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연구팀, 대상자 결정 단계에서 담당의사 배제 지적
"조력존엄사 설명 의무, 환자의 결정 철회도 명문화해야"

의사조력자살 논쟁을 불러일으킨 ‘조력존엄사법안’의 대상자 결정 과정에 환자를 가장 잘 아는 담당의사의 개입이 배제돼 있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도 미비하다 등의 지적이 나왔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연화 교수팀은 대검찰청이 최근 발간한 ‘형사법의 신동향’에 이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조력존엄사와 관련된 연명의료결정법 일부개정 법률안의 문제점과 그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에 조력존엄사를 원하는 환자를 대상자로 결정하는 주체인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와 조력존엄사를 실행하는 주체인 담당의사가 분리됐다고 지적했다.

개정 법률안 제20조의3에 따르면 조력존엄사 대상자를 결정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둘 수 있다. 심사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한 15명 내외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위원장은 복지부장관이 맡는다.

위원들은 ▲관계 중앙행정기관 소속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 ▲의료법에 따른 의료인으로서 조력존엄사 관련 전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윤리 혹은 심리 분야 전문가 중 복지부장관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여기에 조력존엄사를 이행하는 당사자이며,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담당의사의 개입이 명시돼있지 않다는 게 연구팀의 지적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미국 오리건주 존엄사법에선 주치의가 환자가 불치병에 걸렸는지, 의료결정을 할 능력이 있는지, 자발적으로 요청한 것인지를 파악해 초기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약물 처방 직전에도 환자가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연구팀은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자의 상태를 의학적으로 가장 잘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는 담당의사의 개입이 배제된다는 점에서 환자의 최선의 이익과 자기결정권 행사의 적합성 여부를 면밀히 판단할 기회가 상실될 우려가 있어 절차의 타당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이어 “물론 조력존엄사 대상자 신청을 할 때 관련 서류로 담당의사의 확인서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조력존엄사가 가장 강력하게 사망 시기를 앞당기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대상자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담당의사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점을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담당의사의 조력존엄사 설명의무와 환자가 조력존엄사 결정을 철회할 수 있는 규정도 명문화돼있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오리건주의 존엄사법에선 부당한 압박 없이 의사로부터 완전한 설명을 듣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에 대해서만 조력존엄사를 인정한다. 또 환자의 의사 표시 후에도 담당의사가 상세하게 확인해 언제든지 환자가 자신의 요청을 철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개정 법률안에는 담당의사가 환자의 의사결정능력에 대한 판단과 확인, 다른 대안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 의무, 환자가 언제든지 조력존엄사 신청을 철회할 수 있는 명문 규정 등이 없다고 했다.

연구팀은 “조력존엄사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자살할 수 있는 약물을 제공하고, 복용 여부 결정권은 환자에게 있기 때문에 설명 의무와 철회 규정이 더욱 필요하다”며 “이를 간과한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중대한 흠결로 연명의료결정법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의사조력자살이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법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개정 법률안에 담당의사의 설명 의무와 환자의 신청 철회를 명문화해야 한다. 또 대상자 결정에 담당의사 개입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도록 절차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