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국장

선천성 희귀질환으로 투병하는 두 명의 아이가 있다. 두 아이 모두 혼자서 걷는다. 그런데 걷다가 낮은 턱 하나를 만나게 되더라도 이 아이들은 넘지 못하고, 그 턱에 걸려 넘어지곤 한다. 넘어야 한다는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진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국장
김진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국장

아이들은 기능적으로 ‘걷는 행위’ 자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걷다가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장애물을 인지하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이 스스로 걷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장애판정을 받게 된다면 어떤 유형을 받게 될까?

동일한 희귀질환, 유사한 증상으로 투병하던 아이들이었지만 한 아이는 뇌병변 장애를, 다른 한 아이는 지적 장애를 판정받았다.

우리나라는 장애유형에 따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각각 다르다.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장애유형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장애유형을 받기 위해 과연 부모들은 재활치료를 소홀히 할 수 있을까? 설사 더 많은 혜택을 위해 재활치료를 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가정이 있다면 그 자식을 낳고 기르는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상상해보시라.

희귀질환은 다양한 정책적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상당한 영역에서 복지사각지대에 처해있다. 특히 희귀질환으로 진단받은 환자 중에는 그 희귀질환이 삶의 질을 현저히 저하시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현행 장애의 범주 내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장애인 복지서비스의 이용대상이 될 수 없는 실정이다. 달리 말하자면, 장애의 범주에 해당되기 어려운 다수의 희귀질환자의 경우 장애인 정책의 제도권 내에서 안정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희귀질환과 장애는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희귀질환 환자 중에는 장애판정을 받고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자가 있기도 하지만, 증상이 양호하여 장애판정을 거론할 필요가 없는 환자도 존재한다. 그러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독립적인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장애판정을 받을 수 없는 환자가 있다.

2021년 질병관리청 용역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시행한 희귀질환에 대한 다각적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미충족 수요조사 연구 내용 중 희귀질환 환자의 장애판정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대상자 중 장애판정을 받은 비율은 47.8%로 나타났으며 장애정도는 심한장애가 83.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환자 연령별로는 장애판정 받은 비율에서 아동청소년이 67.1%, 성인이 32.0%의 비율로 조사되어 아동청소년이 성인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아동청소년의 심한장애 비율은 90.1%로 성인 대비 높게 나타났다.

주목할 만한 사항은 장애등록을 희망하는 비율이 36.8%에 달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설명하면 장애등록을 희망함에도 불구하고 현행 장애의 범주 내에서는 장애판정 자체가 제한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 질환자 수가 매우 적고, 동일 질환을 진단받은 경우라도 증상이 매우 다르게 발현되는 희귀질환의 특성상 모든 희귀질환에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세밀한 계획 수립이 필요할 것이다.

진단기술의 고도화로 점차 증가율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희귀질환 환자들의 장애유형을 신경계통, 순환기계통, 소화기계통 등으로 분류하고, 그 안에서 유사점을 파악해 희귀질환자의 장애에 대한 별도기준을 마련함으로써 희귀질환의 특성이 반영된 실질적인 장애제도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청년의사 자매지 '코리아헬스로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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