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청년의사 신문 박형욱]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실에서 근무할 때 보건복지부(흔히 ‘부처’라고 표현한다) 공무원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술자리에서 혹은 사석에서 그들로부터 여러 ‘전직’ 복지부 장관에 대한 평을 들을 수 있었다.

복지부 장관은 크게 ‘정치인’ 출신 장관과 ‘관료’ 출신 장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치인’ 출신 장관 중에는 복지부 업무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복지부 업무는 정치적 입지와 관련해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런 장관 밑에서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장관이 업무에 큰 관심이 없어서 담당자가 수립한 정책에 대해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장관 입맛에 맞는 일도 ‘조금’은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유형 장관에 대한 부처 공무원들의 평가는 좋지 않다.

‘관료’ 출신 장관의 특징은 크게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관료 생활을 통해 발을 담궈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은 때를 감지하는 ‘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료 출신 장관 밑에서는 업무가 괴로울 수 있다. 담당자의 취약한 부분을 찾아 쪼고 부리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장관이 복지부 정책에 대한 장기적 전망이나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면 공무원들의 평가 역시 좋지 않다.

전직 장관 중에 가장 평이 좋은 분은 유시민 전 장관이었다. 종합해 보니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정치적으로 힘이 있었다. 장관이 정치적 힘이 있어야 예산을 따 올 수 있고 부처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 둘째, 이해력이 높았다. 자료를 준비해 주면 핵심을 이해하고 업무와 관련해 정확히 말 할 줄 알았다. 셋째, 책임 질 줄 알았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책임지고 정책을 추진했다.

유시민 전 장관은 재주가 많은 분이다. 그는 1985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이하 폭처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는 ‘유지수’라는 가명으로 1988년 MBC 미니시리즈 8부작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란 멜로드라마(조용원, 박영규, 정동환 출연)의 각본도 썼다. 그는 장관 퇴임 후 2008년 경북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을 담당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무상의료’ 정책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무상교육은 필요한 재원에 대한 예측이 용이하다. 공짜라고 해서 학교를 두 번 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는 비용 부담이 없다고 인식되면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다. 따라서 무상의료를 시행하면 의료 이용량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며 이를 감안해 재정 추계를 해야 한다. 무상의료에 가까운 독일 등과 비교해 보면 현재 20만원을 내는 사람은 100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에게 20만원을 내고 현재 급여 수준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100만원을 내고 무상의료를 받을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무상의료에 가깝다고 한 독일은 보험료율이 그렇게 높으면서도(’07년 14.2%, ’11년 15.5%) 감기와 독감증상 치료제, 감기약, 기침 억제제, 거담제, 진통제, 구강 및 인후 치료제(항균제 제외)등 경증 치료에 사용하는 성인용 의약품에는 보험급여를 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재정학자인 풀비니(Pulvini)는 정치가들이 납세자가 부담한 세액보다 더 큰 혜택을 받는다고 느끼게 유도하는 현상을 재정 환상(fiscal illusion)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독재정권일수록 더 강한 재정 환상을 창출한다고 한다. 받는 혜택과 부담하는 비용 변화를 정직하게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발언은 대선 정국에서 기억할 만한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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