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준 교수, 환자 도우려 '급여 협상' 시 저가에 협의
로열티도 안받았지만 제조사는 수익 없으니 생산 의지 꺾여
프랑스, 희귀질환 등 대상자 적은 의료기기 가격 2배 책정
"은퇴 뒤 생산 중단될까 걱정"…외국 제품 2~3배 비싸

"진짜 바보 같은 짓이었어요."

2000년대 중반 뼈가 잘 부러지는 유전성 희귀난치질환인 '골형성 부전증' 환아의 골절수술 시 쓰는 고정기구 '연동형 텔레스코픽 로드'를 개발한 서울대병원 소아정형외과 조태준 교수.

'연동형 텔레스코픽 로드'가 급여권에 진입하면서 난생 처음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가격 협상에 나섰던 조 교수는 최근 코리아헬스로그와의 인터뷰에서 "바보 같은 짓을 했던 것 같다"고 자조했다.

'텔레스코픽 로드'는 뼈가 약한 골형성 부전증 환아의 부러진 뼈에 덧대줌으로써 뼈가 다시 부러지지 않게 강화·고정해주는 장치다. 아이의 뼈 성장에 맞춰 망원경처럼 길이가 늘어나는 특성의 기구로, 아주 어릴 때 수술한 경우 앞으로 자랄 뼈를 위해 다시 교체하는 수술이 필요하다.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조태준 교수는 청년의사 자매지 '코리아헬스로그'와 인터뷰에서 유전성 희귀질환인 골형성 부전증 환아를 위해 '연동형 텔레스코픽 로드'를 개발한 후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코리아헬스로그).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조태준 교수는 청년의사 자매지 '코리아헬스로그'와 인터뷰에서 유전성 희귀질환인 골형성 부전증 환아를 위해 '연동형 텔레스코픽 로드'를 개발한 후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코리아헬스로그).

정형외과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통해 우수한 효과 입증

조 교수가 개발한 연동형 텔레스코픽 로드는 기존에 쓰이던 텔레스코픽 로드와 비교해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입증됐다. 그 결과는 지난 2007년 5월 정형외과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인 미국정형외과학술지(J Bone Joint Surg Am)에도 게재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동형 텔레스코픽 로드는 기존 텔레스코픽 로드 보다 설치와 제거 시 관절에 손상을 덜 일으킨다. 때문에 대퇴골 같은 큰 뼈에만 쓰던 것을 정강이뼈 같이 작은 뼈까지 확장해 쓸 수 있다. 말단 부위에 맞물리는 핀을 통해 효과적으로 부러진 뼈를 고정하는 데다 연동형 텔레스코픽 로드의 생존율은 기존 텔레스코픽 로드와 비교해 유사하거나 더 낫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당시 조 교수는 골형성 부전증 환아들을 위해 로열티를 조금도 받지 않고 이 장치의 제조 및 판권을 A사에 넘겼다. 제조 및 판권을 넘겨받은 A사로서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지만 곧 이 기구 생산에 흥미를 잃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조 교수의 논문이 발표 된 뒤 해외에서 수입하고 싶다며 문의를 해온 곳도 있었지만 A사는 그 마저도 고사했다고 했다.

수출 시 국내 가격 참고…수익성 없는 사업 지속 어려워

그렇다면 A사는 왜 '연동형 텔레스코픽 로드'를 수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 마저도 고사한 것일까.

조 교수는 "당시 공단에서 책정한 텔레스코픽 로드 가격이 굉장히 쌌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회사 수익에 도움 되지 않을 만큼 텔레스코픽 로드의 급여 가격이 낮게 책정되면서 텔레스코픽 로드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 의지도, 생산 의지도 꺾였던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가격을 싸게 하면 환자한테 도움이 되겠다 싶어 그렇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환자를 위해서도 그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연동형 텔레스코픽 로드'는 희귀난치질환에 쓰이는 수술기구다. 때문에 수요가 많지 않다. 수요가 적어 이익이 나기가 쉽지 않은데 가격마저 저렴하니 A사로서는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하게 된 셈이다.

수출 가격도 마음대로 높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수출 시 국내에 공급되는 가격을 참고하는데 워낙 낮게 가격이 매겨지다보니 수출한다고 해도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조 교수는 "이런 문제를 내다본 프랑스 정부는 희귀질환 같이 대상자가 아주 적은 질환의 치료에 쓰이는 경우에는 2배의 가격을 책정하는 정책을 펼친다"며 "그게 제대로 된 정부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 정부는 다 깎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알만 빼먹는 일"이라며 "꼭 필요하지만 가격이 저렴해 생산이 중단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 되고, 국내 산업 발전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가격 낮추는 것 최선 아냐"…'저가-생산 중단' 고리 끊어야

조 교수는 요즘 걱정거리가 하나 더 있다고 했다. 현재는 A사가 낮은 가격에도 생산을 중단하고 있지 않지만 자신이 은퇴하면 이 기구의 생산을 중단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텔레스코픽 로드는 국내 가격의 2~3배나 높다. 결국 A사가 텔레스코픽 로드 사업을 접는다면 우리는 해외에서 2~3배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수입해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조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처음 급여를 신청할 때 가격을 더 많이 올려 생산자가 이익을 내서 더 발전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모두를 위한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됐다"며 "눈 뜨고도 못 보는 게 바로 우리 사회인 것 같다"고 허탈해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희귀질환 분야는 경쟁할 것도 없고 시장에 진입하고 싶어 하는 회사도 많지 않은데 너무 가격을 낮추면 있던 회사마저도 손들고 떠나버리게 될 것"이라며 "결국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갈 테고 우리 사회는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악순환을 겪을 것이니 이런 부분에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의사 자매지 '코리아헬스로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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