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보건소 제출 운영지침 수정안 파문
야간·주말 진료 '응급' 기준 삭제…"민원 해결"
"정부 문건으로 '공보의 노예' 공식화 시도"

여수시보건소가 최근 보건복지부에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 개선안'에는 야간과 주말 진료 기준에서 '응급'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청년의사).
여수시보건소가 최근 보건복지부에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 개선안'에는 야간과 주말 진료 기준에서 '응급'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청년의사).

일부 지자체가 도서지역에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 일명 '섬보의'에게 응급 여부를 가리지 않고 '7일 24시간' 진료를 요구하는 운영지침 개정안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공보의들은 정부 지침으로 공보의를 '노예화'하려는 시도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문제가 된 수정안은 여수시보건소가 최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 개선안' 중 하나다.

이 문건에 따르면 여수시보건소는 기존에 '야간과 주말 응급환자 진료'를 수행한다는 기준에서 '응급'이라는 단어를 삭제했다. 보건지소가 도서지역 유일한 의료기관인 만큼 "주민들이 편하게 진료받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지금은 공보의들이 "응급환자가 아니라면서 야간과 주말 진료를 거부해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도 했다.

여수시보건소가 최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 수정안 일부 내용. 야간과 주말 진료에서 '응급'이라는 기준을 삭제했다.
여수시보건소가 최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 수정안 일부 내용. 야간과 주말 진료에서 '응급'이라는 기준을 삭제했다.

이같은 내용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자 공보의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경북 지역 등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수정안을 준비했다는 제보가 들어오자 "지자체들이 공보의를 노예로 삼으려 한다"는 격앙된 반응이 쏟아졌다. 당장 가용인력을 착취하는 형식으로 제도와 정책을 통한 의료자원 문제 해소를 외면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극단적인 의료자원 부족 속에 섬보의들의 야간과 주말 일반환자 진료는 음성적이지만 만성적으로 이뤄졌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지난해 12월 대한공공의학회지에 공개한 '2022 도서지역(비연륙도) 근무 공중보건의사에 대한 근무환경 실태' 연구에 따르면 도서 지역 보건지소 등에 근무하는 공보의 대부분이 응급의료체계 유지라는 명목으로 24시간 휴식 없는 근무를 요구받고 있다. 365일 상시 대기 근무를 소화하며 지자체 '민원'인 일반환자 야간·주말 진료까지 담당하는 형국이었다.

이 수정안대로면 공보의들은 이제 지자체의 암묵적 요구가 아닌 정부 공식 지침으로 야간과 주말 구분 없이 일반 환자 진료를 수행해야 한다.

대공협 신정환 회장은 20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지자체가 공보의 노예화를 공식화하겠다는 뜻이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대공협 차원에서 이번 수정안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이전에도 비슷한 요구가 음성적으로 이뤄졌다. 처음에는 밤에 의원이 없으니 어떡하느냐며 환자를 보낸다. 그렇게 점점 요구 수위가 높아지면 이제 7일간 24시간 근무하며 모든 환자를 보게 만든다. 공보의를 동등한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본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요구"라면서 "결국 공보의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일갈했다.

신 회장은 "(이번 수정안은) 그동안 암묵적으로 섬보의에게 가하던 노예적 요구를 이제 양지에서 당당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내용을 정부 문건으로 명문화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의사에 대한 일부 지자체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면서 "용납할 수도 없고 결코 실현돼서도 안 된다. 대공협은 지자체의 이런 시도를 강력히 저지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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