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별학교 교장인 명지병원 정신과 김현수 교수
소년교도소 근무 경험이 '별학교'로…청소년·청년 지원
신경다양성·경계선 청년 취업 플랫폼으로 거듭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경계성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변호사 우영우의 이야기를 통해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극 중 인물들은 우영우의 ‘다름’을 그 자체로 인정한가.

이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지적장애, ADHD, 학습장애, 조현병 등 여러 신경발달장애를 ‘결함’이 아닌 ‘다름’으로 보려는 개념이 바로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다.

신경다양성 개념은 이들을 사회 일원으로 포함시키려는 움직임도 포함한다. 미국 NGO인 ‘disability: IN’은 ‘장애인’을 사회 ‘안’에 함께 살게 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정부·기업을 상대로 장애인을 고용하라고 요구하며 기업을 상대로 고용 컨설팅을 제공한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그런 단체나 움직임이 거의 없다. 이에 코로나19 이후 이어지는 ‘청년 취업 빙하기’에서 신경다양성·경계선 청년들의 설 곳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는 이러한 신경다양성·경계선 청년들의 취업 위기에 주목했다. 그는 지난 2002년부터 신경다양성·경계선 청소년·청년을 위한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프레네스쿨 별)’, 일명 ‘별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다. 사단법인 '별의 친구들'이 운영하는 사업 중 하나다.

청소년·청년 대안학교인 '별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는 별학교를 진로와 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청년의사).
청소년·청년 대안학교인 '별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는 별학교를 진로와 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청년의사).

소년 교도소에서 시작된 '별학교'…"아이들 성장하는 모습에 보람"

김 교수가 ‘별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지난 1992년이다. 그는 당시 공중보건의사로 소년 교도소에서 근무하면서 ‘배움’과 ‘치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배움이 중단된 아이들 중 일부가 정서적 어려움이나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난 2001년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개원한 후 2002년 병원 건너편 건물에 자리가 나자 경계선·신경다양성 청소년을 위한 ‘배움’과 ‘치유’, ‘복지’를 지원하는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을 세웠다. 지난 2010년에는 청년을 위한 '청년행복학교 별'도 문을 열었다. 현재는 두 곳이 통합됐다. 별학교에는 현재 총 60명이 다니고 있으며, 그 중 40명은 청년, 20명은 청소년이다.

김 교수는 "재정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대안학교에 대한 편견으로 지역 주민의 입주 반대 시위를 마주할 때 마음이 아팠다"며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이 주도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거나 3~4년 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던 친구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청소년부터 청년까지 다양한 활동 제공…'크루' 제도로 내부 취업도

성장학교 별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치유·복지를 지원하는 동시에 진로 교육을 진행하고, 청년행복학교 별에선 교육과 함께 청년 취업 활동을 지원한다.

청년들은 '크루(Crew)'로 불리며 쿠키팀, 카페팀, 책방팀, 행정팀에 배치된다. 이후 숙련도에 따라 크루에서 '캡틴 크루', '크루 리더', '예비 가디언(인턴)', '가디언'으로 승급한다. 가디언은 별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채용한 청년들로, 현재 카페팀 4명, 쿠키팀 2명이 일하고 있다. 예비 가디언은 사기업의 인턴 같은 개념으로 소정의 월급을 받으며 일을 배운다.

김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만큼 학생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는 상담 방법을 도입하거나 정신의학에서 사용되는 프로그램, 재활치료를 도입하고 있다”며 “'치료'한다기보다는 '치유'하기 위한 요소를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학교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온라인으로 미팅을 해보거나 교육하는 것도 경험 삼아 해보도록 하고 있다”며 “아직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조금 더 인원이 늘어나면 외부 취업자들의 자조 모임도 구성해 보고 싶다”고 했다.

'증상'을 '특징'으로 발굴해 취업으로 이어주는 새로운 플랫폼

별학교는 5월 중순 이사가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신경다양성·경계선 청년과 청소년의 진로와 취업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에 재단 이름도 기존 ‘청소년과 가족의 좋은 친구들’에서 사단법인 ‘별의 친구들’로 바꿨다. 청년층까지 포용해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별학교가 변화를 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이후 부쩍 늘어난 청년들의 입학 문의 때문이다. 청소년 대안학교로 시작한 별학교지만 이젠 청소년 20명, 청년이 40명으로 청년 비중이 커졌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마땅한 지원제도나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없는 실정이다.

김 교수는 “청소년들이 갈 곳은 늘었다. 반면 장애는 경미한데 취업하기에 사회적·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갖고 있는 청년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며 “청년들의 입학 문의가 늘어난 것을 보며 청년층에 큰 위기가 온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계선인들이 많은데, 사회적 기회 자체가 제공되지 않는다”며 “경계선인들은 정상 그룹에서는 장애라고 하고, 장애그룹에선 장애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다. 있을 자리가 사라지는 현실”이라고 했다.

별학교 학생들은 변경된 재단 이름인 '별의친구들' 로고를 직접 디자인하고 이에 대한 투표를 받고 있다(왼쪽). 벽에는 새로운 사옥에 대한 소망을 적어둔 종이들을 걸어두었다(오른쪽).
별학교 학생들은 변경된 재단 이름인 '별의친구들' 로고를 직접 디자인하고 이에 대한 투표를 받고 있다(왼쪽). 벽에는 새로운 사옥에 대한 소망을 적어둔 종이들을 걸어두었다(오른쪽).

별학교가 기획하는 새로운 플랫폼은 신경다양성·경계선 청년들과 17세부터 24세까지의 청소년들이 사회 활동에 참여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을 기업에 맞춰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증상'을 '특징'으로 발굴해 기업이 적합한 포지션으로 고용하도록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예전에는 장애인을 ‘disabled’라고 했지만, 이제는 ‘differently abled’라는 개념을 쓴다. '다른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라며 “신경다양성·경계선인들을 바꾸지 말고 증상을 특징으로 이해한다면 이에 맞는 직군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기에 우리가 나서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고용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기업 컨설팅을 통해 이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방법, 사내 갈등 대처 방안 등을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관련 NGO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다양한 고용 사례와 함께 논문도 출간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들을 고용하더라도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이들이 사내에서 갈등 상황에 마주했을 때의 해결 방법, 같은 팀 직원이나 상사에게 필요한 교육 등을 우리가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관련 NGO들이 신경다양성·경계인에 대한 면접 방법, 고용 유지 방안, 이들의 장점을 파악하는 법 등 다양한 사례를 발표했다”며 “MS, HP, Dell 등 해외 IT 기업의 고용 사례도 있다. 국내 대기업부터 다양성과 포용을 실천하는 행보를 보였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 10~15%가 경계선인…사회적 비용 줄이려면 취업 지원해야"

별학교에서 운영하는 카페 '아자라마'. 카페팀에서 정식 고용한 가디언 4명이 바리스타로 근무 중이다(ⓒ청년의사).
별학교에서 운영하는 카페 '아자라마'. 별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고용한 가디언 4명이 바리스타로 근무 중이다(ⓒ청년의사).

그렇다면 왜 신경다양성·경계선인에 대한 취업 지원이 중요한 걸까. 김 교수는 이들이 사회에 참여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언급했다.

신경다양성 그룹 중 하나인 경계선 지능인은 전체 인구의 10~15%로 추정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서울시에 거주하는 경계선 지능인의 수는 132만명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청년층이 사회에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가족이 감내해야 할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서양에서는 전체인구의 10~15% 정도가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하는데, 이중 취업을 못 하는 청년이 절반이라고 치더라도 7.5%"라며 "청년의 7.5%가 사회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국가적·사회적으로 큰 위기”라고 했다.

이어 “지난 20년 동안 별학교를 운영하며 진로 교육을 했는데, 졸업생들이 기반을 잡고 일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며 “그 부담을 이들의 가족에게 전가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공유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 보금자리에서 청소년·청년과 함께 할 10년 기대"

김 교수는 플랫폼을 구축하려면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경다양성·경계선인들의 질환이나 증상을 특징으로 발굴하고 이를 취업까지 이어지게 하려면 의사·심리학자부터 인사 관리 전문가까지 다양한 분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김 교수는 “신경다양성·경계선 청년과 기업을 매칭시키는 데 정신과 의사들이 꼭 필요하다. 이들의 증상을 특징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도 취업 후 스트레스 조절 등에 협력할 수 있다“며 “이들을 위한 취업 전문가, 일반 기업의 인사담당자 등이 협업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별학교가 새로운 치유학교·센터의 모델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위한 후원도 진행되는 만큼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후원은 오는 5월 17일까지이며, 577-91000-311905(하나은행: (사)청소년과가족의좋은친구들)로 하면 된다. 정기후원도 가능하다.

김 교수는 “사회 변화 속에서 새로운 치유학교·센터의 모델과 동시에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며 “새로운 학교에서의 새로운 10년을 기대한다. 특히 청년과 청소년들이 취업과 진로,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도록 도울 생각에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어 “이번 후원 과정에서 많은 분이 성원해줘서 감사하다. 고마움 마음과 함께 어깨가 무겁다"며 "좋은 비전과 모델을 만들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삶의 자리와 지도를 작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별학교는 현재 신사옥 이전을 위한 후원을 받고 있다.
별학교는 현재 신사옥 이전을 위한 후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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