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참가기업의 15%가 디지털 헬스 분야
커프 없는 혈압측정기, 동맥혈 채취 돕는 팔찌 등 눈길

[라스베이거스=민경중 특파원]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3’이 8일(현지시간)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동안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과 결합하며 전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CES 주관사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 CTA)가 나눈 분야별 카테고리에서 디지털 헬스 분야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466곳으로 전체 참가기업의 15%를 차지할 정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기업들의 관심사가 개인의 건강과 노화 방지, 생명 연장에 관한 분야로 확산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청년의사가 ‘CES 2023’에서 주목한 디지털 헬스 분야 강소 기업들을 소개한다.

손가락 끝을 기계에 대면 혈압을 측정해주는 발렌셀(Valencell).
손가락 끝을 기계에 대면 혈압을 측정해주는 발렌셀(Valencell).

발렌셀(Valencell)에서 출품한 손가락 끝을 기계에 대기만 하면 혈압을 측정해주는 제품이 눈길을 끌었다. 특허 받은 생체 인식 센서 기술과 딥러닝을 활용해 팔목에 두르는 커프 없이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제품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

발렌셀은 삼성전자, 수운토, Bose 및 Jarba 등의 제품에 센서를 공급하는 회사로 디지털 의료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으며, 사장 겸 공동 설립자인 스티븐 르뵈프(Steven LeBoeuf)는 100개 이상의 웨어러블 바이오메디컬 센서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다.

펄스 옥시메트리처럼 생긴 작은 장치가 PPG(Pulse Plethysmograph) 데이터 세트를 분석하여 혈압 패턴을 측정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장치에 연결되면 앱은 모든 과거 판독치를 기록하고 시간 경과에 따른 추세를 그래프로 표시할 수 있어 고혈압 관리를 포함하여 사용자들에게 식단과 운동 계획까지 제안한다,

2021년 처음 제품 개발 계획을 발표했던 발렌셀의 혈압측정기는 올해 CES에서 처음 완제품을 선보였는데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기다리고 있고 올해 말쯤이면 미국 전역에서 처방전 없이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예상 소비자 가격은 99달러.

프랑스 스타트업인 아르테리야(Arterya)가 출시한 블러드업(Blood'Up)은 팔찌 형태로 착용해 동맥혈 채취를 도와준다(ⓒ청년의사).
프랑스 스타트업인 아르테리야(Arterya)가 출시한 블러드업(Blood'Up)은 팔찌 형태로 착용해 동맥혈 채취를 도와준다(ⓒ청년의사).

프랑스 스타트업인 아르테리야(Arterya)가 출시한 블러드업(Blood'Up)도 의료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동맥혈 가스분석을 할 때 혈액 채취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검사와 관련된 비용이나 시간도 줄이는 장치다.

동맥혈가스분석은 동맥에서 혈액을 뽑아 분석하는 혈액검사 방법 중의 하나로 혈액의 pH, 이산화탄소, 산소 등의 농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주로 손목 안쪽의 요골동맥을 통해 동맥혈을 채취하며, 팔꿈치의 상완동맥이나 서혜부의 대퇴동맥을 통해서도 채혈할 수 있는데, 기존의 방법은 환자들의 고통과 의료진의 스트레스가 컸다.

아르테리야측은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평균 2초에 한 번씩 동맥혈가스 검사가 시행되고 있으며 연간 1,200만 명의 환자들이 이 검사를 받고 있지만 동맥혈 채취 실패율은 세계적으로 30%에 이를 정도로 높다면서, 환자의 고통과 병원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제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팔찌 형태의 이 제품은 조명을 활용해 표적 동맥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어고(EARGO)는 배터리 교체가 필요 없는 소형 보형기를 출시했다. 
이어고(EARGO)는 배터리 교체가 필요 없는 소형 보형기를 출시했다.

이어테크(Eartech)라고 불리는 보청기 대안 제품들도 관심을 끌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청기는 엄청난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나, 대부분 가격이 매우 비싸서 가뜩이나 은퇴 후 재정적 여유가 없는 노년층 입장에서는 구매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난청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흔한 만성 신체 질환이고 여러 가지 부정적인 사회적, 기능적 여파가 따른다. Archives of Internal Medicine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청력을 상실한 50세 이상 성인의 80% 이상이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고 있는데, 재정적인 이유가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고급 보청기의 가격은 1만 달러를 넘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보청기들이 더 보급되어야 한다’고 발표할 정도다.

이어고(EARGO)사는 피팅 작업이 없고 배터리 교체가 필요 없으며 귀에 쏙 들어갈 정도로 소형이라 착용감도 좋은 보청기를 CES 2023에서 선보였다. 최근 FDA 승인까지 받은 보청기는 병원 예약 없이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가격은 1,000 달러에서 2,000 달러로 형성되어 있다.

심지어 99달러 보청기도 등장했다. 무선 이어폰 제조회사인 제이랩(JLab)이 초저가 보청기 이어버즈(Earbuds)를 출품한 것. OTC 보청기(추정 소매가 99달러)와 자가 장착형 OTC 보청기(소매가격 미정)를 판매할 예정인 이 회사는 저렴한 가격으로 모든 연령용 보청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히어디엘 박홍준 대표는 스마트폰에서 동작하는 잡음제거 청력보조 앱을 CES 2023에서 선보였다(ⓒ청년의사).
히어디엘 박홍준 대표는 스마트폰에서 동작하는 잡음제거 청력보조 앱을 CES 2023에서 선보였다(ⓒ청년의사).

국내 회사도 저가의 보청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포스텍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를 정년퇴임한 이후 늦깎이로 히어디엘(hear DL, http://www.hearDL.com)이라는 회사를 세워 CES에 처음 출품한 박홍준 대표가 눈에 띄었다. 직원도 없이 홀로 포스텍이 마련한 전시관의 한켠에 서서 기자를 맞이한 박 대표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해 스마트폰에서 동작하는 잡음제거 청력보조 앱을 CES에 들고 나왔다.

딥러닝 기술로 스마트폰에서 보청과 잡음제거 기능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인데, 어느 이어폰이나 헤드폰에든 청력보조 앱만 설치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사실 박 대표는 1979년에 서울대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전기공학 및 컴퓨터 공학박사를 취득한 전기 전자 분야의 학자로, 91년부터 2021년 정년퇴임 때까지 포스텍에서 석사 43명, 박사 32명의 제자들을 배출했다.

박 대표는 ‘평생 교수직을 하다가 직접 신생 스타트업을 해보신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쉽지 않지만, 평생 연구해온 딥러닝 기술을 통해 저같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노년에 값비싼 보청기대신 저렴하게 청력을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팔자에 없는 회사까지 차리게 됐다.” 박 대표는 수익모델과 관련해서는 스마트폰 앱스토어에 앱을 올려 구독형으로 수익을 거둘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CES 2023 현장에서 만난 디지털 헬스 관련 기업대표들의 특징은 하나로 모아졌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것. 그것은 아주 젊은 청년부터 정년퇴임한 교수까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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