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500억원 정부 지원…예산대비 성과 미비 지적


[청년의사 신문 양금덕]

한국한의학연구원과 대한한의사협회가 공동 발간한 ‘2012 한국한의약연감’에 따르면, 정부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의약 분야 연구에 총 2,992억원을 투자하는 등 매년 13.3%씩 연구비를 늘리고 있다.

동시에 한의학 및 한약의 육성·발전에 관한 사항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한의학연에 대한 정부 투자도 크게 늘었다. 한의학연의 예산은 2005년 100억원에서 2014년에는 5배 이상 많은 545억9,200만원을 기록했다. 한의학연은 2014년을 기준으로 전체 예산의 87.9%가 정부출연금으로,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지식경제부 등 정부 수탁 프로젝트를 주로 수주받아 수행한다.

하지만 연간 500억원의 재정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하 과기연) 기관평가(2013년도) 결과에서도 “자체수입 목표대비 실적이 87.4%로 5년 이상 목표치에 미치지 못한다”며 “합리적인 예산편성이 필요하다”고 평가됐다. 과기연은 예산절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의학연은 “기초연구를 주로 수행하는 출연연의 특성상 상용화 단계의 성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도 한의학 연구에 대한 정부지원이 의학 등 다른 분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특허 출원 건수(2014년 기준 출원 80, 등록 66) 등은 논외로 두고, 순수 기초 연구인 논문의 성과는 어떨까.

과기연 소속 출연연은 매년 발표한 모든 논문을 홈페이지 등에 게시한다. 그리고 SCI 논문을 포함해 기관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본지는 한의학연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논문 목록(2009~2014)을 토대로 성과를 살펴봤다.

그 결과, 최근 6년간 발표된 SCI(E) 논문은 총 520편으로, 연평균 86.7편이었다. 연도별 연구진 1명당 논문 수를 산출해 보면, 연구에만 전념하는 연구진 1명이 1년에 SCI(E) 0.87편을 발표하고 있다.

인건비 100억원과 경상운영비를 제외한 연구직접비만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한편당 2억7,420만원의 재정이 투입된 셈이다.

억대 예산이 투입된 논문의 질은 어떨까. 과기연의 성과평가 지표 중 하나인 저널의 인용지수(impact factor, 이하 IF)를 보면, 평균 IF는 2.3점이었다. 일반 의과대학에서 발표되는 논문의 인용지수 평균이 2~3점인 것을 생각하면, 외관상으로는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논문의 질이 문제다. IF가 가장 높은 논문은 2013년 Cell Metabolism지(IF 16.747)에 발표된 ‘RANKL을 매개로 하는 파골세포분화 동안 칼슘 신호전달을 조절하는 Tmem64에 대한 연구(Tmem64 Modulates Calcium Signaling during RANKL-Mediated Osteoclast Differentiation)’인데 한의학과는 거리가 먼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 외 논문 중에는 리뷰논문(Review)과 프로토콜(Protocol) 논문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 결과를 본 전문가들은 인건비 외에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은 리뷰논문을 대표적인 연구성과로 내세우는 것은 ‘난센스’라는 반응이다.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고원중 교수는 “체계적 문헌고찰은 재료비가 들어가지 않는 연구이며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연구”라면서 “국내에서 국책연구비 지원을 받을 때도 체계적 문헌고찰로는 연구비를 획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리뷰논문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었지만, 50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는 한의학연이 그에 걸맞은 기초실험연구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다른 연구나 정책 수행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예산대비 성과가 미비하다. 기공, 태극권 등에 대한 연구에 수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보다는 희귀난치성질환의 급여 확대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에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간 500억원 지원, 타당한가?

지금의 한국한의학연구원(이하 한의학연)은 ‘한의학 및 한약의 육성·발전에 관한 사항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써 국민보건향상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1994년 설립돼, 현재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이다. 주요사업은 ▲한의학 과학화 및 원천기술 개발 ▲한의학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공공지원 기능강화로, 이를 위해 매년 정부로부터 수백억원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해마다 지원되는 정부출연금은 16.3%씩 증가해 지난해만 480억원이 투자됐다. 이는 2009년 정부지원액 229억2,400만원에 2배 수준이다.

이 중 112억원이 인건비(연구인건비, 일반인건비)로 쓰였고, 305억원이 연구직접비(주요사업비, 정부수탁, 민간수탁)로 투자됐다. 정부 투자가 늘면서 연구에만 집중하는 연구원 수도 늘었다. 2009년 86명에서 지난해 119명이 됐다.

연구원 1명이 1년에 SCI 논문 0.87편 써

설립 이후 21년간 쌓아온 한의학연의 연구실적은 어떨까. 지난 2011년 6월 ‘한국한의학연구원, 10가지 의문점에 답해야’라는 제하의 커버스토리로 한의학연의 부실연구를 지적한 바 있는 본지는 4년이 지나 다시금 한의학연에게 물었다.

그러나 역시나 한의학연은 공식적으로 연구 성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본지는 한의학연 홈페이지에 공개된 논문 목록과 국가과학기술연구회(前 기초기술연구회, 이하 과기연)의 성과보고서 등을 통해 한의학연 연구 성과를 살펴봤다.

한의학연에 정보공개 요청을 통해 어렵게 논문 수를 확보했지만, 과기연의 보고서는 물론 홈페이지에 공개된 논문과도 차이가 났다. 그 이유에 대해 한의학연 담당자에게 물었지만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해 결국 분석 자료에서 제외하고, 논문 원문을 확인할 수 있는 홈페이지 게재 목록만 보기로 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논문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한의학연 연구진이 제1저자, 교신저자 등 주저자인 것과 공동저자로 참여한 것을 더해 총 1,194편이다. 이중 일반적으로 연구기관의 연구 성과에 반영되는 SCI(E)급 논문은 520편(SCI 214편, SCIE 306편)이다.

일단 한의학연의 논문발표 성과는 양적으로 크게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SCI(E) 논문 수가 43편에 불과했던 2009년에 비해 이듬해 60편으로 늘었고, 2012년에는 120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신 같은 기간 연구진의 수도 늘었다. 2009년 86명에서 2014년에는 119명으로 38.4%가 증가한 것이다. 따라서 연구진 1명이 1년간 발표하는 SCI(E) 논문 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일반 대학 교수와 달리 진료도 강의도 하지 않는 전문 연구자가 1년 동안 평균 0.87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문을 쓰는 데 투입되는 연구비는 더 놀라웠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한의학연의 연구직접비는 지난해 305억2,200만원으로 2009년 162억4,100만원에 비해 87.93%가 늘었다. 6년치를 더하면 총 비용은 1,425억9,600만원이다.

6년간 발표된 논문수가 520편이니까 논문 1편당 평균 2억7,420만원의 재정이 투입된 셈이다. 그나마 매년 논문 수가 늘어서, 1편당 연구비는 2009년의 3억7,770만원에서 2014년에는 2억5,650만원으로 32% 감소했다.

타 연구기관, 예산대비 성과 훨씬 높아

한의학연처럼 과기연 소속인 다른 연구원도 사정은 같을까. 아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더 적은 비용으로 훨씬 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었다.

생명공학연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생명공학연이 발표한 SCI(E) 논문수는 5,601편(SCI 2,393편, SCIE 3,208편)으로 매년 평균 934편씩 논문이 발표됐다. 연구원 수 209명을 기준으로 보면, 1인당 연평균 4.64편씩 논문을 쓴 것이며, 연구직접비 기준 논문 1편에 소요된 예산은 약 8,600만원이다.

기초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정부지원을 받는 이들 기관과 달리 자체 연구예산과 정부연구과제 수주액으로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의과대학들도 성과가 훨씬 좋았다.

연세대 의과대학의 경우에는 2013년 한 해에만 1,426편의 SCI(E) 논문이 발표되어, 한의학연의 연평균 발표 논문보다 16배 이상 많았다. 정부연구과제 수주액을 포함한 총 연구비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1편당 6,300만원의 연구비가 투입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소속 의과대학 교수의 논문 실적을 보면 그 효율성이 더 높다. 지난해 분당서울대병원 소속 교수 126명이 쓴 SCI(E) 논문은 총 840편으로, 1인당 6.67편을 발표했다. 자체연구과제 예산 23억6,500만원과 정부연구과제 수주액 169억3,300만원을 합산해 논문 1편당 투입된 연구비를 계산해 보면 2,297만원에 불과했다.

결국 한의학연의 연구 비효율성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성격의 국책연구기관과 비교해도 그렇고, 연구와 진료를 병행하는 일부 의과대학과 비교해도 그렇다. 쉽게 말해 한의학연은 1편의 논문을 작성하는 데 타 연구기관보다 3~10배의 연구비를 쓰고 있는 것이다.


억대 논문이 체계적 문헌고찰?

그렇다면 편당 수억원의 비용을 들여 발표한 한의학연의 논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논문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과기연 뿐만 아니라 의과대학과 연구기관 등에서 일반적으로 반영하는 저널의 인용지수를 살펴봤다. 논문이 게재된 저널의 IF를 확인해본 결과, SCI(E) 논문 520편의 평균 IF는 2.3점이었다. 구체적으로 SCI 논문의 평균 IF는 2,7점, SCIE는 2.0점이다.

평균치만 보면 그리 나쁘지 않다. 연세의대(IF 2~3), 분당서울대병원(IF 3.0), 생명공학연구원(IF 3.92)보다는 낮지만, 양호한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의학 논문이라고 보기 힘든 논문들이 섞여 있고, 적지 않은 논문들이 학술적 가치가 떨어지는 리뷰논문이거나 프로토콜 논문이기 때문이다. 한의학적 치료의 효과가 없거나 불분명하다는 결론을 도출한 논문도 많다. (본지 2015년 3월 6일자, 제750호 커버스토리 참조)

한의학연 논문 중에서 IF가 가장 높은 저널에 실린 논문은 2013년 Cell Metabolism지(IF 16.747)에 발표된 ‘RANKL을 매개로 하는 파골세포분화 동안 칼슘 신호전달을 조절하는 Tmem64에 대한 연구(Tmem64 Modulates Calcium Signaling during RANKL-Mediated Osteoclast Differentiation)(공동저자, 김태수 한의학연)’에 대한 것으로, 흔히 말하는 한의학, 한약과는 거리가 먼 주제다.

그 외 연도별 IF 상위 논문은 ▲유방암 환자에서 마사지 요법의 효과 리뷰(Massage therapy for breast cancer patients: A systematic review), ANNALS OF ONCOLOGY(IF 6.578, 2011) ▲Zucker 당뇨병성 비만 쥐의 최종 당화 물질 측정을 위한 표면 플라스몬 공명 바이오센서 칩(SPRI)의 신규 사용(Novel application of surface plasmon resonance biosensor chips for measurementof advanced glycation end products in serum of Zucker diabetic fatty rats), BIOSENSORS & BIOELECTRONICS(IF 6.451, 2009) ▲뇌졸중 회복에 뜸의 효과 리뷰(Moxibustion for Stroke Rehabilitation Systematic Review), STROKE(IF 6.018, 2010) ▲알레르기 비염의 침술 효과에 대한 여러 병원, 무작위 대조군 시험(A multicenter, randomized, controlled trial testing the effects of acupuncture on allergic rhinitis), ALLERGY(IF 5.995, 2012) ▲파킨슨병의 심신 운동치료(Mind-body movement therapies for Parkinson’s disease (Protocol), Cochrane Database of Systematic Reviews(IF 5.939, 2014) 등이다.

또한 한의학연의 IF 상위 논문 중에는 리뷰논문(Review)이나 프로토콜 논문 등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연도별로 IF 상위 10편씩 총 60편만 보면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s)을 포함한 리뷰 논문이 17편, 프로토콜이 5편이었다.

이같은 성과에 대해 한의학연은 “기존연구가 잘돼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이 필요한 것이며, 이런 연구에도 수천 만원에서 수백 억원의 예산이 들기도 한다”며 “IF가 낮은 이유는 한의학 연구를 게재할 수 있는 논문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 한방병원 교수는 “한의학연은 한의학 연구의 네트워킹 역할을 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면서 “병원이나 일반 연구기관과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구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그만큼 기존연구에 대한 리뷰를 통해 다른 연구진들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학 한방병원 교수는 “한의학의 특성상 체계적 문헌고찰을 많이 해야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솔직히 한의학연이 비용대비 연구 성과가 저조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26면 인터뷰 기사 참조).

성과는 미흡, 정부 지원은 증가…왜?

이같은 결과를 접한 전문가들은 리뷰논문 자체가 별도의 예산이 거의 투입되지 않는 만큼 연구 성과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병원 교수는 “대표논문들이 주로 메타분석인데 이는 인건비 외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만큼 투자된 연구비에 걸맞은 연구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우리 대학병원의 경우 메타분석 과제의 경우 과제당 천만원씩만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주대병원 김대중 교수도 “상식적으로 연구원이라면 제대로 된 연구를 해야 한다”며 “대부분의 좋은 논문이 리뷰논문이라는 것은 큰 문제점”이라고 꼬집었다.

한의학원의 주부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도 리뷰논문은 연구 성과로 볼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미래부 연구기관지원팀 정유진 사무관은 “SCI 논문건수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서 평가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려고 한다. 체계적 문헌고찰도 논문 실적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 비해 한의학연의 연구 성과가 미흡한데도 예산은 계속 늘고 있다. 또한 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한의학연의 정부출연금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다. 2009년에는 총예산 가운데 정부출연금의 비중이 69%였으나, 2014년에는 그 비중이 87.9%로 늘었다.

이에 대해 한의학연을 관리·감독하는 미래부 관계자는 “연구원 소관 출연기관 25개의 신규 및 기존 사업의 연속성 등을 감안해 복합적으로 예산을 책정하고 있으며, 한의학연처럼 산업계와 연계가 적은 곳은 지원이 많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과제 수탁에 대해서는 “설립 목적 자체가 국가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며 “당장의 수익성이 나지 않아도 장기적인 투자와 육성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 연구를 맡는 것이며, 앞으로는 출연연이 산학협력을 통해 중소기업 육성에도 이바지하도록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정낭비 그만, 비판적 성찰 필요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정부 의존도만 높아지는 한의학연에 대한 예산지원을 재검토하고 타 연구기관에 대한 연구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의협 관계자는 “한의학연에 투자되는 연구비가 과도하다”며 “연도별 내·외부 수탁연구과제를 보면 KIOM 학부생 연구프로그램, 민간요법 발굴·보존 및 DB구축을 통한 지식 자원화, 아마존 유역의 전통민족의학 등이 있는데 이런 연구에까지 정부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다른 연구기관이나 급여화가 필요한 항목 등 우선순위를 따져 필요한 곳에 정부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지원팀 관계자는 “정부 수탁과제를 하나 따기 위해서는 십여 명의 전문팀을 꾸려 수차례 논의와 토론을 거쳐 연구계획서를 만들고 있으며 경쟁률이 높아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 “이에 비해 한의학연과 같은 정부출연기관은 자체적으로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수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우리는 한의학연만큼의 연구지원을 못 받고 있다”면서 “그 예산의 일부라도 우리에게 주면 더 좋은 연구를 하는 데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의학연 관계자는 “정부연구를 수탁받기 위해서는 해당 과제에 대한 연구기획서를 작성하고 전문가 심의를 거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밟는다”면서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 것은 출연연의 특성상 사업화 이전까지의 기초연구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의계 내부에서도 한의학연이 한의학 육성을 위한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예산에 맞는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모 한의대 교수는 “한의학의 연구는 연구 결과를 실어줄 저널이 마땅치 않고, 연구 규모나 기존 연구 자료 등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래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기다린다고만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볼 수는 없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서 그에 맞는 연구를 제대로 했는지 평가해야 정말 잘된 논문이 나올 수 있다”면서 “기획단계에서부터 한약의 임상근거를 구축한다거나 한방의료기기 개발과 관련하여 공학이나 기술특허 전문가들과 연계하는 등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설계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의대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에 얼마의 예산을 썼는지가 아니라 예산에 맞는 연구를 설계하고 그에 맞는 연구를 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평가를 제대로 받을 때 한의학의 발전도 가능하고 일종의 ‘성실실패’도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 인터뷰 한의대 교수가 지켜본 한의학연의 한계

“한의학연의 연구 성과 저조, 이유가 있다”

“최근 카이스트에서 유전자 동의보감 사업을 하겠다며 10년간 1,000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그리고는 2년만에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 지에 ‘군신좌사’의 유용성을 규명하는 논문을 게재했다. 사실 이런 연구는 한의학 내부에서 기획을 했어야 했다.”

본지가 만난 모 한의대 A교수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이러한 연구를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2007년 한의학선도기술개발사업 계획수립과정에도 참여하고 지금도 한의학연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는 A교수는 “솔직히 한의학연이 비용대비 연구 성과가 저조한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세 가지 이유를 지목했다. 첫째는 한정된 한의학 분야, 둘째는 평가 위주의 연구, 셋째는 불분명한 연구목적이다.

먼저, A교수는 한의학이 인문학, 자연과학, 공학, 의학처럼 전 세계적인 학문이 아니라서 기존 연구가 부족하다고 했다. 연구를 하려면 체계적 문헌고찰은 물론 아예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하는 험난한 길을 가야 하는데, 당장의 성과가 나지 않아 이마저도 잘 안된다고 했다.

그는 “한의학은 의학의 방법론처럼 볼륨이 있지도 않고 특정 연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 지원이 있으니 연구는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다보니 가장 손쉽게 문헌을 가지고 연구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A교수는 한의약 논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절반 정도는 실험논문인데, 재료만 한약재일 뿐 방법론은 일반 생물학 연구와 똑같다. 나머지 중 30~40%는 간단한 임상연구다. 예를 들어, 우울증 환자에게 가미귀비탕이 효과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연구 같은 것이다. 그 외 10~15%는 약물부작용 사례보고나 한의학 이론 조문 해석 등으로 비교적 돈이 안 든다.

그는 “정작 필요한 임상연구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한의학은 해외에서 가져올만한 연구데이터가 없다보니 문헌부터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인력도 비용도 많이 들지만 정작 결과물은 시원찮다”고 말했다.

그래서 두 번째 문제인 평가 위주 연구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A교수는 “한의학연 연구 성과를 보면 1~2명의 연구자가 특히 많은 연구 성과를 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연구의 대부분이 문헌연구다. 문헌연구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정부수탁 연구는 연구대로 진행하고 성과로는 (그와 별개로) 문헌 논문을 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다 IF(impact factor)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한의학 임상연구를 한 결과가 IF 1점 저널에 실리는 반면 문헌연구는 5점에 실릴 수 있다면, 임상은 ‘그냥’ 하고, 실적은 문헌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한의학연이 발표한 SCI논문 중 IF 상위 논문에는 체계적 문헌고찰을 포함한 리뷰논문과 프로토콜 논문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A교수는 연구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그 이유는 한의학 연구의 목적 자체가 불분명하거나 추상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의학은 자기 분야에 해당하는 저널이 명확하지 않아서 심사하는 입장에서도 예측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연구비 심사도 엄격하게 하기 곤란해 연구실적도 엄격하게 요구하기 약간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한의학연의 변화를 희망했다. 연간 500억원의 정부예산을 지원받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직은 이르다’며 마냥 기다리라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이 시험을 쳐서 좋은 결과를 받아야 하듯이 제대로 된 연구 설계를 하고 연구를 잘 했는지 전반적으로 평가를 하고 이를 다 공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30억을 쓰든 300억을 쓰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에 걸맞은 연구를 했는지 여부다. 기획했던 대로 제대로 연구하고 그 성과를 공개하면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한들 어느 누가 비판하겠는가. 하지만 지금처럼 돈은 돈대로 쓰고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무엇이라 설명할 것인가. 비판적 자기성찰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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