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기동 WHO 서태평양지부 국장
‘양날의 검’ 디지털헬스…”제도 꼬여 있는 한국“

(이미지출처: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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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헬스는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디지털 기술 개발과 사용에 관련된 지식, 실행분야로 e-health 개념을 확장해 디지털 소비자와 더 넓은 범위의 스마트 기기와 이에 연결된 장비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공학 등이 포함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디지털 헬스’다(2021년). 다양한 영역을 포함하는 디지털 헬스의 핵심은 건강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기술과 여기서 얻어진 데이터를 처리해 건강관리를 유용하게 할 수 있는 기술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 더해 WHO가 한 가지 더 강조하는 부분은 ‘사람 중심 디지털 헬스’다. 디지털 기술에만 집중해 잘못된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면 오히려 의료 접근성을 저해하고 역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의료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WHO가 관심 갖는 이유다.

WHO 디지털 헬스 전략의 중심에 서태평양지부 데이터·전략·혁신 담당 박기동 국장이 있다. 의사 출신인 박 국장은 보건복지부 공무원으로 12년을 일했다. 지난 2006년부터 3년간 복지부 공무원 신분으로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에서 파견근무를 하며 팬데믹 인플루엔자 프로그램에서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이후 지난 2009년 7월부터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소에서 국가 지원 전략을 짜는 일을 지속해 왔다. 박 국장은 방역 전문가로 베트남의 코로나19 조기 진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지난해 5월부터는 디지털 기술로 의료 불평등을 줄이는 전략을 짜고 지원하고 있다.

WHO 서태평양지부 데이터·전략·혁신 담당 박기동 국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디지털 기술도 잘못 확산되고 잘못 프로그래밍 되면 오히려 의료 불평등은 더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청년의사).
WHO 서태평양지부 데이터·전략·혁신 담당 박기동 국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디지털 기술도 잘못 확산되고 잘못 프로그래밍 되면 오히려 의료 불평등은 더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청년의사).

- WHO 서태평양지부에서 데이터·전략·혁신을 담당하고 있다. WHO에서 디지털 헬스에 관심 갖는 이유가 있나.

WHO는 지난 2020년 디지털 헬스 글로벌 전략을 만들었고 서태평양지부에서는 1년 앞서 2019년부터 ‘e-health’라는 말을 썼다. 목표는 명확했다. e-health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건강 서비스 질을 높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는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국가 전체 아젠다에서 헬스가 뒤처지는 요소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이야기 하고 다닌다.

- 디지털 헬스를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했다.

디지털 기술은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문제를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 디지털 뱅킹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노인들은 이용이 어렵다. 은행들은 지점을 줄이고 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수수료를 더 내게 하니 디지털 뱅킹 확산으로 노인들의 역차별은 더 심화됐다. 디지털 기술도 잘못 확산되고 잘못 프로그래밍 되면 오히려 의료 불평등은 더 심화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IT 중심 디지털 헬스가 아닌 ‘사람 중심 디지털 헬스’로 가야 한다.

- WHO가 말하는 사람 중심 디지털 헬스는 어떤 것인가.

몽골은 땅이 굉장히 넓다. 대도시인 울라바토르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살고 나머지는 흩어져 있다. 어떤 지역은 간호사를 만나려면 5시간을 가야 하고 의사를 만나려면 수일이 걸린다.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WHO의 방향이다. 의료인을 보기 위해 5시간 넘게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모바일 헬스가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태평양 작은 섬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일일이 모든 섬에 의료기관을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 받게 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모바일 헬스가 답이 될 수도 있고 다른 게 답이라면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다.

- WHO 서태평양지부 데이터·전략·혁신 담당 수장이다.

한국 사람으로 디지털 헬스 담당자로 발탁한 이유 중 하나가 한국이 IT 부분에서 발전을 했고 다른 나라를 도와준 경험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의 리소스를 이용해 다른 개발도상국 의료 서비스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접근법으로 디지털 헬스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모든 걸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건의료 분야도 디지털을 빼고는 의료 시스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미래 의료 시스템을 설계하는데 제대로 된 디지털 중심의 헬스케어를 구축하는 일은 한국은 물론 다른 고소득 국가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한국 의료기관들은 정보화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유호환이 어렵다는 점이다. A대학병원 자료를 B대학병원으로 보내면 읽을 수는 있겠지만 전산시스템에 직접 집어 넣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 것들이 한국의 그늘이다. 디지털 기술이나 노하우, IT 인프라 구조는 굉장히 발달해 있지만 제도적으로 꼬여 있어 원격의료까지 활성화는 안 되고 있다. 사회가 디지털화 되고 있는 환경에서 의료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WHO가 이런 것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 의료 분야의 디지털 전환이 사람 중심으로 이뤄지기 위해 필요한 선결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회는 이미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의료의 디지털 전환은 갈 수밖에 없는 방향이다. 어떻게 하면 부정적 요소는 낮추고 긍정적 요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을 하지 않고는 남아있을 수 없다. 코로나19로 디지털리제이션이 보편적 사회 변화로 앞당겨졌다. 이를 의료체계 안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문제다.

- 오래전이지만 복지부를 그만두고 후회는 없었나? 의사로 WHO에서 일 하게 된 배경도 궁금하다.

후회는 없다(웃음).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환자 1명에게 최선을 다하는 임상의가 되지 않기로 결정하며 의료관리학과 예방의학을 전공했고, 정책이나 프로그래머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들을 해왔다. 한 나라의 공무원으로 일 할 때는 그 나라에 바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보건정책을 만들 수 있었지만 WHO에서는 그 범위가 넓어지니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하다.

디지털 헬스 분야를 맡고 있기 때문에 성과를 내고 싶다. 즉, 사회가 디지털화 되는 일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의료 분야가 순기능적으로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미래 의료 시스템을 설계하고, 또 받아들일 수 있는 일에 기여를 하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중심의 디지털 헬스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의료는 성공했다고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잘 하고 있는 것들은 계속 잘 해나가고 잘 못하고 있는 부분들은 보완해 나가는데 협력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집중하고 여기서부터 출발하는데 머리를 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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