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교수의 옥스퍼드 통신

[청년의사 신문 예병일] 영화 ‘해리 포터’에도 등장한 바 있는 옥스퍼드의 자랑 보들리안 도서관(Bodleian Library)에서 5월 23일부터 10월 27일까지 Magical Books라는 책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도서관은 현재 7개로 구분돼 있으며, 이외에도 38개의 칼리지나 독립된 연구소 등에서도 각자의 도서관을 가진 곳이 있으니 학교 전체를 보면 얼마나 많은 책이 보관돼 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영화에 등장하는 도서관은 본관 2층에 위치한 곳으로 사진촬영이 금지돼있다. 고풍스런 책이 꽂혀 있는 서가는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건드리면 손에는 먼지가 묻을 듯하고, 책을 손상하기라도 하면 인류의 유산이 사라질 듯한 두려움이 함부로 책을 만지지 못하게 한다.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e-book이라는 새로운 정보매체를 탄생하면서 도서관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궁금하다. 필자는 미래에도 책은 반드시 살아남는다고 확신한다. 단말기가 편리해도 손으로 책을 느끼며 읽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예상이 틀린다해도 도서관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백 년 전의 책을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 네 곳에 나눠 보관해 놓았던 조선왕조실록은 한 질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컴퓨터용 파일로 만들어져 있지만 필자는 그 전부터 이 책을 이용한 연구자들이 원본을 볼 수 있는지, 어떻게 다루게 하는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국내외 도서관에서 사서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면 희귀본을 어떻게 보관하는지 물어보곤 했는데 함부로 보지 못한다는 것 외에 뚜렷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2008년 12월, 미국 국립보건연구소에 있는 국립의학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1543년에 발행된 베살리우스의 저서 를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초판을 보여 달라”고 하자 사서는 자랑하듯이 초판을 들고 와서 보여 줬다. “실수로 책을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넘기는 건 안 되지만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속 페이지를 화면으로 볼 수 있다”고 알려주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당시에 본 온라인 책은 손을 화면에 대고 왼쪽으로 넘기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돼 있었다. 사서는 온라인으로 제작하고 싶은 책은 많지만 예산 문제로 전산화하는 속도가 늦다며 아쉬운 표정이었다.

영국 국립도서관(The National Archives)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어둠침침한 방에 희귀본을 모아 놓고 상설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흐, 헨델, 베토벤 등이 직접 그린 악보와 비틀즈가 직접 쓴 가사 등도 전시돼 있었는데 수시로 단체손님이 들어와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대개 관광객들로 보였고, 개인적으로 온 사람들도 대부분은 구경삼아 온 것처럼 보였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매표소(Box Office)가 있다. 처음 갔을 때는 왜 매표소가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도서관에서 수시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도서관이 참으로 다양한 기능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귀본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원본은 함부로 못 보게 하는 일이 이미 전세계적으로 시작됐지만 e-book이 더 많이 발간되면 부피가 큰 책은 보관소로 들어가고 도서관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줄어들 것이다. 대신 도서관은 책은 물론 각종 문화행사를 즐기는 곳으로 바뀔 것이고, 책은 새로운 형태의 정보전달매체로 진화할 것이다.

보들리안 도서관은 전통적인(?) 도서관의 모습이지만 역시 희귀본을 e-book으로 제작함으로써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도서관이 도서문화 보급과 이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역할을 해야 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지속돼 나라 전체 문화수준이 올라갈 것이다. 이를 위해 계속 진화하는 도서관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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