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당사자들 '납작하지 않은 섭식장애' 외치다

지난 2월 27일 서울 소재 독립서점에서 열렸던 섭식장애 인식주간 네 번째 세션 '사나운 애착과 여성의 수치심' 행사 진행 모습이다(ⓒ청년의사).
지난 2월 27일 서울 소재 독립서점에서 열렸던 섭식장애 인식주간 네 번째 세션 '사나운 애착과 여성의 수치심' 행사 진행 모습이다(ⓒ청년의사).

“섭식장애라는 게 사실은 되게 복합적이죠. 집안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았고 굉장히 심한 학교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이기도 하고, 성격도 소심했어요. 제가 만약에 죽어서 역사가가 제 책을 쓴다면 ‘이 사람은 우울증 안 올 수 없었겠네’, ‘섭식장애 안 올 수 없었겠네’ 그럴 것 같아요.”

섭식장애로 5년째 치료 중인 뮤지션 바바라가 '의외의 장소'에서 꺼낸 말이다. 그는 지난달 26일 서울 소재 한 독립서점에서 백은선 시인과 함께 섭식장애를 이야기했다. 20여명의 청중도 있었지만 그들은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웃음과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청중들은 숨죽여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혔다.

섭식장애 경험자들이 모여 설립한 단체 '잠수함 토끼 콜렉티브'와 인제대 섭식장애건강연구소가 마련한 자리였다. 이들은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2일까지 7일 동안 서울 소재 독립서점과 치료센터에서 국내 최초로 섭식장애 인식 주간 행사를 진행했다.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 분야 연구자, 관련 도서 출판사 편집자, 의사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였다.

섭식장애에는 성장 과정, 사회적 배경, 유전적 소인 등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에서 섭식장애는 다이어트 강박에 빠진 사람들이 의지력 부족 때문에 음식을 참지 못한 후 폭식, 구토 등을 반복하는 질병으로만 여겨졌다. 이번 행사 주최 측은 새로운 시각으로 섭식장애 환자의 식이 문제를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경험자, 연구자, 치료자 입장에서 섭식장애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섭식장애 인식 주간 행사를 마련했다고 했다.

섭식장애 인식주간 포스터(사진 제공: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인스타그램)
섭식장애 인식주간 포스터(사진 제공: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인스타그램)

인식 주간 7일 동안 섭식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세션이 진행됐다.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 도움됐던 시도는 무엇인지 등 실질적인 부분을 이야기했다.

섭식장애 식사 치료 전문가는 식사 방식으로 심리적인 안정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간식을 시도하는 법, 점진적인 일반식 노출을 하는 법을 강의했다. 섭식장애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웹 플랫폼을 통해 나레이션과 영상, 회복 멘토/의료진의 지지, 워크북을 제공받고 섭식장애를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인제대 섭식장애 정신건강연구소장인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김율리 교수는 국내 최초 섭식장애 인식 주간 행사가 개최된 것에 감개무량하다며 “현재 우리나라의 열악한 치료환경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두고 개선과 변화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한 명 한 명은 약한 존재이지만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면 이 질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섭식장애의 중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결집하여 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