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인력 확충 및 안전기기 도입 필요

문제는 ‘돈’ … 보험급여 인정 모색 중


자상사고는 치료비용, 사고로 인한 노동력 손실 등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 가족, 동료가 겪게 되는 정서적 고통, 삶의 질 저하를 가져오고 심할 경우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환자를 위한 적극적인 의료행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내에서 감염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90년대 초반으로 이후 일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감염관리실을 두고 인원을 배치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며, 이후 대한감염관리학회,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 대한감염관리간호사학회 등이 생겨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긴 했지만 정작 이들 감염관리실의 역할은 주로 환자들의 병원감염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으며, 이마저도 아직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특히 이같은 감염관리실의 운영을 위해서는 전담간호사를 둬야 하지만 현재 일부 대형 종합병원만이 그나마 이뤄지고 있을 뿐 중소병원에서는 거의 전무한 상태다. 300병상 이상의 병원에서는 감염관리실을 두고 전담인력을 배치하게 돼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 의무조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병원 내 의료인들의 감염, 즉 역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여전히 개인의 문제일 뿐 병원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병원 내 의료종사자 및 직원들의 자상사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정확한 실태파악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병원에서 개별적으로 발생률 등이 조사되고 있지만 전국적인 통합데이터는 전무한 상태. 하지만 인턴, 레지던트 과정에 있는 의료진과 간호사들의 경우 상당수가 자상사고의 경험이 있다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본지의 고정 코너인 ‘옛날 신문을 읽다’에 93년 전 씨의 이야기가 다시 게재되자 이에 대해 ‘회고의’란 이름으로 인터넷에 댓글을 남긴 한 의사의 말에서도 이같은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이 의사는 댓글에서 “인턴, 레지던트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채혈 및 봉합시 주사바늘에 찔려본다. 물론, 간염, AIDS, 매독, CMV 등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서. 다행이 걸리지 않은 수련의가 많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동료도 본다. 그러나, 그 어떤 수련의와 전공의도 병원당국으로부터 그에 대한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내가 아는 선후배들도 간염에 걸려서, 수련을 포기했으며, 결핵에 걸려서 전공의 내내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나도 조금 다른 경우지만, 전공의 시절, 몹쓸 병에 걸려 수련을 포기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하는 우리 선후배, 동료들에게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보상은 해줘야 한다”라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를 전했다.

대한감염관리간호사학회에서 지난 2003년, 2004년에 1개 종합병원의 59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의료종사자 및 직원들의 1년간 자상사고 노출경험은 무려 36%에 이르고 있으며, 자상사고 노출건수는 1회가 61%로 가장 많았으나 5회 이상인 경우도 무려 7%에 달했다. 문제는 자상사고 후 아예 보고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사람이 60%에 달했다는 점이다.

또한 보고된 자상사고 노출 유형은 주사바늘에 찔린 경우가 72.5%였고, 칼날에 베인 경우가 19%로 그 뒤를 이었다. 노출시 업무행위로는 채혈이 28%로 가장 높았고, 바늘분리 중에 일어난 경우도 21%에 이르렀다. 이밖에 투약, 정리 및 세척에도 10% 이상의 수치를 나타냈다.

자상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직종군은 간호사로 68%였으며, 임상병리사 13%, 의사는 9%였다. 근무경력에 따른 사고발생 비율은 5년 이상이 37%, 1∼3년이 31%, 3∼5년이 16%로 근무경력에 따른 유의한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노출된 감염균의 경우 균이 없었던 경우가 45%였지만 B형 간염의 경우 20.5%에 이르렀으며, 모른다고 응답한 경우도 무려 20%에 해당했다. C형 간염과 매독도 각각 4%에 이르렀고, HIV도 0.5%였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단적인 예라는 측면에서 향후 풀어나가야 할 과제를 알려주고 있다.

자상사고로 인한 감염, 언제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어

아직 국내에서는 자상사고로 인한 대규모 소송은 이뤄진 바 없지만 지금 같은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향후에는 병원 내 의료종사자들의 감염사고로 인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90년대 이후 미국, 일본 등에서 자상사고로 인한 의료종사자들의 감염으로 인해 굵직굵직한 의료관련 소송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의료종사자들의 직무상 감염 시 감염원인에 따른 철저한 분석에 근거해 보상이 이뤄지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지난 99년 오사카에서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근무 중 자상사고로 HCV에 감염되는 사고 이후 소송이 이뤄지면서 직무상 감염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바 있다. 실제 당시 일본의 해당 간호사는 병원을 상대로 3,000만엔의 소송을 걸었으며, 최종 판결 시 오사카 지방병원은 해당 병원에서 7,700만엔을 지불하도록 판결한바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더 이상 병원 내 종사자들의 병원감염 예방대책을 내어놓지 않는다면 적은 비용을 아끼려다 도리어 큰 낭패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이 같은 병원 직무상 의료종사자들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상사고 현황 파악 우선돼야

현재 국내에서는 얼마나 많은 의료종사자들이 혈액 및 체액누출로 인한 사고를 겪고 있는지에 대한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이를 위한 노력도 사실상 지지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는 각 의료기관간 협조 하에 현 문제점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그 발생원인을 분석하여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으로부터 예방노력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각 개별병원별로 진행되고 있는 시스템을 통합해 운영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EPINet(Exposure Prevention Information Network)의 도입이다.

EPINet은 병원 직원의 자상사고와 혈액 및 체액노출사고를 보고/분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의료종사자의 안전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버지니아대학의 Janine Jagger 박사에 의해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이미 미국과 대만, 일본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EPINet은 통계학적 도구로서 혈액 및 체액 누출사고부터 발생자, 발생도구 등의 빈도, 자상사고의 건수, 사고발생의 보고부터 향후 follow up까지 가능하며, 추후 예방대책까지 마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다시 말해 문제발생부터 해결방안까지 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EPINet은 개별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가능하고, 이를 통합하면 전국적인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현재 발생률, 위험요인 등에 대한 데이터가 전무한 국내의 경우 활용가치가 높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PINet은 미국을 비롯해 현재 아시아에서는 대만, 일본, 싱가포르에서 쓰고 있다.

현재 Safety Device 전문개발 및 생산업체인 BD코리아의 후원으로 시범적으로 35개 병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력확충 위한 지원책 절실

따라서 EPINet을 전국으로 확대, 보다 효율적인 운영, 이를 바탕으로 한 예방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최소 300병상 이상 병원의 경우 감염관리실 설치와 전담인력의 배치가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허윤정 보건복지 전문위원은 300병상 이상 병원에만 설치하도록 한 규정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고, 현재 16개 병원에서 설치돼 있는 감시체계를 300병상 이상 병원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결국 문제는 인력과 투자비용이다.

병원의 입장에서는 이같은 투자에 대해 여전히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데다 기존 인력조차 EPINet 도입에는 찬성하지만 자기가 맡기는 싫어하는 기색이다.

현재 감염관리실이 설치돼 있는 병원의 경우 이를 위해 배치된 인력은 1명 정도. 병원의 감염관리는 거대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적은 인원이 담당하다 보니 오히려 EPINet의 도입은 가뜩이나 과다한 업무에 짐을 더 실어주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원확충은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

하지만 문제는 결국 ‘비용’이다. 현재 감염관리는 전적으로 병원장의 의지에 결정나는 사안으로, 현재 감염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은 수익 창출을 위한 투자가 아닌 단순 비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갈수록 병원경영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병원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이득이 없는 분야에 투자하기란 어려운 것인 현실적인 고민이다.

대한감염관리간호사학회 한 관계자는 “병원에서 감염관리실 사람들에게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다”며 “이는 병원의 감염관리실이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창출 부서가 아닌 비용이 투여되는 부서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현재 감염관리실의 현실을 언급했다.

따라서 일부 감염관리 전문가들은 감염관리에 대한 수가를 인정해 달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안전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인정해 주고, 이를 보험에서 커버해 달라는 것이다. 이는 감염 이후 산재보험 등에서 부담해야 하는 금액보다 예방적 차원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싸고, 효율적이라는 측면에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추후 조사는 잘하고 있는 편이지만 예방 차원의 접근이 없는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정부차원에서의 병원감염관리를 병원평가에 포함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병원감염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는 병원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안전기기들로 변화 모색해야

자상사고의 주범이 되는 기구는 시린지, 봉합바늘, 나비바늘, 카테터, 채혈바늘 등으로, 최근 들어서는 안전기기가 속속 출시되고 있어, 자상사고 예방을 위해 적극적인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적극 도입이 이뤄지고 있고, 도입 이후 자상사고가 대폭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안전기기의 도입이 실질적인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지난 93년 질병관리센터는 혈액 및 체액들의 노출로부터 보건의료산업 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예방책’을 마련했으며, OSHA(Occupation Safety & Health Administration)에서는 91년 혈액유래 병원균들의 기준을 마련하는 등 이미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지난 2000년 11월 ‘주사침 안전 및 예방법안(Needle Safety and Prevention Act)’이 통과됐다. 이로 인해 의료기관 내에서 안전 주사바늘을 포함하여 안전의료기구를 사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CDC(질병관리센터)와 민간 연구기관 등을 통해 자상사고 발생빈도와 위험요인 등을 표준화된 도구로 조사하고 통계자료로 발표하고 있다. 이는 자상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철저히 예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같은 조치 이후 자상사고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2000년 이후에도 많은 병원들이 안전기기를 사용하지 않자 OSHA는 사후관리를 강화해 이를 지키지 않는 병원에 대해 벌금을 7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또한 자상사고 노출 감소계획이 없다는 이유로 2,200달러의 벌금을, 바늘 폐기통이 꽉 찰 때까지 치우지 않았다고 해서 5,000 달러의 추가적인 벌금을 부과하는 등 적극적인 사후관리에 나서고 있다.

또한 대만, 일본 등에서는 이미 4∼5년 전부터 EPINet 를 사용해 의료진의 체액 및 혈액매개 감염과 관련된 자상 및 노출사고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안전기구의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등 병원의료진의 감염방지에 대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안전기기로의 전환은 자상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대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비용’. 현재 출시되고 있는 안전기기들은 기존 주사기나 카테터에 비해 10배 이상 비싼 것들이 많아, 병원의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전반적으로 감염관리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안전기기의 강제적 도입은 사실상 힘든 일이다.

따라서 안전기기에 대한 보험급여 여부가 절실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안전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병원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로, 삼성의료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일부 병원에서는 직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안전기기를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지난 2004년 안전기기에 대해 새로운 보험급여 적용기준을 마련, 안전기기를 사용하는 병원에서 대해서는 차등수가 적용하고 있어, 국내에도 이같은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반가운 소식 중의 하나는 최근 열린우리당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이 고위정책회의에서 병원감염에 대한 법적 제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며, ‘주사바늘은 감염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병원감염 관리를 위한 종합대책 수립에 앞서 안전주사기를 급여화하고 우선적으로 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 사용을 의무화할 계획이라고 밝힌 점이다.

또한 열린우리당 허윤정 보건복지 전문위원도 ‘감염 종합대책 가운데 가벼운 부분부터 먼저 시작하겠다는 의미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이라며 복지부와 함께 주사기로 인한 감염실태와 수요조사를 벌인 후 적정한 보험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혀, 안전기기의 사용이 머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

곽상희 기자 opensky@fromdoc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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