과 의료진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과감히 병원과 의료진, 그리고 산업계에 유연한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의료보험 제도에서는 최초 신약이나 의료기기에 대해서 의학적 가치가 인정되면 보험에서 독점적이고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이런 신약이나 의료기기가 의료를 발달시켜 더 좋은 의료시스템을 만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시장에 경쟁자가 나타나게 되면 더 높은 가격의 한시적 인센티브를 지불한다. 왜냐하면, 이런 경쟁이 기존의 시장을 성숙시키고 유연하게 해서, 훨씬 더 좋은 의료환경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데이터세(tax)’를 기반으로 한 국민건강보험 강화를 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의료 산업을 균형 있게 육성하고 국민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및 보장성 강화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