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배 교수 "'자살할 권리'에 대한 논의부터" 지적
자살 '가담'한 의사 형사 처벌 막을 법적 근거도 모호

(사진출처: 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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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법체계에서 의사조력존엄사 도입 논의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실상 의사 조력으로 환자가 '자살'하는데 이를 실행할 환자의 권리나 이를 돕는 의사를 보호할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단국대 법학과 이석배 교수는 최근 한국의료법학회지에 '존엄하게 죽을 권리와 의사조력자살'이라는 주제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 개정안(의사조력존엄사법)'이 불러온 의사조력존엄사 논란을 검토하며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의사조력자살은 직접적으로 자살할 권리를 인정해야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환자의 자기결정권에는 자살할 권리가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연명의료를 거부하면서 발생하는 반사효과이지 (별개로 존재하는) 법적 권리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촉탁·승낙 살인죄와 자살관여죄를 처벌하는 현행 법체계에서는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자살은 법적으로 개입하거나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자살에 관여하면 처벌받는다. 의사조력자살에 '가담'한 의사도 적용된다.

의사가 환자의 자살에 관여하면 촉탁·승낙 살인죄와 자살관여죄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의사의 약물 처방에 따라 환자가 주도적으로 죽음을 실행하면 의사는 자살교사와 방조죄를 받는다. 말기환자의 촉탁을 받은 의료진이 연명의료 중단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면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죄에 해당할 수 있다. 조력존엄사법안은 자살방조죄 적용을 배제하도록 규정했지만 불충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사조력자살 예시로 자주 언급되는 스위스는 한국과 달리 원칙적으로 자살관여죄를 처벌하지 않는다. 교사와 방조는 주범자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전제로 성립하는데 '주범자'인 자살자 본인을 자살했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으므로 그 공범인 교사자나 방조자도 처벌할 수 없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독일도 자살관여죄를 처벌하지 않다가 최근 자살을 '상업적으로 지원'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처벌하는 방안을 신설했다.

이 교수는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자살이 가능한 이유는 특별법이 존재해서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형법에서 자살관여죄를 불가벌로 보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동기로 관여한 경우에만 처벌한다"면서 "반면 우리는 형법에서 자살관여죄를 예외 없이 처벌한다. 따라서 (의사조력자살의 예시로) 스위스나 독일을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환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의료행위를 환자가 거부하고 의사는 이를 존중하는 게 핵심이다. 말기환자의 치료거부권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법제에서 의사조력자살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라면서 "임종환자가 아니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연명)의료 거부권을 인정하는 환경을 만든 것에서부터 새로운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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