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중심' 병원을 가다①…서울아산병원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


▲ 서울아산병원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 김형진 기자

[청년의사 신문 정승원]

최근 병원들의 목표나 비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환자중심병원’이다. 이제 병원들이 병상 수를 늘리기보다 만족스러운 서비스 제공을 중시하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병상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도 마찬가지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1월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를 설립하고 5월에 서울대 공학박사 출신인 김재학 소장을 영입했다. 김 소장은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의 목표가 환자중심을 넘어 인간중심 서비스를 디자인하는데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는 물론 직원으로부터 수렴한 환자경험 반영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데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가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인간중심 서비스를 위해

병원계를 관통하는 패러다임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어느 병원이 더 우수한 의료진을 확보하고 더 신속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지의 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어느 병원이 환자에게 더욱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경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김재학 소장은 “과거에 병원들은 급속도로 성장을 해왔다. 서울아산병원도 마찬가지였는데 지난 25년 동안 매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해왔고 이제는 어느 정도 상승세가 둔화된 상태”라며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는 서울아산병원을 환자중심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데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혁신(Innovation)에 디자인(Design)이 더해진 것은 디자인적 사고를 수행하기 위함이다. 기존에는 서비스를 설계할 때 정량적인 접근을 했다면, 앞으로는 디자인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김 소장은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되는 부분”이라며 “병원은 단지 분석적이고 숫자만을 중시해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의 디자인적 사고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는 ‘공감(Empathy)’을 기반으로 한 인간중심의 디자인을 추구한다. 대상을 고객이나 환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정한 것은 환자와 가족은 물론 서울아산병원 내부 구성원들을 위한 서비스 디자인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인간중심의 디자인은 환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병원 내부의 의사, 간호사, 보건직원까지 고려한 것”이라며 “진정한 인간중심의 디자인은 이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디자인된 서비스는 단순히 진료와 치료에만 한정되지 않고 병원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포함한다. 김 소장은 “전면이 바뀌려면 원무 서비스 등 백 오피스(Back Office)도 바뀌어야 한다”며 “서비스 디자인에서 원무과나 주차장에 대한 개선도 함께 이뤄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환자경험 파악하기, ‘체험, 병원 현장’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는 환자경험 서비스 시행까지 4D의 단계를 거친다. Discover(발견), Define(정의), Design(디자인), Deliver(실행)의 단계다. 이 중 Discover는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 서비스를 파악하는 단계다. 김 소장은 “병원 현장에서 직접 체험을 했다. 1주일씩 병동, 응급실 등에서 직접 관찰을 한 것”이라며 “그러한 체험으로 이노베이션에 필요한 주제들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김재학 소장이 직원들과 서비스디자인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김형진 기자

환자와 가족들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도 진행한다. 실제로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는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두 달 이상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여기에 콜센터에 접수된 고객들의 의견을 분석하는 일도 더해진다. 김 소장은 “조사 기간 이전 6개월 동안 접수된 콜을 분석해 고객들이 실제로 어떤 점들을 문의하는지에 대해 들었다”라며 “현장에서 직원의 이야기도 함께 참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수렴된 의견은 단계를 거쳐 High Value, High Service System, High Touch라는 ‘3 High’를 가치로 현실화 된다. 이는 병원에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가치, 시스템, 존중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피드백 과정 역시 중요하다.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는 실행 단계 뒤 다시 디자인한 서비스에 대해 실제로 환자와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평가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에게 이전과 비교해 현장의 반응이 개선됐는지 조사하는 것은 물론이다.

환자가 원하는 것, 직원들도 알고 있다?

‘공감을 기반으로 한 인간중심의 디자인’은 병원의 구성원인 직원들에게도 해당된다. 병원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이들은 환자와 가족, 내원객들이지만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병원의 직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는 직원들과 이노베이션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시행한 ‘프로그램 싱크 빅(Think Big)’이다. 전 영역에서 일하는 직원 각각의 입장에서 ‘고객에게 필요한 혁신’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경영진부터 현장의 실무진까지 전반적으로 이뤄졌고 결국 병원 전체 직원의 생각을 한 데 모을 수 있었다.

재설계된 서비스가 직원들에게 교육될 때, 다시 4가지에 초점을 맞춘다. ▲자부심(Pride) ▲지지(Support) ▲협동(Collaboration)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이다. 직원들 스스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자부심을 갖고, 병원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으며, 서비스가 안착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병원과 직원이 협동하는 것이다.

김 소장은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문제들을 실제로 그들이 접하는 직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실제로 직원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할 때도 서비스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직원들의 의견이 많다는 것.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현장의 직원들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필요한 서비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이러한 의견을 수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가 있고 그에 대한 경영진의 지원이 확실하다는 것도 다는 것도 서울아산병원의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환자에게 위로를 주는 병원을 향해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는 병원 창립자인 故 정주영 명예 이사장이 병원을 세우면서 지향한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김 소장은 “서울아산병원 개원 당시에 ‘좋은 치료를 하는 병원’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위로해주는 병원’을 지향했다”며 “환자중심병원을 지향한 것인데 서울아산병원은 이러한 정신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에는 성장에 중점을 뒀던 부분이 있지만, 앞으로는 보다 환자중심의 서비스와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병원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서울아산병원의 한 축에는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가 있다는 것이다.


▲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 김재학 소장 김형진 기자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가 중시하는 것도 결국 환자경험이 중시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현재는 각 채널을 통해 이노베이션센터가 의견을 수렴하고 현장에 반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앞으로는 병원 전체에서 환자경험을 중시하는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이노베이션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이 결국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가 해야 할 일”이라며 “현재는 각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중심의 이노베이션을 위한 인프라, 시스템,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대규모 투자와 우수한 의료진의 영입으로 개원 25년 만에 국내 최고 병원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그동안의 25년이 최대 규모, 최고의 의료 제공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말 그대로 인간중심의 서비스 제공에 더욱 힘쓰겠다고 한다. 전폭적인 지원으로 최고의 반열에 오른 서울아산병원이 다시 병원 전체의 지원을 업고 인간중심 서비스 제공에서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을지 그 행보가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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